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말과 시간의 깊이
황현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7월
평점 :

몇 년 전부터 황현산(1945-2018)작가의 책을 찾아서 읽고 있습니다. 한 문장도 놓치고 싶지 않는 작가의 비평은 스스로에게는 겸손하다고 하지만 독자인 저에게는 큰 울림이 있는 책입니다. 문학이 대한 그의 소박한 생각이며, 변하지 않을 믿음이 책에 전해집니다.
나는 분석하기를 좋아하였지만, 심리 비평이나 기호학 같은 '과학적' 방법을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 이런 방법들은 모든 것을 분류하고 분류된 것에 단일한 얼굴을 부여한다. 그 밑에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고, 게다가 은폐되어 있다. 진정한 분석은 분석되지 않는 것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거기에 한 정신의 고통이 있고 미래의 희망을 위한 원기가 있다. 분석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그 원기를 사랑하였다. 그러고보면 나의 분석은 내가 말을 걸고 싶은 작가들에 대한 내 존경과 사랑의 표현이었던 것 같다. 내 글이 비록 부족하지만, 이 존경과 사랑은 아주 늦게라도 전해질 것이라고 믿는다-작가의 말
모든 방패를 다 뚫을 수 있는 창과 모든 창을 다 막을 수 있는 방패에 관한 고사의 명성은 이제까지 그래온 것처럼 앞으로도 긴 생명을 누릴 것이 분명하지만, 다만 아쉬운 것은 자신의 상품을 그렇게 허풍 떨며 광고 했다던 무기 장수가 그 두 무기를 맞부딪쳐보았는지 어쨋는지 그 뒷이야기가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무기의 성능이 사실이기를 바라며 그것들이 충돌하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알고 싶다. 그런 순간은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으며 그 두 개의 무기가 양립한다는 가정 자체가 맹랑한 것이라고 지레 현명하게만 말할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고사는, 거기 담겨 있는 교훈이야 어떠하건, 우리의 인식을 넘어서는 그 황홀한 순간에 대한 기대감을 은근히 부추기지 않았더라면 그 명성이 이렇듯 길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청준의 창과 방패가 장편소설 [자유의 문]에서 그 알레고리의 틀과 액자소설의 밑바탕을 이루기까지 한다. 우리에게 예감으로만 존재할 뿐 알려지지 않는 어떤 순간을 현실 속에 실현하기 위해 비극적인 삶을 떠맡아야 하는 사람들의 알레고기라고 그것은 아마 표현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소설가는 이 잃어버린 것들을 추슬러 그 결을 따라 ‘수필’함으로써 소설가가 된다. 그의 어린 날을 키웠던 모든 것들이 되살아나 이제 ‘소설가’와 그의 소설을 키운다. 잃어버린 그것들을 그의 소설은 고스란히 간직한다. 소설은 그것이 말하려는 것과 온전히 하나가 된다. 작가가 저 몰락한 인간들로부터 발견하는 위대함은 곧 소설의 위대함이 된다. 소설가가 자기를 비워버리고 제 키를 염려하지 않는 곳에서, 저 커나가던 사람들이 소설을 키우고, 그것이 소설가의 키가 된다.- 소설.수필.시- 이문구의 [관촌수필]을 다시 읽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