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는 죄가 없다 - 우리가 오해한 신화 속 여성들을 다시 만나는 순간
나탈리 헤인즈 지음, 이현숙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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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화병에 그려진 그림, 신전에 새겨진 돋을새김, 뒷부분이 없어진 서사시. 우리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많은 부분을 있는지도 모른 채 그동안 지나쳤습니다.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신화 속 여성들의 다양한 모습 역사가 놓친 신화 속 여성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이끌어낸 새로운 고전 <판도라는 죄가 없다> 는 아마존,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로 영국의 작가이자 방송인인 나탈리 헤인즈는 고대를 넘어 지금까지의 신화 속 여성을 판단하는 편협하고 구시대적인 사회 속 통념을 가감 없이 펼쳐놓았습니다. 이 책을 읽은 후에 더 이상 2천 년 전의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신화 속 여성들을 마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신화 속 여성들의 감춰졌던 이야기 흥미로운 책입니다.


판도라를 생각하면 손에 상자를 들고 있는 여성이 떠오릅니다. 판도라는 이브와 비교해도 역사적으로 지독하게 푸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브는 적어도 뱀의 말을 듣고서도 자신이 위험하다고 전해 들었던 과실을 스스로 따 먹었습니다. 하지만 판도라는 호기심에서든, 혹은 악의로든 상자를 분명히 열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그 상자는 헤시오도스가 그리스어로 시를 쓰고 난지 2000년이 훨씬 지난 16세기에 이르러서야 등장하게 됩니다. 에라스뮈스가 헤시오도스의 운문 <일과 날>을 라틴어로 번역할 때까지는 그녀의 이야기에 상자는 없었습니다. 에라스뮈스는 ‘항아리’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피토스를 옮길만한 단어를 찾고 있었고 고전학자이자 번역가인 M.L. 웨스트가 설명한 바에 따르면, 헤시오도스가 쓴 말은 1m 정도 높이의 저장용 도자기 항아리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메두사가 항상 괴물이었던 것도 아니거니와 트로이아의 헬레네 역시 간음한 여성이 아니었고, 판도라는 악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p8


책에는 그림, 연극, 영화, 오페라, 뮤지컬 등에서 계속 이야기되고 등장하는 10명의 여성 인물을 선택하여 고대 세계에서는 그들을 어떻게 다르게 그려졌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21세기 영화에서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버렸고 어떻게 예술가들은 시대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이상을 반영하기 위해 헬레네를 재창조 했는지를 알려 주는 책입니다.


그녀는 우리가 그 삶의 끝을 사료해보기도 전에 꽤 불행한 삶을 산다. 메두사가 처음부터 괴물이라는 사실이 언제나 명확히 드러나진 않지만 누군가는 바다신과 바다 괴물의 자손에게는 항상 괴물 같은 성향이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p.111


<판도라는 죄가 없다>는 그리스 신화 속 여성들을 변호하기 위해 씌여진 책이 아니라 현명하고 용기 있고 신중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오해 없이 알기 위해서입니다. 신들은 왜 굳이 판도라에게 항아리를 들려 보냈을까요? 인간을 벌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이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왜 하필 판도라였을까요? 어쨌든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고 균형이 안 잡힌 삐뚜름한 도자기 항아리 뚜껑을 툭 치기나 부수기는 훨씬 더 쉬울 것입니다. 악의를 품고 고의로 상자를 열어보는 의미로 변질한 언어적 이미지는 이미 우리 문화에 깊게 스며들였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가는 부분입니다. 에우리디케는 오르페우스의 오만함과 그의 대중적 평판의 지루함을 벗어나 갈망하던 평화를 스스로 찾습니다.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증오에 대해서 나탈리 헤인즈의 꼼꼼한 조사와 넓은 해석도 있습니다. 그리고 신화에서 늘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처참하게 묵살 당했던 이들의 목소리를 집요하게 찾아냈습니다. 책을 덮으니 작품을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알고 있던 여성들이 악당도, 희생자도, 아내도, 괴물도 아닌 사람이었다. 저자의 명쾌한 문장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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