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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의 씨 ㅣ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
이디스 워튼 지음, 송은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2월
평점 :

석류의 씨 완독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지원 도서입니다.
순수의 시대의 작가 이디스 워튼이 초대하는 위험 하지만 매혹적인 진홍빛 공포의 세계 이디스 워튼은 순수의 시대, 기쁨의 집, 이선 프롬 등의 작품으로 세계문학사에 분명한 이정표를 새긴 작가이자 국내에도 수많은 고정 독자를 가진 작가이지만, 그가 꾸준히 고딕소설을 써오며 고딕소설사에도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국내에 처음 번역되는 워튼의 고딕소설 세 편과 대표작 한 편을 담은 이 책은, 위선적인 미국 상류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했던 다른 작품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미스터리와 그를 추적해나가는 과정을 긴장감 넘치고 설득력 있는 문장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금 간 종이 리지의 심장을 뚫고 달콤하게 울렸다.-p.19
리지웨스트는 2년째 빈센트 디어링씨의 딸 줄리엣 디어링을 가르치고 있는데 아이의 관심은 온통 셀레스트와 수잔이 시장과 도서관에서 가져오는 일화들에만 있었고 공부에는 전혀 관심 없고 말을 듣지도 않는 다루기 힘든 아이였습니다. 이 지경에 이르자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빈센트 디어링에게 개입을 부탁하러 갔다가 일이 일어납니다. 파시에 있는 마담 클로팽의 스위스 호텔에 사는 가난한 선생 거기다 예쁜 갈색 머리에 신뢰를 담아 상대방을 바라보는 눈을 가졌다면 이렇게 무방비한 스물 다섯의 리지는 빈센트 디어링의 갑작스런 키스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안에 무언가 새로운 것이 깨어나는 것을 느끼며 두려움과 수치심, 디어링 부인에 대한 최책감 따위는 없었습니다. 소설의 시작은 이렇게 부적절한 관계로 시작이 됩니다.
거짓말 위에 세워진 행복은 언제나 무너졌고, 그 폐허 밑에 주제넘은 건축가를 묻어버렸다.
---p.67
그녀가 여태껏 읽은 모든 소설의 법칙에 따르면 그녀를 이미 한 번 속인 적이 있는 디어링 씨는 반드시 계속해서 그녀를 속일 것이고 그녀는 그가 계속해서 자기를 속이지는 않았다는 것으로 알고도 믿고 싶었습니다. 삼년의 세월은 그녀가 꿈꾸었던 그대로는 아니었고 어떤 환상들은 세월이 모두 가져가 버린것 같습니다. 짧은 순간 성공가도를 달리다가 갑자기 경제적인 어려움에 힘들었고 그로인해 몸이 아팠고 이런 것들이 연락을 끊을 정도의 사유가 될까 생각해 봅니다. 진정 사랑이 있었다면 어떤 장애물도 넘었어야 했지요. 그녀는 이제 지금 모습 그대로,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그 모습 그대로 남편의 새로운 이미지에 서서히 적응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녀의 꿈의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녀는 그를 사랑했고 “모르타르와 유리, 자갈의 쓸모없는 조각들로 단단한 대리석의 형태를 만들 수 있듯이 뒤죽박죽 섞인 비루한 것들에서 삶의 압박을 견디게 해줄 사랑이 빚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시작이 잘못됐음을 알기에는 가난한 리지 웨스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줄 누군가가 필요했던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쇠고리 같은 의식은 그들 또한 붙잡고 있다. 모두가 자신의 끔찍한 자아에 수갑으로 채워져 있었다. 어째서 다른 누군가가 되기를 바라겠는가? 유일한 절대 선은 존재하지 않는 것뿐이다.---p.120
세 작품과 달리 빗장 지른 문의 주인공은 휴버트 그래니스 남성입니다. 오래전 부유한 사촌을 독살하고 그의 유산을 상속받아 간절히 바라던 경제적 안정을 얻고 극작가로서의 꿈을 이룰 발판을 손에 넣습니다. 그러나 그가 꿈을 이루는데 중요한건 경제적 능력이 아니라 재능이 부족했던 것이었습니다. 두려움은 사라지고 무기력함이 다시 그를 찾아왔습니다. 피터 애스첨에게 털어놓은 후 처음으로 할 일이 없어졌음을 깨달았다. 지난 몇 주 동안 끊임없이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끌려 다녔다. 이제 한 번 더 그의 삶은 고인물처럼 멈추었다. 그는 거리 모퉁이에 서서 이리저리 쓸려가는 차들의 흐름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더 오래 느릿느릿 제자리를 맴도는 자신의 의식 속에서 부유하는 상태를 견딜 수 있을지 절망적으로 자문해 봅니다. 결국 마지막으로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세상에 꺼내 놓음으로써 인생에 한 번 스포트 라이트를 받고 싶은 어리석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휴머니스트 세계문학을 읽으면서 고딕소설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고딕소설은 중세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공포와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유럽 낭만주의의 소설 양식의 하나인데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까지 특히 성행했으며, 고딕소설이란 명칭은 중세의 건축물이 주는 폐허스런 분위기에서 소설적 상상력을 이끌어 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고딕소설들은 잔인하고 기괴한 이야기를 통해 신비한 느낌과 소름끼치는 공포감을 유발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휴머니스트 세계문학에도 고딕소설의 성격에 맞게 오랫동안 침묵을 강요당했던 초자연적이고 비합리적인 것들이 출현하게 됩니다.
여성은 변호사 남편과의 결혼과 동시에 주부로서의 안정과 보호를 보장받는 동시에 자유를 잃어버립니다. 평범한 생활이 지루했는지 금지된 영역을 자꾸 엿보게 되면서 남편의 죽은 전처에 관한 편지가 궁금합니다. <석류의 씨>는 주인공 살럿 애슈비가 추적하는 비밀은 표면상으로는 의문의 편지를 보내는 여성의 정체이지만, 이 비밀을 좇는 과정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편의 사랑을 받으면 만족스럽게 살고 있는 듯한 살럿이라는 여성의 삶의 실체는 밝혀지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