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성철 2 - 너희가 세상에 온 도리를 알겠느냐
백금남 지음 / 마음서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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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일제가 불교를 탄압하고 조선총독부 미나미 지로 총독에게 정면으로 맞선 마곡사 주지 스님이었던 본관은 여산, 본명은 송도암, 법명이 월면, 법호가 만공인 만공스님은 예사로운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무자가 무언인지을 화두에 짊어지고 다녔고 이땅에 불보살들이 많아서 처량하다고 느끼셨습니다. 이렇게 성철은 간월암에서 선정에든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수마는 여전히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만공스님이 말하는 경지에 오르고 싶었지만 번뇌 망상은 성철을 힘들게 했습니다.

 

P.19 “선의 본질이 무었이야? 거스르지 않고 강물처럼 그저 흘러가는 것이다. 그 물줄기를 거슬러서는 설령 그분들에게서 길을 찾는다 하더라도 결코 종착점에 이를 수가 없느니라.”

 

P.27 “내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삼촌 三春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노라.”

 

p.253 넓고 넓은 우주, 한없는 천지의 모든 것이 다 부처님입니다. 수없이 많은 이 모든 부처님께 정성을 다하여 섬기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성철은 경허 스님이 1899년 해인사에서 영호남 사찰을 중심으로 수선경사와 선원재건운동을 펼쳤다는 말을 만공 스님에게 듣고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성철은 깨달음과 깨침은 분명히 다른 사상임을 알게 되었고 깨달음이 지식, 즉 앎을 종자로 하는 것이라면 깨침은 앎을 비워내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선의 세계라는 것이다.

 

상봉이라는 이름을 갖고 한평생을 살아온 어머니의 머리를 깍은 이는 성원 노스님이었다. 아들을 찾아 천릿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도 없이 출가를 해버렸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정취암에서 자운 스님으로부터 보살계를 받고 초연화라는 법명까지 받은 후였고 아버지는 맏아들 성철에 이어 아내까지 통탄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신심은 강철처럼 단단했습니다. 성철이 어머니의 성품을 닮은 것 같았습니다.

수행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모질면 모질수록, 비정하면 비정할수록 그리움은 더 가까이 다가오는 법이다. 비구의 가슴속에 일고 있는 본능적 그리움은 결단력이나 오기로는 이겨낼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성철도 예외일 수 없었다. 그도 인간이었습니다. 불공의 대상은 무궁무진하여 미래겁이 다하도록 불공을 하여도 끝이 없습니다. 부처님을 모시고 불공을 하며 살 수 있는 우리는 행복이라 하였습니다.

 

리딩데이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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