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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숲의 사랑
장수정 지음 / 로에스미디어 / 2020년 11월
평점 :

소설의 시작 여자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드레스라고 하니 파티나 잔치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그저 평범하고 수수하며 단지 색이 검을 뿐인 긴 치마였다.

책소개- 숲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많다. 하지만 <검은 숲의 사랑>에 나오는 숲은 단순한 공간적 배경을 넘어선다.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주인공과 함께 숲의 내밀한 본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간 잊고 지낸 자연의 감각들을 회복하고 음미한다. 어쩌면 이 책은 사랑을 소재로 한, 숲에 대한 예찬이기도 하다.
숲을 좋아하는 장수정 장편 연애소설 <검은숲의 사랑> 숲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책방통행 @bookmessenger에서 협찬해 주셨습니다.
여자 주인공 소유는 매년 나뭇잎이 푸른 것은 단순히 생리적 현상이 아니라 매년 푸르게 돋아나겠다는 나뭇잎의 맹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의 사랑도 그와 같아야한다고 굳게 믿는다. 그것이 불륜이건 아니건 사랑은 상대에 대한 충성과 맹세의 동의어이며 끝까지 지니고 가야 할 삶의 가치라고 믿는 것이다. 그런 태도는 숲이 곧 삶이고 생활의 터전인 주인공에게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 책은 삶의 이정표로서의 사랑이 결국 인간을 어떻게 변모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중소기업 전무로 오라는 제안은 그 이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시마의 능력을 높이 사서가 아니라 시마가 현재 고문으로 있는 대기업에 줄을 댈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달라는 일종의 술 상무 역할에 지나지 않았고 삼십년간 근무한 회사에서는 그런 위치였고 ‘암’이라는 것이 몸에 자라고 있었다.
불륜이라는 소재를 사랑으로 인정할 만큼의 나의 가치관은 개방적이지 않으나 숲에 대한 감각적 묘사는 좋았습니다. 한여름 밤. 어두운 숲에 등불을 켜고, 작은 연못을 품고 있는 상수리나무숲, 처음 들어본 나방의 이름들 푸른곱추재주나반, 홍줄불나방, 숲에 가면 기분이 좋아지는 맑은 냄새, 나무가 주는 기분 좋은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던 숲은 이 작품에서는 독특한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가진 빛나는 존재들의 공간을 보여줍니다.

햇살은 지나다 잠깐 들른 것인 듯 나뭇잎 사이로 짧게 반짝였다. 우듬지 쪽에서 푸른 동고비 한 마리가 줄기를 타고 내려오다 시마를 보더니 휙 방향을 바꿔 재빨리 위로 올라가서는 푸른 고치 밖으로 사라졌다. 시마는 두 팔을 벌려 귀룽나무 줄기를 안았다. 뺨에 와 닿는 나무 표면은 거칠고 건조하며 미지근했다. 잠시 후 시마는 트렌치코트와 양복 상의를 벗어 숲 바닥에 내던지고 와이셔츠 소매를 걷었다. 그리고 맨 팔로 애무하듯 천천히 나무의 표면을 어루만졌다.
--- p.91
시마는 오른쪽 팔목과 손가락, 그 손가락의 끝에까지 최대한 힘을 주었다. 손바닥은 활짝 펴고 손가락 끝만 살짝 오르며 연잎 모양을 만들었다. 그러자 손가락 하나하나는 겹겹이 포개진 능선 모양이 되고 엄지와 검지 사이 합곡 아래 둥근 어둠은 오래된 검은 연못이 되었다.---p143
숲을 좋아하는 장수정 장편 연애소설 <검은숲의 사랑> 숲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책방통행 @bookmessenger에서 협찬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