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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여자들 2 - 4부 ㅣ 마스터스 오브 로마 4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12월
평점 :

카이사르의 여자들 2 완독
경제 전문가가 아닌 키케로가 집정관이 된 해에는 심각한 경제 불황이 한창이었습니다. 미트리다테스 왕이 땅을 정복하고 술라가 왕의 통치권을 빼앗으면서 공해상의 해적문제 마케도니아와 그리스의 동쪽에서 사업을 벌이려는 생각등 로마의 경제 문제는 동방에서 비록된 것이었습니다. 키케로는 이 불운을 어떻게 극복할 지가 카이사르의 여자들 2권에서 시작됩니다. 집정관 재임기는 분명 인기가 없을 뿐 실속도 없는 고난의 여정이 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4년 전에 집정관 가이우스 피소가 도입한 집정관 투표에서 뇌물수수를 금하는 법에 달렸습니다. 자신부터도 막대한 뇌물수수를 저질렀던 피소는 어쩔 수 없이 그에 반하는 법을 재정해야 하니 키케로가 최악의 구멍들을 막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나는 올해 로마의 아버지요, 수호자이며, 이번처럼 기괴한 상황에서도 내 의무를 다할 생각입니다! ---p.25
퀸투스 키케로의 양쪽 집안의 여러 여자들과 자녀들을 데리고 바닷가로 피서를 떠난 반면 마르쿠스 키케로는 상활을 지켜보기 위해 로마에 남습니다. 쿠리우스 가문은 쿠마이나 미세눔에서 휴가를 보낼 돈이 안타깝지만 없었습니다. 풀비아 노빌리오스는 무거운 9월의 여름을 그냥 견뎌야만 했습니다. 키케로에게도 고생스럽기는 마찬가지였으나 그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새로 입주한 저택의 넓고 호화로운 공간에 여전히 살짝 도취된 카이사르는 만찬회를 엽니다. 비열하고 부도독한 필리푸스 영감도 초대되었네요. 이 파벌에서 저 파벌로 수없이 편을 바꾼 것으로 유명한 그는 아직까지 살아 있었고 여전히 원로원 회의에 참석했지만 이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힘이 없어 보입니다. 한밤중 키케로의 집을 방문한 크라수스는 한통의 편지를 다급히 찾아왔는데 그 편지 내용에 경악합니다.
“바퀴가 너무 깨끗하면 끽끽 소리가 나고 멈추기도 하는 법이오.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 기름때가 조금은 있어야 세상이 훨씬 잘 돌아가는 거요.!” ---p.95
로마는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이 복잡하네요. 키케로의 피호민들은 그 아래로 폭력이 있다고 믿었고 다섯 명을 검거하고 자백을 받아내고 증거를 제시한 장본인, 그 영향력과 피호민들을 가진 자는 수석 집정관 키케로 였습니다. 그들의 체포와 구금에 대한 유일한 책임자였습니다. 37년 전 사투르니누스와 그 공모자들이 카피톨리누스 언덕 장악을 시도했다 포기했을 때와 여러 면에서 닮아 있는 이번사건을 잘 마무리 하고 싶은 키케로의 욕심은 어떻게 될까요?
콩코르디아 신전으로 포로 타르퀴니우스를 이끌고 가면서 아무리 관대하거나 부패한 배심원단이 와도 그들이 유죄 판결을 받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들은 처형될 것인지, 영구 추방, 재산 몰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로마 안에 있고 카틸리나가 군대와 함께 에트루리아에 있는 한 모든 것이 여전히 지극히 불완전한 상황일 것이고 그렇다면 루쿨루스 꼴이 날 것이라 키케로의 아내 테렌티아는 이 복잡한 문제를 한마디로 정리하면서 내조를 굳건히 합니다. “죄인의 자백이 있든 없든, 사형은 로마인다운 방식이 아닙니다.” 카이사르는 키케로와 반대 입장이군요. 원로원 의원들의 생각은 과연 키케로의 손을 들어줄지 흥미진진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선가 돌무더기가 정무관들을 향해 무섭게 날아듭니다. 말로 할것이지 무식하게 폭력을 사용하는 군요. 집정관, 법무관, 조영관들은 서로 앞다투어 신전으로 달아납니다.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히브리다의 임페리움과 지휘권을 박탈하고 최고 사령관 자리를 나이우스 폼페이수으 마그누스에게 주고 나이우스 폼페이우스에게 로마를 제외한 이탈리아 반도 내 어디에서나 유효한 임페리움 마이우스를 부여하자고 합니다. 이에 카토는 거부한다고 외쳤습니다. 5장에서는 공공 폭력 사태를 선동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카이사르와 카토의 신경전이 대단했습니다. 카이사르가 그렇게 만만한 인물이 아닌데 말 잘하는 그를 어떻게 대적할지 카토의 행보가 기대됩니다.
카이사르는 맺고 끝맺음이 정확한 사람이었습니다. 실라누스의 사망으로 세르빌리아는 카이사르와 결혼 하고 싶어 했지만 부정한 여자를 아내로 얻기는 싫었습니다. 카이사르가 행운을 타고 났다고 본인도 인정했고 다른 사람들도 말합니다. 이 비범한 인물이 뛰어난 자질을 많이 지녔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는 어떤 군대를 지휘했어도 승리자다 되었을 것이고 어떤 나라에 태어났더라도 지도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카이사르의 정치체제는 1인이 독재를 하되 민중의 뜻을 존중하는 체제였습니다. 원로원의 부패한 기득권 세력을 청산하고 시민들에게 권리를 일부 되돌려주는 방식인 것입니다. 카이사르가 시행한 개혁들은 무산자를 비롯한 빈민, 해방노예, 속주민들을 구제하고 원로원과 기사의 세력을 억제하여 민중에게 실익이 되는 개혁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민중이 카이사르를 지지한 것입니다.
2권 5장에서 관심 있는 이야기는 로마의 오월절 신전에서 열리는 행사였습니다. 신비로운 축제 보나 데아를 금발머리 여장을 한 가발을 벗기니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로 인해 망쳐버렸습니다. 데아 의식은 더럽혀지고 부정을 탔습니다. 축제는 계속 될 수 없었고 로마는 동시대인들이 기억하는 한 가장 심한 종교적 위기에 처합니다. 많은 사내 아기들이 테스타케우스 언덕 뒤의 날카로운 파편들로 버려지는 일 끔찍한 일이 신성한 의식이라니 그 의식이 로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한편 로마 군대를 얹고 세상을 정복하리라는 카이사르 3권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