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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의사의 코로나
임야비 지음 / 고유명사 / 2022년 12월
평점 :

2020년1월20일 코로나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뒤 3년4개월만에 정부가 5월11일 코로나19 ‘엔데믹’을 선언했습니다. 정부는 코로나를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겠지만 이제 풍토병으로 관리하겠다고 위기 상황은 끝난 것으로 판단 내렸습니다. 답답하고 어두운 길고 긴 터널에서 빠져 나온 것 같습니다. <그 의사의 코로나>는 암울하고도 먹먹했던 그 날들의 생생한 기록입니다. 또한, 코로나 전장의 사투를 생생하게 담은 증언 문학이라 할 수 있는 책입니다. 지난 3년 동안 수없이 많은 이름이 숫자가 되어 사라졌고, 사라진 숫자에 이제 더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일상이 되버렸습니다. 일일 확진자수가 만명이 넘는 지금 코로나는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사서 하는 고생치고는 너무 멀고, 너무 중하며, 무엇보다도 너무 위험했다. 게다가 환자들은 의사소통이 불가하고, 행동 제어가 전혀 안 되는 정신과 환자였다. ---p.24
저자는 코호트 격리된 병동을 토마스 만의 마이산 속에 비유했습니다. 전국의 버려진 폐교 10개를 한곳에 모아 놓은 듯한 모습이 을씨년스러웠다고 했습니다. 저자는 코로나 진료 봉사 의사가 되었습니다. 저자의 나이 마흔셋이었던 2019년 의사를 그만두고 일년후 팬데믹이 세상을 덮쳤고 누구나 그렇듯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습니다. 중수본은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외진 산속에 있는 정신 병원에서 지옥과 같은 의료봉사를 하며 사회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약자들 만났습니다.
제 발로 그 험악한 곳에 뛰어든 것은 대단한 사명감이나 드높은 봉사 정신의 발로가 아니었다라는 표현에 수많은 의료계 종사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저자의 생생한 기록은 늦게 얻은 막내아들, 부모님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의사 아들인 그는 정작 어머니의 죽음 앞에 너무나 무력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허망하게 어머니를 보낸 지 단 100일 만에 아버지마저 숨을 내려놓았습니다. ‘힘들게 낳고 뼈 빠지게 키운 아들이 의사면 뭐 하나, 제 부모 목숨 하나 살려내질 못했는데….’ 자책일지, 속죄일지, 도망일지 알 길이 없으나 감당하기 힘든 상실을 메꾸기 위해 작가는 1년 전 의사를 그만두면서 버려두었던 의사면허증을 다시 꺼내 그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곳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습니다.
“슬픔이 ‘긴’을 데리고 다니듯 기쁨은 ‘짧음’을 수반한다. 더군다나 큰 기쁨은 매우 짧다.”
소장 천공을 거뜬히 이겨냈던 작가의 어머니는 대장에 생긴 작은 천공에는 꼼짝없이 숨을 빼앗기고 만다. 독소는 아주 작은 틈을 노려 순식간에 온몸을 초토화했다. 코로나 역시 작은 틈을 노려 순식간에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한 장 한 장 꽃잎 지듯 목숨이 졌고, 어제까지 함께 숨 쉬던 수많은 이들의 호흡이 오늘 우리 곁에서 조용히 끊겼다. 중환자실에서 홀로 버티던 어머니와 폐섬유종을 앓던 아버지 모두 하늘로 보내드렸습니다.
“걸려서 죽은 사람은 숫자가 되었고, 걸렸다 나은 사람은 숫자를 보지 않았다.”
바이러스는 환자의 세포, 환자의 정신, 음압 격리 병실, 폐쇄 병동이라는 4중 잠금장치를 두르고 있었고 저자는 가장 밖에서부터 바이러스까지 접근하려면 여러개의 열쇠가 필요했습니다. 소현정신병원은 모두가 달려들어 겹겹의 문을 따고 부숴서 나를 코로나바이러스 앞에 데려다 주었고 그리고 최전선에서 싸웠습니다. 그렇게 최전선에 싸우며 세상은 이제 지나온 지옥 같은 날들을 과거에 버려두고 이제는 코로나 이후를 준비하느라 분주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지옥의 한가운데서 스스로 수많은 질문을 던졌지만, 아직 그 질문에 답을 찾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전직 의사가 쓴 코로나 이야기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일깨워주는 책입니다.
출판사 지원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