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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우샤오러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0월
평점 :

우샤오러는 넷플릭스 드라마로도 제작된 단편집 <네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에 이어 장편소설 <상류 아이>까지 교육 및 부모 자식 사이 관계의 본질을 첨예하게 파고들어,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며 전 세계의 찬사를 받은 작가입니다. 책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는 우샤오러의 대표작입니다. 평범한 주제가 저자의 손끝에서 어떻게 훌륭하게 탄생 되는지 독자는 책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는 시간이 멈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평온함이 느껴진다. 벌써 몇 년째 이런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다. 지난 몇 년간 나는 늘 같은 일을 생각해봤다. 인간은 일생의 전반부를 이용해서 시나리오를 쓰고, 후반부를 이용해서는 시나 리오에 따라 영화를 찍는다. 우리들은 완성된 시나리오에서 벗어날 수 없다. ---p98
인간은 어째서 이토록 모순적일까? 나와 오빠는 계단을 하나씩 밟으며 3층으로 올라갔다. 그 후 혼자 있을 때면 그날 밤의 기억을 떠올리곤 했다. 샤오허란 사람은 누구일까? 아빠가 엄마에게 그런 애교 섞인 말투로 속삭이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이런 의문들을 전부 마음속에 담아두고 입은 꿰매버렸다. 비밀이란 그런 것이다. 비밀의 존재를 숨기고 없는 척할수록 그 비밀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 어디 가도 그 비밀이 따라온다. ---p111
화차와 도가니를 잇는 사회 고발 미스터리는 흡사 이 작품과 많이 닮아있었습니다. 갑자기 사라진 아내 우신핑은 사고일까, 단순 가출일까 행방은 묘연한데 지금껏 그런 아내를 믿어온 남편 판옌중은 놀라운 사실을 접하게 되면서 작품은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돌아가셨다는 아내의 어머니는 살아계시고 연락이 안된다는 오빠도 버젓이 있었습니다. 아내의 마지막 목격자를 찾아 가면서 그들이 요구하는 조건은 돈이었습니다. 아내의 동료 젠만팅은 우신핑의 실종을 은근히 좋아하면서 자신보다 나은 처지의 동료의 불행을 즐기는 걸 보면 가족도 동료도 친구도 그동안의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어디까지가 거짓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이었는지 아내를 둘러싼 인간관계도 의문이 듭니다.
고등학교 때 같은 학교를 졸업한 선배의 집에서 성추행을 당한 우신핑, 열 살 때 체조코치에세 성폭행을 당한 오드리를 통해 부모가 가정이 사회가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조차 사건을 덮으려고만 하는데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존재하지 않는 무서운 세상입니다. 성폭력, 가스라이팅, 학교폭력 등을 통해 작품의 인물들의 처했던 상황을 짚어 보게 되는 책입니다. 사람들은 갖은 방법을 동원해 자신이 피해자라는 것을 보여주려 합니다. 그래야만 자신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죄상을 부인하는 것은 단순히 심성이 악해서가 아니고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선량하고 정직한 일면에 미련을 버릴 수 없어 뻔뻔스레 사실과 다른 말을 하는 것이라는 대목에서 오랫동안 시선이 고정되며 여러 번 읽게 된 문장입니다.
책은 변호사 판옌중의 아내가 갑작스럽게 사라진 사건을 시작으로 미스터리한 사건을 쫓아가며 성폭력 피해자의 진실성을 다루는 무겁고 논쟁적인 사회 문제를 제기해 보는 작품입니다. 한동안 미투 운동이 공감을 얻었지만 미투를 고백한 사람들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보장된 법조계의 삶을 포기하고 사회에서 금기시하는 주제를 파헤치는 작가의 작품입니다. 저자 우샤오러는 사회에서 금기시하는 주제를 파헤치는 데 탁월한 작가이며, 사회평론가로서도 이름이 높기에 이 작품은 우샤오러만 쓸 수 있는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독자들이 자기 내면의 편견을 들여다보고 사람이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의 본질은 무엇인지 깊이 성찰하게 해주며 사회가 성폭력을 얼마나 깊은 편견으로 다루고 피해자를 재단하는지 바닥까지 파헤쳐 보입니다. 처음으로 돌아가 판옌증은 아내 우신핑의 행방을 찾을 수 있는지 평범한 소재에서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뛰어난 작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