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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주름들 - 감각을 일깨우는 시인의 예술 읽기
나희덕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4월
평점 :

폴란드의 대표적인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는 말한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타인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이방인이라고 상처와 고통에도 불구하고 “타인은 지옥이 아니”라고. 이 말은 사프트르의 희곡 <닫힌 방>에 나오는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라는 대사를 뒤집은 것이다. 시적 화자가 앉아 있는 곳은 닫힌 방이 아니라 저녁 무렵의 광장이다. 그 열린 공간에서 모르는 사람들의 얼굴을 열심히 바라보며 화자는 “저마다 다른, 각자 뭔가를 말하고, 설득하고, 웃고, 아파하는 얼굴들”을 읽어내려고 애쓴다. 예술이란 얼마나 많은 주름을 거느리고 있고 우리 몸과 영혼에도 얼마나 많은 주름과 상처가 있는지, 주름과 주름 상처와 상처가 서로를 알아보았고 파도처럼 일렁이며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하였다. 등단32년 나희덕 작가의 말 이다.
길이란 우리가 어떤 속도로, 얼마나 낮은 자세로 걸어가느냐에 따라 매우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맨발의 보행자에게 같은 생명을 발견하고 느끼는 터전이지만, 속도광에게 길은 끝없이 단축해야 할 공간적 거리에 불과하다. 더 빠르게, 더 편리하게, 더 부유하게 살려는 사람이나 사회에 있어서 ‘길’은 오로지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가치를 지닌 뿐이다,---P56
우리의 몸은 수많은 죽음의 인자들에 대항해 매 순간 싸우고 있다. 몸은 사람과 죽음이 싸우는 전쟁터이자, 욕망과 초월이 하루에도 몇 번씩 엎치락뒤치락하는 도량이다. 따라서 한 사람의 초상화에는 그의 몸이 환경에 어떻게 대응해왔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런 의미에서 한 사람을 그린다는 것은 한 세계를 그리는 일이다. 그리고 한순간을 그린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그리는 일이기도 하다.---P62
“나는 렌즈 속 클로즈업된 주름들에서 엄마의 생애 전체를 들여다본 것 같기도 했다.” 한설희 사진작가는 같은 모습으로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엄마가 푸른 잎이 낙엽으로 탈바꿈하듯 본연의 빛을 잃어가고 있다고 느껴서 팔순 어머니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주름진 손과 얼굴, 고요히 굽이치는 흰 머리칼, 낡은 옷과 이불, 금이 간 거울과 오래 된 물건들, 어두운 방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노모의 모습은 단순히 늙어가는 육체가 아니라 아름다운 피사체가 되어 ‘한 편의 시’ 처럼 피어난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롱랑 바르트는 1977년10월25일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날부터 <애도 일기>를 써 내려간다.
아름다움이란 늘 바깥에 있는 어떤 것, 타인에게서 발견되는 어떤 것이다.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