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당신들
이주옥 지음 / 수필과비평사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필속에는 작가의 삶이 스며있다. 그래서 허구의 이야기를 구성하며 극적인 재미를 더해가는 여타의 문학작품과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살아온 날들이 때론 빛이 되고 때론 어둠이 되어 캔버스에 채워가는 것이 수필이라고 합니다. 이주옥 수필집은 바로 그런 문학입니다.

 

 

다도는 무엇보다 기다림을 밑바닥에 깔고 앉는 일이다. 주전자에 물을 부어 끊을 동안 찻잔을 자리런히 정리한다. 물이 끊으면 뜨거운 물로 다관을 데운다. 따뜻해진 다관에 찻잎을 넣고 그사이 제 속도로 온도를 품은 물을 붓는다.이 모든 것들은 시간과 손을 잡아야 한다. 자칫 시간을 거스르다 보면 물은 고소함을 뺏고 떫고 쓴 맛으로 심술을 부린다. 진초록 찻잎이 몸을 풀어 연노란 빛이 될 때까지 기다리며 차 빛깔을 다듬는 일은 시간과 쇠 주전자의 은밀한 합작이다. 이를 시간의 숨결과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명명해도 좋으리라.---다시 찻물을 끊이며 중에서

 

 

어쩌다 관계를 정립하는 분명한 이름 대신 타인에게 칭하는 애매한 ‘당신’은 예측할 수 없는 모호함의 문턱에 걸려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그땐 꽤 아슬아슬한 경계의 말이 된다. 혹여 바라보는 눈빛이 미혹함으로 비치면 그때의 ‘당신’은 불시에 의식의 바닥까지 침몰한다. 그러나 그 인연에 다소 억지스러움이 동반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는 금세 풀린 옷섶을 여미듯 정갈함으로 무장되고 관계는 구겨진 종이컵만 놓은 공원 벤치처럼 황량해진다.---세상의 당신들 중에서

 

 

뱃살이 좀 출렁거리면 어떠랴. 관절 마디가 꺽이는 소리가 나고 웨이브가 좀 뻣뻣하면 어떤가 작가는 제주 올레길을 걸으며 총천연색 물감으로 그려놓은 푸른 바다와 연보라 겨자꽃들 사이 거침없이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때론 음악으로 눈물 한 방울 찍어내고 젊은시절에는 수없이 밀고 당기는 삶을 살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은 그런 삶과는 이별했다고 한다. 작가의 조급하지 않고 여유로워진 삶을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 <세상의 당신들>은 많은 삶의 고비를 넘기도 인생의 제2막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읽은 봄날의 수필집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