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들
신주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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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들의 표지가 인상적입니다. 세상은 사람들에게 평범함을 요구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습니다. 평범하게 살기 위한 조건조차 사실은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우린 가끔 잊어버린다고 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높고 낮은 수많은 허들을 넘어야 합니다. <모서리의 탄생>이후 신주의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허들>은 일상의 벽 속에서 분투하는 다양한 층위의 인물들을 그린 작품입니다. 21회 이효석문학상 우수상 수상작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납작한 세계를 다시 한번 부풀리는 일곱편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서로의 존재를 일깨워주는 책으로 기대됩니다.

 

 

1의 미래를 위해 저당 잡혀 있는 9의 살, 그러니까 내게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위안, 아니 복수의 방법은 죽음뿐이었어요. 죽음만큼 확실하게 욕망을 작고 하찮게 만드는 것이 또 있을까요? 그러니까 그때 나의 마음은 배교 (背敎) 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나는 아무도 몰래 펜을 들었습니다. 내가 사라지고 난 뒤 글을 읽을 얼굴들을 떠올리면서요, 그때부터입니다. 내게 유서를 쓰는 버릇이 생긴 것은요. ---p68

 

 

신주희 소설의 세계는 두 축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평범함의 요구에 납작해져버린 외부 세계와 그러한 압력에 저항해 한껏 부풀어 올라 있는 내부 세계입니다. 평범하게 살고 싶으나 이 세상은 평범함 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허들은 주인공인 가 쓰는 유서의 형식입니다. 수신자는 딸인 에게 자신과는 다른 평범한 삶을 요구했던 어머니였습니다. 여자에게 외국은 험하고, 혼자 있는 여자의 소문은 사납고, 남동생의 제대가 또 발목을 붙잡습니다. 나를 포함해서 가족 모두가 남동생의 학비를 충당해야 하는 갑갑한 현실, 자상한 아버지, 헌신적인 어머니, 그런 사이에서 나는 맏딸입니다. 삶에서 넘어야 할 지나치게 높은 허들을 넘기 위해서는 정해진 삶의 규칙을 허용해야 하는데 미래에 대한 기대는 자기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남들의 욕구를 충족시킬수록 나는 전보다 조금 더 잘 견디는 사람이 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너에게 닥칠 수 있는 불행의 종류는 너의 행적을 좇는 사람의 수만큼일지도 몰라. 너의 이름이 이토록 유호한 순간이었을까? 모두가 곤두서서 너를 지켜봤어. 모두가 피해자라서 너는 자연스럽게 가해자가 되었지.---p.59 저마다의 신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삶이 그저 나 혼자 단독의 젓이 아니라 알 수 없는 타자에게 열려 있으며 사회적으로 공동체적으로 그들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호들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방식으로 주인공을 억누르고 있는 현실의 평면성이 요구되는 것은 경제적 능력 뿐만이 아닙니다. 사회 생활을 들여다 보면 갑과 을이 존재하고 생산자와 소비자,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하물며 모녀의 관계는 가장 친밀하면서도 풀리지 않는 매듭이 있습니다. 저마다의 신에서 이주영 주인공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게 되는 것이 유일하게 말을 걸어 준 여진 언니의 존재 때문이었습니다. 한번도 관심 받지 않았던 주영이에게 사이비 종교는 마약같은 것이었습니다.

 

2020년부터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 시대에 살아가는 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는 소설은 단절과 상실로 얼룩진 시대에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저마다의 신을 요구하는 외로운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서로의 존재를 마주하기 위해 넘어서야 하는 시선의 허들 납작한 세계를 다시 한번 부풀리는 일곱 편의 이야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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