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살로 읽는 세계사 - 중세 유럽의 의문사부터 김정남 암살 사건까지, 은밀하고 잔혹한 역사의 뒷골목 테마로 읽는 역사 5
엘리너 허먼 지음, 솝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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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수저를 들기 전에 감별사들은 음식을 검사하고 냅킨과 식기에 입을 맞추었을 뿐 아니라 식탁에서 유니콘의 뿔을 천천히 흔들었다. 때로는 음식에 찔러 넣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것을 독 가까이에 가져가면 표면에 물방울이 맺히고 색이 변하면서 떨린다고 믿었다. 하지만 오히려 뿔을 흔드는 하인들이 땀을 흘리고 하얗게 질리며 부들부들 떨 가능성이 높았다. 만에 하나 왕을 독살하려 했다는 혐의라도 받게 되면 끔찍한 고문을 당했기 때문이다.

 

루이 14세는 자기 동생 또는 로렌의 기사를 범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녀가 죽은 바로 다음날 부검을 시행했다. 그 자리에는 프랑스 의사17명과 영국 의사 2명, 영국 대사 몬터규 경이 참석했으며 거기에 더해 영국 사람을 포함한 100여 명이 모였다. 검시에 참석했던 생 모리스 후작은 이런 기록을 남겼다. “왕제비의 배는 그녀가 죽은 뒤부터 무척 기이한 모습으로 부풀었다. 맨 처음 몸을 절개했을 때 엄청난 악취가 충겨 검시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뒤로 물러났다.

 

 

독살을 당했다면 손상되었어야 했을 위는 “어두운 입술 모양의 상처 하나”를 빼면 건강해 보였다. 영국 의사 알렉산더 보셔가 위에 난 구멍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하려 하자 책임자였던 프랑스 의사는 “신경 쓰지 마시오. 이 구멍은 내가 부검 가위로 절개할 때 실수로 낸 것일 뿐이요”라고 말했다. 의사들은 과열된 담즙의 불균형이 헨리에타에게 당시 “콜레라 모르버스‘ (cholera morbus) 라고 부르면 장염을 일으켜 목숨을 앗아갔다고 결론지었다.

현대의 진단은 이렇다. 헨리에타는 3년 동안이나 간헐적 복통, 속 쓰림, 메스꺼움 같은 위궤양 증상을 보였다. 1670년 6월29일 그녀가 치커리 차를 마셨을 때 궤양이 파열되어 위산이 체강 사이에 있는 곳으로 흘러 들어간 것 같다. 그녀는 마치 비소중독 증상처럼 메스꺼움, 구토, 설사를 경험했고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

 

 

하인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다행히 풀려났고 , 그 당시 죽은 주인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하인들이 독살범으로 몰려 억울하게 사형을 당했을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고대에는 식물성 독이 인기를 얻었지만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암살자들은 중금속 성분의 독을 선호했습니다. 19세기 이후에는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화학물질과 방사성물질의 혼합물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안티몬, 비소, 납, 수은 등 중금속 성분의 독과, 바꽃, 벨라도나, 디기칼리스, 크리스마스로즈, 독미나리, 사리풀, 독버섯, 양귀비, 주목나무 등 식품의 독, 그밖에 동물성 독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청산가리 우리생활에는 수많은 독들이 있고 <독살로 읽는 세계사>에는 중세 유럽의 의문사부터 은밀하고 잔혹한 역사에 인물들에 독이 사용되었거나 혹은 병을 ‘독살’로 오인한 사건들까지 16세기의 해부법과 법의학에 의거하여 씌여진 흥미로운 세계사입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서 현대인들이 먹고 바르는 제품들 속에도 수많은 독성물질이 눈에 보이지 않게 있습니다, 의학이 발달한 미래에는 지금 우리가 사용했던 것들에 대해 또 누군가는 밝혀내겠지요.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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