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1930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E. M. 델라필드 지음, 박아람 옮김 / 이터널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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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가을 실내용 구근 식물을 심고 이달의 책을 받아보는 100여 년 전 영국 여인의 이야기가 중년이 된 지금의 우리 일상과도 별반 다름이 없어서 먼저 친숙하게 다가옵니다. 1930년에 처음 출간된 참신하고 예리한 최고의 코믹 소설로 국내 첫 번역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인 남편 로버트와 말썽꾸러기 아들과 딸 육아맘의 일상은 바쁜 날의 연속입니다. 일상의 기록을 통해 한 여인의 인간적인 면과 시대상도 엿볼수 있는 표지부터 아름다운 책입니다.

 

중년의 나이라면 공감할 만한 일기가 있었습니다. 오후에 레이디 복스가 불쑥 찾아옵니다 .혹시 내가 폐렴에 걸렸을까 봐 걱정돼서 왔나 싶었지만 그녀는 대뜸 5월 초에 열릴 바자회를 도와 달라고 합니다. 이야기를 좀더 들어보니 정당의 기금 마련을 돕는 바자회라고 합니다. 레이디 폭스는 나의 정치관을 알고 있으면서 자신의 정당을 지지해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같은 종교를 믿으라고 하는 사람과 정치색이 짙은 사람과의 대화는 길어지거나 진지해지기 어렵습니다. 남편의 고용주인 대지주 레이디 복스는 반갑지 않은 손님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사냥에 참석하려는 수많은 이웃들이 로빈을 볼 때마다 묻는다. “너는 말 안 타니?” 경솔한 행동인 것 같다. 내게는 최근의 폭풍우로 쓰러진 나무가 얼마나 되냐고 묻고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그저 자기네 나무들이 몇 그루나 쓰러졌는지 얘기하려고 물어본 것뿐이다.---P.55

 

 

비키가 홍역에 걸린게 확실하고 의사 소견에 따르면 로빈도 곧 앓을 것 같다고 하는데 정신없고 악몽같은 상황이 이어지는데 남편들은 어디에서 똑같이 학습이라도 받는 것일까요? 연애할 때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 결혼과 동시에 찾아오는 행동들입니다. 아이들을 돌보고 간호해야 하는건 엄마들의 몫입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로버트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지독히 가부장적인 태도로 모두가 별것도 아닌 일에 수선을 피우고있으며 마치 이 모든 상황이 자기를 불편하게 하려고 꾸민 일이라는 듯이 말합니다. 하루종일 나가 있다가 평소와 똑같은 시간에 들어와 꼬박꼬박 저녁을 먹으면서 대체 무슨 불편을 겪는다는 건지 모르겠네요. 427일 일기에서 57일로 일기가 오랫동안 쓸 정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어느새 사는 극적인 상상에 젖는다. 벤틀 리가 커다란 버스와 충돌해 산산이 부서지도..... , 섣불리 결정할 수가 없다. 아주 어릴 때부터 타인의 죽음을 바라는 건 사악한 짓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이 박힌 탓이다. ---P.188

 

얼핏 보기에는 별 일 없는 지방 소도시의 일상을 담고 있지만 작가의 날카로운 관찰력과 풍자적 유머와 주변 인물들의 독특한 점이 평범한 일상을 생동감 있게 만들어 줍니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좋아하는 블렌킨솝 노부인, 이야기를 시작하면 도무지 멈출 줄 모르는 수다쟁이 목사님 아내, 과격한 페미니즘으로 모두를 피곤하는 미스 팬커톤, 일기에 자주 등장하는 남의 사정 따윈 안중에도 없는 거만한 대부호 레이디 복스 등, 아메리카의 비극이나 여성 운동가의 이야기등 미국발 대공황이 세계 경제에 그늘을 드리우고 여성의 참정권을 위한 투쟁이 막 결실을 보기 시작한 1929년 말 잉글랜드의 지방 소도시에 놀랍게도 100여 년 전 영국 여인의 이야기가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1929년부터 <시간과 조수>에 연재된 자전적 소설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로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으며 이후 세 편의 속편을 더 발표했고 19435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 E.M델라필드 작가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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