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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헤매다가
정미진 지음, 김승아 그림 / 엣눈북스(atnoonbooks)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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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가 중심이긴 한데, 청춘물·성장물의 결을 동시에 갖고 있고 스릴러와 미스터리까지 얹혀 있다. 장르가 계속 겹쳐지는데도 산만하게 흩어지지 않고, 오히려 “소설이 이렇게도 될 수 있나?” 싶은 밀도로 이야기가 밀어붙인다.


개인적으로 남자 주인공 같은 타입을 좋아하진 않는다. 답답한 면이 분명히 있어서.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종류의 ‘순애보’라 어떻게든 응원하게 되는 인물이다. 영화화된다면(혼자만의 상상 캐스팅이지만) 임시완 배우가 떠올랐다. 반대로 여자 주인공은 그와 정반대의 결을 갖고 있어 대비가 더 또렷하다.


‘뇌공학’이라는 소재를 이렇게 소설적으로 설득력 있게 활용한 작품은 오랜만이었다. 과하게 판타지로 치닫기보다 현실적인 장치를 충분히 깔아 몰입에 도움이 된다. 물론 소설적 허용과 클리셰가 없진 않지만, 거슬려 읽기 힘들 정도는 아니다.


읽는 내내 생각할 지점도 많다. 특히 윤리적인 문제들이 얽혀 있어 쉽게 단정하기 어렵고, 표면적으로만 보아도 “평행세계의 내가 있다면, 나를 원래 세계로 되돌려놓는 게 과연 옳을까?” 같은 질문은 곱씹어볼 만하다.


굳이 미스터리 장치를 더하지 않아도 재미가 충분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그럼에도 이야기가 가진 추진력과 소재 활용이 좋아 교환독서용 책으로도 기꺼이 선정했다.


(이 글은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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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만 남은 김미자
김중미 지음 / 사계절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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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엄마와 다퉜다. 잔소리를 듣고도 아무 말 못 한 채 씩씩대면서 돌아섰지만, 이상하게도 어렴풋이 안다. 언젠가 이 순간까지도 후회로 남을 거라는 걸. 그래서인지 이 책은 ‘읽기 전’부터 내 쪽을 향해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만 남은 김미자』는 부모에 대한 사랑, 원망, 오해 같은 복잡한 감정들을 정면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김미자는 화자(저자)의 어머니 성함이다. 책을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신체 능력과 인지 능력이 사라져 가는 과정 속에서도 끝내 크게 남는 건 한 사람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보게 된다. 제목이 가진 의미도 그 지점에서 선명해졌다.


나는 예전에 엄마에게서 “나중에 내가 늙으면 나 돌봐줄 거야?”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확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취업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섣불리 약속을 하겠냐고,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겠다는 ‘현실적인 신념’으로 답했는데… 엄마는 그 말이 꽤 큰 상처였다고 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말의 논리와 마음의 진심은 종종 어긋나고, 가족에게는 그 어긋남이 더 깊게 남는다.


책을 덮고 나서 ‘가족’이라는 존재가 유난히 크게 다가왔다. 미운 순간에도 완전히 미워할 수 없는 관계. 다만 작가가 그려낸 가족은 내게는 조금 이상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풍족한 가족’은 아니지만, 마음만큼은 계속 돌아오고, 결국 함께 있으려 애쓰는 사람들. 무엇보다 공부방 같은 공간을 만들어 온기를 나누는 장면이 오래 남았다. 관계가란 결국 함께 머물 자리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니까.


나에게 또 다른 “가정”이 꾸려질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쉽게 “나도 이런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말은 하지 못하겠지만, 대신 생각은 든다. 공부방처럼 누군가에게 열린 작은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새로운 가족(커뮤니티)을 만들어갈 수는 있지 않을까. 나만의 도서관 아지트를 만들어 누구든 들어와 책을 읽고 쉬다 갈 수 있다면—그건 또 다른 형태의 가족일지도 모른다.


읽고 나면, 결국 남는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가족에게 어떤 마음을 ‘남겨’왔고, 앞으로는 어떤 마음을 남길 것인가.


(이 글은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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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머리보다 중요한 눈치 사용 설명서 - 마음의 벽을 넘어, 배려로 완성하는 직장생활
가와하라 레이코 지음, 송해영 옮김 / 한가한오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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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이 책이 저 같은 사람—도움이 필요한 걸 알면서도 “그냥 지나치게 되는” 쪽에 가까운 사람—을 위한 책이라는 문구가 마음에 걸려 읽게 됐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자기계발서 특유의 뻔한 조언이 반복될까 봐 기대가 크진 않았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현실적이었습니다. 이 책이 말하는 눈치는 “눈치 보면 성공한다” 같은 처세의 논리가 아니라, 눈치를 통해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가 결국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고, 관계의 기회를 조금이라도 더 넓힌다는 방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상사 비위 맞춰라”, “상대가 좋아하는 선물을 줘라” 같은 공식이 아니라, 내가 내 방식대로 고민하고 마음을 써보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데 그 부분이 특히 좋았습니다. 결과(상대의 반응)는 결국 상대의 몫이라는 말도요.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책 안에 수수한 파란색 하이라이트가 미리 표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자칫 집중이 흐트러질 수 있는 자기계발서 읽기에서, 자연스럽게 중요한 문장에 시선이 가도록 도와줘서 “결국 필요한 내용은 챙겨 읽게” 만들더라고요.


저는 여전히 ‘일머리’보다 ‘눈치’가 더 중요하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배려심이 생각보다 높은 가치를 지닌다는 것, 그리고 성공과 별개로 더 좋은 배려를 선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남았습니다.


( 글은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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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삼각 둘이서 4
남순아.백승화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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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둘이서’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은 순아와 승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인’이라는 소개를 먼저 접하고는 어떤 작품을 만들었는지, 어떤 현장을 살아왔는지에 시선이 쏠렸는데, 막상 읽는 동안 내가 더 오래 붙잡고 있던 건 영화 자체보다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이름이 비슷한 두 사람이 만들어낼 ‘재미있는 연결’ 정도를 예상했지만, 더 중요한 전제는 둘이 연인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전 권인 『관내 여행자-되기』와는 결이 확실히 다르게 다가왔다. 이 책은 관계가 전면에 나서기보다, 관계가 생활의 바탕으로 깔려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순간들이 핵심처럼 느껴진다.

읽으며 자주 생각했다. 이건 ‘연애 에세이’라기보다 ‘생활 에세이’에 가깝다고. 직업이 스며든 일상 속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 말투, 속도 같은 것들이 쌓여 관계의 온도를 만든다. 사랑을 말할 때조차 과장하거나 상대를 압도하지 않는 표현들이 오히려 더 오래 남았다.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순아가 준비한 생일선물에 관한 이야기였다. 보통은 “그날을 나와 함께 보내고 싶다”는 마음에서 멈추기 쉬운데, 여기서는 상대가 ‘마주하게 될 경험’을 미리 설계하고 준비한다. 하루를 더 소중하고 신선하게 만들기 위해 손을 움직이는 방식이 꽤 어른스럽고 멋져 보였다.

큰 사건 없이도, 함께 사는 사람들만이 만들 수 있는 장면들이 있다. 관계를 거창하게 포장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관계 때문에 더 따뜻해지는 생활의 기록을 좋아한다면, 이 책은 충분히 좋은 속도로 곁에 와줄 것이다.

#도서제공 #도서협찬 #서평단 #이인삼각 #남순아 #백승화 #둘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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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우리 집도 아니잖아
김의경 외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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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이라니. 소설이라니. 그런데 이건 픽션이 아니라, 거의 르포에 가깝다. 읽는 내내 “집”이라는 주제가 이렇게까지 사람을 서늘하게 만들 수 있나 싶어서 몇 번이나 손이 멈췄다.

나도 부동산을 잘 아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집이 ‘사는 곳(live)’인지 ‘사는 것(buy)’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내가 머물 아늑한 공간이 필요했을 뿐인데, 그게 사치처럼 취급되는 분위기 속에서 결국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응, 사치가 맞아.”라고 말하게 만드는 사회라니.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나 역시 사람들이 어디에 사는지에 따라, 의식하지 못한 채 평가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들이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아파트 브랜드를 적는 일과, 20대가 되었다며 서로 집들이를 다니고 “집 좋다”는 칭찬에 은근히 우쭐해지는 마음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과연 있을까.

작품들 대부분이 현실을 그대로 옮겨온 듯해서 더 무섭고 아팠는데, 그중에서도 ‘그림자’로 표현된 한 편은 특히 끝까지 꼭 넘겨 보길 권하고 싶다. 다른 작품들이 덜 재미있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현실적이어서 숨 막히는 와중에 그 작품만큼은 “이건 소설로만 가능하다”는 방식으로 정확하게 찌른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내가 사회적 약자라고 말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이번 이사를 준비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것을 따져야 했다. 1원 차이로 대출이 되고 안 되고가 갈리고, 지나치게 저렴한 집을 보며 ‘왜 이렇게 싸지?’부터 먼저 의심하게 되는 마음까지.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사람은 얼마나 쉽게 불안해지고, 얼마나 빨리 계산적인 사람이 되는지 실감했다.

언제쯤 우리는 편하게 살 수(live) 있을까. 집이 다시 ‘부동산’이 아니라 ‘안식처’로 정의되는 날이 오긴 할까. 이 소설집은 그 질문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들이민다. 그리고 읽는 사람에게 묻는다. “당신도 이미 알고 있었던 거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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