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 영화로 읽는 ‘무진기행’, ‘헤어질 결심’의 모티브 ‘안개’ 김승옥 작가 오리지널 시나리오
김승옥 지음 / 스타북스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상적인 생활이 난파할 때, 때때로 우리는 그 장소로 간다. 즐거운 듯한, 쓸쓸한, 그리고 무의식의 내면 속에서 무진의 안개는 피어오르는 것이다 라고 무진기행을 평론하신 이어령 선생의 말씀입니다. 영화안개는 김승옥 작가의 소설 <무진기행>을 원작자가 직접 각색했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면서 흥행으로까지 이어진 첫 번째 작품입니다. 무진기행이 영화로 나왔었다는 것은 독자인 저는 알지 못해서 시나리오 책을 받고 반가웠습니다. 소설가에서 영화인이 된 김승옥 작가는 소설을 쓰는 동안 등장인물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동영상으로 떠오르기에 소설을 영화로 각색하는 작업이 최소한 본인에게는 그리 낯선 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시나리오로 읽어보는 안개는 스타북스에서 출간되었습니다.

 

- 항상 이렇게 생각하기로 해. 내 자신은 멋진 놈이다. 내 자신은 아름다운 놈이다. 내 자신은 사랑스러운 놈이다. 내 자신은... ---p.155

 

자기 자신이 싫어질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됐을 때, 인숙이, 그때마다 항상 안개 속에서 버둥거리던 한 사내를 생각해 주십시오. 진심으로 부탁합니다. 그 한 사나이를 생각해 주십시오... 허탈한 눈으로 창 밖을 내다 보면 뿌연 안개 속에 무진의 새벽 상가가 지나가고 선명한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안녕히 가십시오. 당신은 무진 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p.166

 

 

제약회사의 상무이사인 윤기준은 회사 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제약회사 사장의 딸과 결혼해 상무 자리까지 단숨에 올랐습니다. 지쳐 있는 기준에게 아내는 휴식 겸 어머니 성묘도 할 겸 고향 무진에 다녀오라고 합니다. 작품에서도 느끼지만 고향이 지방인 사람은 서울을 동경하고 그리워 합니다. 무진의 안개,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는 어떤 의미일까요. <안개>는 근대화 과정이 남성 주체가 야기한 피로와 정신적 분열을 반영한 영화라고 이야기 합니다. 한국문학사에서 감수성의 혁명으로 받아들여진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원작으로 삼고 있습니다.

 

윤기준은 자신과 더불어 고향에서 제일 출세했다고 하는 인물 세무서장 조한수를 만나러 갑니다. 조한수의 집에는 세무서 직원들과 서울에서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내려온 하인숙이 화투를 치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윤기준은 시골에는 어울리지 않는 도회적인 용모의 옷차림에 육감적인 매력에 기품이 있어 보이는 하인숙에게 관심을 보이고, 그녀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자신을 서울에 데려가 달라고 약간은 조르는 듯 보입니다. 금의환향을 한 그가 하인숙에게도 좋아보였을까요.

 

서울 생활에 지친 30대의 주인공이 고향 무진에 와 20대 시절의 자신과 대면하는 형식 자체가 굉장히 파격적이고 감성적이며 자신의 생활에서 크게 일탈하지 않으려고 하는 장면들을 읽을수있었습니다. 인숙과 데이트하는 장면에서 그는 계속 불안해 하며 갑자기 안경점에 들어가 색안경을 사서 쓰기도 하고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했습니다. 독자가 느끼기에 이야기의 결말을 약간 짐작하게 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여전히 감을 잡지 못하는 주인공의 처지를 안개에 휩싸인 무진에 빗댄 이야기는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공감이 가는 작품입니다. 시나리오는 무진기행을 오래도록 잊지 못하는 독자와 한국영화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소중한 길잡이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기회가 되면 영화도 보고 싶어 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