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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 서커스
엘리자 수아 뒤사팽 지음, 김주경 옮김 / 북레시피 / 2021년 6월
평점 :

바이칼 호수 지역 출신 안톤, 독일 출신 니노, 우쿠라이나 국적의 안나 이렇게 세 명의 트리오는 ‘러시안 바’ 종목으로 세계에서 뛰어난 5개 팀중 하나이고 블라디보스토크 서커스의 중심 인물입니다. 무대감독 레옹을 중심으로 화자인 나탈리는 30명의 무대의상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의상의 대부분은 중국의 전통 복장이나 중세 유럽의 왕족 혹은 성직자 복장을 이용한 디자인으로 하고 나에 대한 그들의 신뢰가 자부심을 느끼게 해줍니다. 엘리자 수아 뒤사팽 <블라디보스토크 서커스>는 신뢰와 친밀감을 중요시하는 서커스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작품입니다.
P.68 붉은 벨벳으로 둘러싸여 있는 무대를 중앙에서 트리오의 모습은 마치 횡격막처럼 보였다. 밖으로 내뱉으려다 다시 들이마시는 숨결이 폐를 꿈틀거리게 하듯 안나의 움직임에 따라 리듬을 타는 진동.
p.83 “난 말이죠, 관객이 오는 건 그저 서커스가 아직도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디까지 버티는지 보려는 거죠. 사람들은 꿈을 원하지만, 솔직히 그들이 바라는 건 흠을 찾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에게서 단점이나 결함 같은 걸 발견할 때, 오히려 자신은 안심하게 되거든요.”
p.131 당신들을 믿고 쓰러지라는 거야? 난 속으로 화가 났다. 아무 보호 장비도 없이 바닥에서 1미터 60센티나 떨어진 데 떠올라 있다니! 등 뒤에서 니노로부터 계속 지시가 떨어졌다.
충분히 높이 올라가서 3회전 할 시간을 가지려면 다리에 훨씬 더 힘이 들어가야 하고 안나는 며칠 전 다친 다리의 통증의 두려움 때문에 주저하며 훈련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안톤의 벌어진 어깨 근육에 나탈리는 치수를 재고 노트에 기록했다. 서커스에서 가장 힘든건 신뢰라는 단어였다. 서로를 이해하고 안전벨트를 제거하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신뢰를 쌓았다면 유연성과 기술력, 청중들의 반응, 의상도 한 몫을 하게 됩니다.
서커스장에서의 배우들은 평범한 일반인과 다름이 없습니다. 다만 목숨을 걸고 공연을 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낯선 곳,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러시안 바’라고 하는 서커스 종목을 통해 의사소통을 이루고 서로 간 ‘신뢰’와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섬세하고 감미로운 소설입니다. 아들의 끔찍한 사고를 겪은 안톤, 사랑하는 곡예사 여인을 따라 러시아에 왔다가 배신을 당해 싱글이 된 레옹, 최고 스타였던 이고르의 빈자리를 대신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는 안나 모두 상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식당에 앉아 테이블 위에 바를 올려놓고 바를 감고 있던 흰 붕대를 자르니 이어 붙인 바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체크하지 않았다면 누군가에게는 또 위험이 닥쳐왔겠죠.
책을 읽으니 영화 조커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서커스 아티스트들의 두꺼운 화장 뒤에 숨어 있는 왠지 모를 약간의 서글픔과 털이 없는 바짝 여윈 고양이 벽이 불러일으키는 애처로움 블라디보스토크 서커스 공연장엔 ‘러시안 바’가 요구하는 신뢰를 조금씩 서로 쌓아가고 있습니다. 다음날 내가 온지 38일째 되는 날. 안나는 도중에 내려오지 않고 계속 바 위에서 공중제비 트리플 4회를 성공시킨 세계 최초의 여자가 되었습니다.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