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삶의 음악
안드레이 마킨 지음, 이창실 옮김 / 1984Books / 202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기차를 기다리는 나(화자)는 문득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이끌려 한 어두운 공간에 다다르고 피아노 앞에 앉은 한 노인을 보게 됩니다. 눈보라에 휩싸인 우랄지방의 어느 기차역, 언제 올지 모르는 기차를 기다리는 화자 <어느 삶의 음악>1957년 러시아 시베리아 출신 안드레이 마킨이 1987년 프랑스를 여행하던 중 정치적 망령을 하고 소령 영웅의 딸, 올라 아르벨리나의 범죄, 동구를 위한 레퀴엠 등 많은 작품을 남기 작가입니다. 부조리를 넘어서 삶이 음악으로 화한 피아니스트의 이야기, 그리고 작가의 치밀하고도 시적인 문장들을 통해 한 편의 음악과 글로 연주되는 삶은 1984Books (일구팔사북스)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마음에 잔잔히 여운을 남길 글귀 기대되는 책입니다.

 

이 순간 그는 과거의 사랑을 살고 있었다. 3년에 걸친 그 대공포 시절, 기다란 코의 가면들밖에는 볼 수 없었던 그 시절 그가 알았어야 할 그것을 지금 경험하고 있었다. 그와 동년배인 소녀와의 만남, 첫사랑을, . 이제 그는 스물일곱 살이었지만, 피아노 앞에 앉은 이 아가씨를 두고 나이를 문제 삼을 순 없었다. ---p.94

 

 

아주 낮지만 또렷한 음성 집으로 가지 말아요.” 가족의 생사를 모른다는 것 만큼 잔인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스탈린 치하의 소련, 밀고와 잔인한 숙청이 마구잡이로 이루어지고 공산 체제가 절정에 달한 시기 1941524일 자신의 연주회가 예정되어 있던 스물한 살의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 알렉세이 베르그는 연주회가 열리기 이틀 전 부모가 체포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면서 그 길로 수용소를 피해 달아난 그의 인생은 전혀 다른 길로 접어 듭니다. 죽은 사람의 신분으로 살아남고 음악가에게 최악의 형벌인 침묵을 강요 받아야하는 현실 영화 피아니스트가 생각하는 내용입니다.

 

그는 연주를 한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밤을 가로질러 전진했다. 얼음과 나뭇잎과 바람의 무수한 단면들로 이루어진, 이 밤의 투명하고 불안전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의 안에 불행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공포도 느껴지지 않았다. 불안도 후회도 없었다. 그가 헤치고 나아가는 이 밤은 불행과 공포와 만회할 수 없이 산산조각 나 버린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이 모두가 이미 음악이 되어 오로지 그 아름다움으로 존재했다.

--- p.119

 

 

그는 주위의 이목을 끌어 신분이 드러나는 일 없이, 죽은 군인에게서 훔친 가짜 신분 그렇게 자신에게 삶을 빌려준 자의 이름으로 이 전쟁을 무사히 헤쳐 나가야 했습니다. 그러기엔 부상을 딛고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참아야 합니다. 그러다 익명을 벗어던지는 순간 이제까지의 도주는 끝이 나고 그는 수년의 세월을 거슬러 원점으로 돌아가 영하 50도의 추위 속 수용소로 보내집니다. 전쟁에선 진실과 거짓이, 관용과 몰인정이, 지혜와 어리석음이 예전처럼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걸 전선의 두해 동안 알게된 사실입니다. 저자 안드레이 마킨은 부서지고 깨진 삶의 파편들과 그에 맞물리는 위대한 한 인간의 운명을 이성과 감성이 균형을 이루는 완벽한 스타일로 연주한 작품입니다. 지금은 이름이 없어진 소비에트 연방 역사에 묻힌 한 사람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되새기게 합니다. 텅 빈 눈 천지, 모호하기 그지없는 존재하지 않는 장소, 끝없이 이어지는 밤, 시간의 갓길로 내던져진 하룻밤 , 불길 속에서 끊어지는 현들의 멜로디, 구름이 흐르고 , 새가 날고, 햇빛이 가득한 하늘 등


작가의 작품은 전쟁으로 아프나 시적인 표현은 예술적인 작품입니다. 톨스토이, 스탕달, 프루스트와 비견되는 작가 안드레이 마킨의 낮고 고귀한 영혼에 바치는 시인간은 아픔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것이지만 전쟁 만큼은 이땅에서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저자는 책에서 아프고 난 뒤 모두 다 성장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아프고 나서도 성장하기는커녕 신세 탓, 환경 탓만 하는 사람도 있고 선택은 각자의 몫이라고 했습니다. 우린 어떤 얼굴로 작별할 것인가? 라는 글에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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