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의 진자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67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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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눈을 감고 진자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내가 진자(振子)를 본 것은 그때였다. 교회 천장에 고정된, 긴 철선에 매달린 구체(球體)는 엄정한 등시성의 위엄을 보이며 앞뒤로 흔들리고 있었다. 까소봉은 그때, 진자가 흔들리는 주기는 철선 길이의 제곱근과 원주율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원주율이라는 것은 인간의 지력이 미치지 않는 무리수임에도 그 고도의 합리성이 구체가 그려 낼 수 있는 원주와 지름을 하나로 아우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구체로 된 동추는 커다란 채색 유리를 통해 들어온 석양에 빛나면서 흔들릴 때마다 그 빛을 되쏘았다. 동추가 되쏘는 일렁이는 빛살은 창백했다.

 

 

6월23일 오후4시, 진자는 한쪽에서 천천히 다가와 중심으로 게으르게 날아갔다가 진동의 중심에서 다시 힘을 얻을 운명인,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의 평행 사변형을 자신있게 통과했다.나는 경외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진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야코포 벨보가 옳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나는 그가 지나친 미학적 집착 때문에 진자를 두고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진자에 대한 생각에서 그가 보여 준 상상력의 비약이 무형의 암적인 존재가 되어 그의 영혼에 자리 잡아 가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만일 진자에 관한 그의 말이 옮다면 계획이니 우주적인 음모니 하는 것도 헛소리가 아닐 터였다. 그렇다면 내가 하지 전날 밤에 바로 그곳에 있게 된 것도 잘한 일인 셈이다. 야코포 벨보는 미치광이가 아니었다. 그는 유희를 통하여 진실을 발견한 셈이었다.

 

 

 

설명서는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술과 교류의 전당을 만들고 싶어 하는 대회의 점잖은 신사분들 덕분에 사업의 결실이 가능했다고 장황하게 생색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업을 결실을 서술하는 데 사용된 언어가 프랜시스 베이컨이 <새 아틀라티스>에서 솔로몬의 전당을 묘사하는 데 사용한 바로 그 언어였는데 내가 어떻게 그걸 믿을 수 있겠는가. 나, 야코포 벨로, 디오탈레비, 이렇게 셋만이 진실에 접근한 것은 아닐까?

 

 

밤만 거기에서 지내면 답이 마련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자면 문을 닫는 시각에 박물관에 눌러앉아 여기에서 밤을 보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는 나 자신에게 다짐을 주었다. 힘을 내어라 <지혜>같은 것은 생각지 말라. 오로지 <화학>에서 도움을 구하라.

 

 

20세기를 대표하는 기호학자이자 미학자, 소설가, 철학자, 역사학자, 인류학자등 많은 수식어가 필요한 이탈리아의 거장. 움베르토 에코의 이번 작품은 광신과 음모론의 극한 에코의 미스터리소설 [푸코의 진자] 1988년 이탈리아에서 발표된 장편소설로 이번에 개정판으로 출간된 책입니다. 읽는 내내 해박한 지식이 총망라되어 탁월한 이윤기번역가에 의해 읽기의 흥미와 재미를 더합니다.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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