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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 평전 - 광기에 맞선 이성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민영 옮김 / 원더박스 / 2022년 10월
평점 :

에라스무스 평전은 발자크 평전, 위로하는 정신(몽테뉴),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카스텔리오) 등 여러 평전을 남긴 슈테판 츠바이크의 대표작으로, 에라스무스를 다룬 여러 책 가운데 가장 유명한 책이라고 합니다.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챌린지를 시작하여 읽게 된 책입니다.
츠바이크가 나치를 피해 망명하기 직전에 출간한 이 책은, 종교전쟁의 혼돈 속에서 모든 극단을 거부하며 평화와 자유를 지키려 했던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의 삶을 빌려 광란의 시대를 고발하고 자신의 신념을 밝혔고 교황의 편에도 루터의 편에도 서지 않고 복음과 교리 사이 양분된 세상에 종교개혁으로 혼돈의 시대를 살았던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뛰어난 작품입니다. 이것이 평전을 읽는 즐거움입니다.
불안은 운명이 그에게 준비해준 법칙이다. 그래서 그가 평안을 열망할 때면 언제나 그를 둘러싼 세상이 격노한다. ---p.238
1506년 그리스어와 인문주의를 더 배우고 싶다는 열망으로 그는 이탈리아로 넘어갑니다. 에라스뮈스는 이곳에서 그리스인들에게 직접 그리스어를 배우고 1509년에 영국으로 돌아와 토머스 모어의 집에 머무르면서 작품을 씁니다. 그 작품이 바로 교회의 허위와 위선을 풍자한 우신 예찬입니다. 자기주장을 뚜렷하게 나타내지 않아 소심하고 우유부단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지만 그는 우신(愚神, 바보 신)을 내세워 교황, 성직자 뿐만 아니라 군주와 학자들을 비판했습니다. 이 때문에 『우신예찬』은 금서로 지정 되지만 유럽에서 이 저서의 파급력은 엄청났고, 에라스뮈스는 종교개혁가를 비롯한 인문주의자들 사이에서 유명해지게 되어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읽히는 책입니다.
에라스무스는 독립 신봉자라고 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으려 했고 본성의 강요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궁정에도, 대학에도, 직업에도, 수도원에도, 시에도 의무감을 느끼지 않고 일생 고요하면서도 완강한 고집으로 자기 정신의 자유를 지키며 살다 간 인물입니다. 에라스무스가 논쟁의 중심으로 만든 문제는 영원한 신학의 문제인 인간 의지의 자유 또는 부자유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루터가 엄격하게 지키고 있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예정설에 따르면 인간은 신의 영원한 포로이고 인간에겐 자유 의지가 조금도 주어지지 않고 신은 인간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이미 오래전부터 미리 의식하고 있으며 그 행위는 신에 의해 미리 결정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훌륭한 일을 하든지 간에 어떤 대단한 노력과 참회를 하든지 간에 자유의지란 존재할 수 없고 원죄와 속박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츠바이크는 이성과 계몽의 힘으로 인류의 화합을 이루려는 에라스무스의 숭고한 정신과, 어느 편에도 들지 않고 어떤 위험도 피하려는 태도로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그의 소심함을 동시에 보여 주지만 저자 츠바이크가 생생하고 역동적인 필체로 그려 낸 에라스무스의 모습은 지금처럼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에 대립과 반목, 갈등과 혐오의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게 할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