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0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황가한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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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났으되 떠나지 못한 이들의 초상을

연민어린 시선으로 복원해내는 걸작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식민주의 영향 및 문화, 대륙 사이의 격차 속에서의 난민의 운명에 대해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연민을 갖고 파고든 공로로 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압둘라자크 구르나에게 수상의 영광을 안겨주었고 세계의 문학계는 깜짝 놀랐습니다. 구르나는 낙원, 바닷가, 탈주 ,순례자의 길 등 10편의 소설과 여러편의 단편을 발표했는데 일곱번째 장편소설 배반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 출간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출신 작가로는 네번째로 노벨문학상을 거머쥔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주요 무역 거점으로서 다양한 문화가 뒤섞여 공존해온 잔지바르에서 태어나 1968년 영국으로 이주했으며, 서로 다른 문화의 충돌을 소재로한 20세기 조국 잔지바르의 정치적 환란과 그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디아스포라의 삶을 연민 어린 시선으로 탐구해온 작가입니다.

 

모든 일은 운과 연관돼 있지만 운은 우연과는 달라서 가장 뜻밖의 사건도 어떤 의도를 충족한다. 즉 하사날리가 그 사내를 발견했다는 사실이 절대 우연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결과가 미래에 일어났다. ---p.10

 

 

배반은 슬픈 소설이다. 내용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해당하는 제목 ‘Deser_tion’부터가 그러하다. 누군가를 버린다는 것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을 저버림으로써 그를 혼돈과 상처의 사막속으로 밀어넣는 것을 의미한다. 소말이아인들에게 돈과 물건을 빼앗기고 사막에 버려진 백인 마틴 피어스부터 그와 사랑에 빠졌다가 결국에는 버림받는 레하나, 아민과 헤어지게 되는 자밀라에 이르기까지 배신을 하고 배반을 당하는 인물들은 작품에 많습니다.

 

스스로를 추방당한 자, 망명자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점진적인 과정이었던 것 같은데 실제로 내가 처한 상황을 표현할 말을 찾기까지는 몇 달이 걸렸지만 그 의미를 느낀 것은 훨씬 전부터였다. 돌아오지 말라는 아버지의 편지는 나를 망연자실하게 만들었고 소리 없는 공황으로 마비시켰습니다. 돌아가지 않는다면 어디로 가야한단 말인가. 치솟았던 공포가 가라앉고 시간이 흐른 위에도 영국에서 온 후 처음으로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생각했으며 시간이 흐르자 나는 견딜 만한 이방인다움에 젖어들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을 자주 작품에 등장시키므로서 작가 자신이 타국에서 겪어야만 했던 이방인으로서 쓰라린 아픔을 표현했을 것으로 짐작이 듭니다. 그의 세계관은 삶을 살아가면서 종교적 정체성은 이미 고향 진지바르를 떠나기 전에 충분히 형성되었고 정체성 또한 누구보다도 분명했을 것입니다.

 

 

어떤 공황이 지척에 와 있었는지, 몇 년 뒤에 유럽 정부들 대부분이 지켜야 할 의무를 전혀 느끼지 않는, 종잇조각에 불과한 일련의 조약들과 계약들을 남긴 채 보따리 싸서 고국으로 도망가리라는 걸 정말로 알았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아민과 라시드 같은 젊은이들의 자아상과 미래는 식민지인들이 지금까지 기대해온 바와의 분리를 시작조차 못한 상태였다. --- p.213

 

 

작품<배반>의 무대는 1899년 제국주의의 그림자가 짙어지던 시절 독립과 혁명의 광풍이 휩쓸던 때 인종의 차이를 초월한 사랑과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인도인 남편에게 버림 받은 레하나와 이후 첫눈에 빠져버린 영국 남자 마틴 피어스의 국경을 넘고 인종이 다른 이국적인 사랑의 이야기에 모두가 바라고 기대하는 삶을 살지 못한 아민과 파라다, ‘가 있지만 이것은 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것은 우리 모두에 관한 이야기, 파리다와 아민과 우리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 자밀라에 관한 이야기, 하나의 이야기 안에는 여러 개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는 것, 그 이야기들은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무질서한 흐름의 일부라는 것, 그리고 이야기가 어떻게 우리를 사로잡고 영원히 얽매는가에 관해 우리 시대의 조국, 가족을 깊이 사유해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작품에서 작가가 제목으로 배반을 뜻하는 인물을 찾아보는 흥미로운 작품입니다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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