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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보는 난중일기 완역본 - 한산·명량·노량 해전지와 함께
이순신 지음, 노승석 옮김 / 도서출판 여해 / 2022년 9월
평점 :

2016년 출판문화진흥원에서 대학 신입생 추천도서로 선정한 『쉽게 보는 난중일기』의 후속작 <쉽게 보는 난중일기 완역본>을 읽게 되었습니다. 난중일기를 한번 읽은 적은 있으나 완벽본은 처음이라 기대가 컸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에서 삼도수군통제사로 수군을 이끌고 전투마다 승리를 거두어 왜군을 무찌르는데 큰 공을 세운 분으로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존경하는 위인입니다. 이 책은 [한산대첩 이야기]와 [노량해전 이야기]를 추가하였고 부록으로 난중일기 유적지 중 옥포·당포·한산·명량·노량 등 대표적인 유적지 30곳의 사진을 수록하여 생생한 현장감을 주는 책입니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이순신 장군의 가르침과 난중일기를 좀더 쉽게 이해 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가 큰 작품입니다.
1592년 4월14일 묘시에 부산포 우암 (牛岩)에서 임진왜란이 시작되어 왜군이 동래성과 부산성을 함락하였다 신립이 충주에서 패전하자 선조는 파천을 결정하고 5월 왜군이 임진강을 전너자, 6월 이덕행이 대동강회담을 열었으나 결렬되고 선조는 의주로 갔다. 7월 명나라 부총병 조승훈 부대가 평양서전투에서 패했다. 8월 2차 평양성 전투에서 패하고 금산전투에서 조헌이 전사했다. 10월 김시민이 진주성전투에서 승리하고 12월 이여송부대가 도착했다. ---p.56
무술년(1598) 2월18일 보화도에서 고금도로 진영을 옮기고, 7월16일 명나라 도독 진린과 연합작전을 계획했다. 24일 절이도 해전에서 송여종이 포획한 왜군의 머리 40급을 진린에게 주고 5급을 계금에게 주었다 11월12일 유키나가가 지원을 요청하고 18일 새벽 유키나가를 구출하러 온 왜선 5백 척이 남해와 노량에 집결하자, 해뜰 무렵 조명연합군이 일본선 2백 척을 분멸했다. 이때 이순신이 유탄을 맞고 전사했다. ---p.410
19일 자정에 이순신이 배 위에서 하늘에 기도하기를, “이 원수를 제거한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라고 하자, 홀연히 바다 가운데로 큰 별이 떨어졌다. “전쟁이 한창 급하니 부디 나의 죽음을 말을 하지 말라.”난중일기란 이름은 조선의 정조가 이충무공저서의 간행을 명하여 윤행임과 유득공이 편집하면서 편리상 붙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연도별로 되어 있고 내용은 주로 전쟁의 상황과 보고 내용, 공문을 발송한 일, 상벌에 관한 사건, 보고서를 올린 일 등이며 편지 내용도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공사간의 인사 문제와 가족의 안부에 대한 걱정 특히 어머니의 병세를 염려하였고, 그리고 진중 생활에서 느끼는 울분과 한탄 등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토로 하기도 했습니다. 정유년(1597) 4월11일 새벽꿈이 매우 심란하고 마음이 몹시 침울하여 취한 듯 미친 듯 마음을 가누기 힘들었다고 적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무슨 징조인지 병드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다 눈물을 흘렸고 사내종을 보내어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듣게 됩니다. 자식으로서 찢어지는 비통함을 적은 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1959년 1월23일에 친필본 <난중일기>는 국보 76호로 지정되었고 2013년 6월 난중일기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최고 지휘관이 전쟁에 직접 참전하면서 일기를 쓴 것이 세계 역사상 어디에도 유래가 없어 높이 평가 된다고 하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이순신은 전쟁이 일어날 것을 미리 예견하고 철저히 대비하기 위해 1592년 1월1일부터 <난중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7년간 이어져 진영에서 연일 일기를 쓰며 자신을 성찰하고 앞일을 철저히 대비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나 그밖의 위인들의 어머니들을 보면 특별한 교육관으로 자식을 잘 지도했습니다. 이순신의 어머니는 특히 국가의 치욕을 부디 씻으라는 말씀을 하였고 그는 남다른 효심으로 홀로 깊은 사색을 하며 지혜를 낸 결과 불패의 신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지금같이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이순신 장군의 올바른 정신을 본받아 완역본을 차분히 읽는 것으로도 자기계발에나 마음을 수양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