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3 - 조봉암과 이승만, 평화 통일 대 극우 반공 독재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3
서중석.김덕련 지음 / 오월의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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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정치인 조봉암은 1899년에 태어나 1959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시기에 한국인들은 국권 상실, 식민 지배. 해방, 분단, 전쟁, 독재 등 커다란 역사적 사건을 거듭 겪었습니다. 조봉암은 그러한 역사의 격류를 헤쳐 가면서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고자 일생을 바쳤습니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3권은 진보당 사건과 조봉암이 왜 사형되어야만 했는지에 대해 재조명해 보는 책입니다.

 

 

조봉암은 뛰어난 현실 감각과 대인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우리나라 진보 세력 가운데 대단히 특별한 존재였다고 이야기합니다. 또 대단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평화 통일만 해도 그 당시에는 용기를 갖지 않으면 얘기하기가 어려운 것을 조봉암만이 강하게 주장 했던 인물입니다. 대중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한 것도 그 당시 일반 민중의 고통을 생각할 때 참으로 적절한 행동으로 조봉암은 정치적인 곡예를 많이 했습니다. 여러 보수 세력과도 대화하고 관계를 맺었지만, 항상 지킬 것은 지키려 했고 고통받는 민중과 함께하려 했고 민중을 위한 정치를 하려 했던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개성을 마음껏 발휘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려고 한 사람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런 그가 왜 사형이라는 형벌을 받았는지 참으로 궁금했습니다.

 

 

19585월로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 그해 1월에 진보당 간부들 검거가 시작되면서 진보당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나는 이 사건을 조봉암.진보당 사건이라고 부르는데, 초기에 언론에 보도된 것을 보면 아주 심각한 여론 재판이었다. ---p.241

 

 

52년 만에 누명 벗은 조봉암,

한국 진보 역사에서 특별한 존재

 

 

조봉암은 19581월 간첩죄 혐의로 진보당원들과 함께 검거되었고 1959731일에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처형 당시 60세였던 조봉암은 형장에서 이렇게 이야기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나는 이 박사와 싸우다 졌으니 승자로부터 패자가 이렇게 죽음을 당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내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억울하게 사형에 처해진 조봉암은 52년이 흐른 2011년에야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20111월 대법원은 전원 합의 판결로 조봉암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입니다. 끔직한 학살과 갖가지 부정으로 얼룩진 정권의 극우 반공 독재를 무너뜨린 사건들을 통해 목숨을 걸고 분투한 이들의 이야기는 기억되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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