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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3 - 갑오년 농민군, 희망으로 살아나다 ㅣ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3
이이화 지음 / 교유서가 / 2020년 7월
평점 :

p.26 남쪽 바닷가 마을은 고을민이 한 집 건너 ‘동학군’이라 할 정도로 드세었고 그만큼 희생도 컸다. 이 언저리 양쪽에 유명한 두 지도가가 있었다. 오늘날에도 그들의 이야기는 저널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바로 배상옥과 이방언이다.
배상옥은 조선 말기 목포와 무안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동학 농민운동가입니다. 배상옥은 1862년 무안군 삼향면 대양리에서 배응채의 아들로 태어나 목포와 무안지역의 동학 대접주로써 활동했습니다. 1984년 4월 1차 봉기가 일어났을 때 논민군을 이끌고 참여 했으며 1894년 5월8일 전주화약 이후 무안군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목포와 무안지역을 통활, 9월 2차 봉기가 일어나자 2천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참여했으나 장흥 석대들 전투에서 대패하고 해남으로 후퇴하던중 밀고에 의해 일본군에 체포되 죽음을 맞게 됩니다.
우금치 전투와 청주전투에서 패배한 동하군들은 장흥 이방언 대접주의 지휘 아래 전남 지역 동학군에 합류해 휴일을 도모합니다. 동학군들은 1895년 1월 장흥과 강진 일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지만 막대한 사상자만 낸 채 처절한 패배를 맞이 합니다. 이방언 장군이 이끈 ‘장태전투’는 전남 장성에서 대승을 거두고 그 여세를 몰아 전주전투까지 참여하게 됩나다. 이이화의 동학농민 혁명사3권을 읽기 시작 했습니다. 나라를 위하는 마음에 한결같이 목숨을 마다하지 않고 참여한 희생정신에 이방언의 증손자 이종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p.30 장성해서 들은 말이지 “네 아비 형제를 다리 밑에 버렸다.” 증조 할아버지는 4대 독자셨소. 할아버지도 독자셨고, 귀한 손들일 텐데...... 관군이 기세등등 들이닥치고,,,,,, 오죽 혼배백산하셨겠는감. 이종찬의 말투에는 비분, 허탈감, 안타까움, 긍지 등 만감이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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