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페미니즘 사상 - 지식, 의식, 그리고 힘기르기의 정치 여이연이론 18
패트리샤 힐 콜린스 지음, 주해연, 박미선 옮김 /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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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여성주의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 안에 내면화된 백인우월주의와 대면하고 그것에 저항하며 대결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오랫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고 또 오랫동안 외면해 온 것, 우리 안의 내면화된 백인우월주의를 성찰해보도록 도전한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미국의 영향을 받아온 지 백년만에 미국의 흑인과 조우하게 되었다. 물론 그간 흑인작가들의 문학 번역작품 번역본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바바라 크리스쳔, 데보라 맥도웰 등과 더불어 탁월한 흑인 페미니스트인 패트리샤 힐 콜린스는 80년대부터 백인 중심적인 페미니즘 논쟁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흑인여성의 목소리를 들리게 하는데 '1등' 공신에 들어가는 '스타'급 흑인 페미니스트 이론가-사회학자이다. 지금은 매릴랜드 대학 사회학과 및 여성학과 교수로 활동중.

80년대 콜린스는 흑인여성의 관점에서 흑인모성을 거론하면서, 모성을 둘러싼 백인중산층여성중심적 여성주의에 균열을 내면서, 이견들의 경합을 통한 논쟁 지형을 재구성하고 페미니스트 아젠다 재정향의 탁월한 방식을 보여준 바 있는 학자다. 그렇지만, 콜린스의 이런 논의는 한국에 소개된 바도 읽혀진 바도 거의 없었다.  

올해 드디어 번역출간된 <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노예제 시절부터 이어져 온 미국 흑인여성들의 일상적 경험과 이야기로부터 흑인 페미니즘을 사상으로 집대성한 역작이다. 그래서,  미국 학부 3,4학년 과목과 대학원 수업 교재로 널리 이용되기도 한다. 
 
이 책의 장점은 1) 명료한 내용과 평이한 문장, 무엇보다 정치적으로 분명한 입장과 이론과 사상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존과 일상경험에서 나온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는 점. 

2) 흑인여성들을 인종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의 피해자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과 저항의 주체요 지식생산자 등 다면적으로 관찰한다는 점이다.  

 3) 그리하여,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억압을 흑인 여성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분석하고 여성주의적 지식으로 만들어내는 이론적인 날카로움과 명료함+문학적 상상력. 

많은 (페미니즘) 번역서들이 1장. 푸코, 2장. 들뢰즈, 3장 프로이트 식으로 (페미니즘 입장에서의) 주석, 해제인 것과 달리,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흑인여성억압을 분석하면서 이론화하는 이 책의 방법론은 페미니즘 사상 읽기가 재미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간 우리 사회는 '백인우월주의'를 내장하고 있는 연유로 해서, 흑인 페미니즘의 통찰과 성과로부터 배우는 일에 게을렀다. 지난 몇 년간 흑인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21세기의 희망은 흑인 및 소수 인종 여성들의 목소리에서 나올 것이라 생각해 왔는데, 이 책은 그런 희망의 근거가 무엇인지, 왜, 어떻게 그런지를 보여주는 책들 중 하나다.

또한, "난해한 전문적 어휘"로 가득찬 다른 페미니즘 번역서들과는 달리 (사실, 특히나 페미니스트 학자들의 글을 두고 "난해"하다는 것만큼 이데올로기적인 것도 없을테지만), 실천적으로 흑인여성들에게 '힘과 권력'을 실어주는 정치(학)를 가동시키기 위해서 이론이 어떻게 봉사하(ㅣ야하)는지를 기똥차게 짚어내고 있다.

95년 이후 쏟아져 나온 백인 페미니즘 번역서에 비해, 흑인 페미니즘 관련 번역서는 2000년 이후에서야 벨 훅스의 <사랑의 모든 것>, <행복한 페미니즘>, 여성주의(womanism)을 주창한 앨리스 워커의 <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 등이 있고, 나머지는 토니 모리슨을 위시한 몇몇 흑인 여성 작가들의 소설 번역들 정도이다.

이런 상황을 생각한다면, 이 책의 번역출판은 다소 늦은감이 없지 않으나, 이 책의 번역출판은 우리 사회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문화들 간의 차이에 대해서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무엇보다, 인종차별적인 미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투쟁해온 흑인여성들의 삶과 투쟁으로부터 다른 시각, 다른 방식을 상상해 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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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ity and the Pillar (Paperback)
Vidal, Gore / Vintage Books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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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학사에서 이 작품은 남성 동성애와 양성애를 정상적이고 온당한 성적 행위로 그린 최초의 작품들 중 하나다. 그래서 출판 당시 <뉴욕 타임즈>를 위시하여 매우 부정적인 서평과 반응을 받았다. 뿐 아니라 이 소설 출간 후 1950-60년대의 동성애공포적 역습(homophobic backlash)으로 인해 이 소설 이후에 출판된 고어 비달의 다섯 편의 소설은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대신 우리는 하나의 역사적 역설을 목격하게 되는 데, 그것은 이 소설로 인해 비달은 선구적인 게이 남성 작가로 자리를 확고히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소설은 이브 세지윅이 19세기 및 20세기 동성애를 둘러싼 담론들, 문학 작품들을 자세히 검토하면서, 동성애공포에 맞서는 관점에서 동성애의 사회적 구성을 이론화 한 책인 <밀실의 인식론>(1990)에서 논의한 동성애에 부과된 이중구속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
고딩 시절 짐 윌라드는 밥 포드에게 성적인 끌림을 경험했다. 같이 테니스를 치고 같이 샤워를 하고, 서로 헤어져야 하는 고딩졸업전에 호수가에서 하루를 같이 보냈던 그 "이상한"(queer) 경험은 짐 윌라드의 인생을 영원히 다른 것으로 맹글어 버리고야 만다. 대도시 어디론가 혹은 선원이 되어 대양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는 밥 포드, 성적 끌림의 대상을 찾아 짐도 집을 나서고. 이리 저리 떠돌면서 주인공 짐은 자신이 여성들에게 성적으로 끌리지 않는다는 점을 확실허니 알게 된다. 
선원이 되어 바다를 떠돌며 이 항구 저 항구 전전하던 시절 짐은 어느날 같이 술과 오입 사냥을 나섰던 동료 선원에게서 "이상한 자식"(queer)이라고 정의된다. 그 '이상한' 나를 밀실에 가두어 숨겨둔 채, 짐은 헐리우드 비버리 힐즈에서 우연히 테니스 코치로 일하게 되고, 거기서 미남을 밝히는 남성외모주의자요 유명한 배우인 로날드 쇼를 만나 두 번째 사랑을 나눈다. 두 사람 사이의 사랑, 연애감정, 침대부르스는 왼갖 오바와 가면(masquerade)으로 가득하다. 짐은 폴 설리반이라는 작가를 만나 바람질을 시작하고. 이리하여 복잡하지만 단순하기도 하며 때로 여러 남성들과 여성들이 동시에 꼬여서 왼갖 난리부르스를 떠는 동성애/양성애 사랑질이 펼쳐진다. 이리 저리 떠돌아 다님시롱.

2차 대전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짐은 자신의 첫 정이자 되찾아야 할 사랑의 대상인 밥의 행방을 알게 되고, 그가 곧 결혼할 것이라는 소식도 듣는다. 첫사랑에 대한 희미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강렬한 기억을 가지고, 드디어 짐은 오래도록 욕망해온 밥을 만난다. 뉴욕의 한 거리에서 술을 마시고 어느 호텔로 들어선 그들. 결과는? 짐은 거절당하고 밥은 욹그락 붉으락함시롱 한밤중인데도 호텔문을 박차고 나선다. 
 
미국 문학사를 보면 남자들끼리의 우정/사랑을 그린 작품들이 많은데, 몇 개만 꼽아보자면 이렇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백인 소년 헉과 흑인 짐의 우정/사랑. <모히칸 족의 최후>를 쓴 작가인 페니모어 쿠퍼의 작품들에 나오는 내티 범포가 토착 미국인 추장인 칭가추크에게 보내는 애정, <모비딕>에서 이슈마엘과 퀴퀙의 사랑. 이들의 우정/사랑을 동성애적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을지라도, 이들의 관계는 최소한 호모에로틱한 측면을 지닌다. 

이들의 동성애적 측면은 동성애공포적 사회의 검열을 두려워하여 호모에로티시즘으로 승화되어 묘사되고 있다면, <도시와 기둥>의 작가 비달은 짐과 다른 남성 인물들을 분명하게 '밀실의 게이들'로 그리며 그들의 사랑 행각hk 성적인 활동이 이성애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정상적이고 온당한 행동이라고 그린다. 그렇다면 호모에로티시즘과 호모섹슈얼리티의 경계는?

짐이 오래도록 찾아 헤매고 기둘려온 밥과의 조우 장면에서 밥이 보이는 반응, 처음으로 짐을 '이상한queer 새끼'라고 부르며 그를 내친 동료 선원이 보인 반응은 전형적인 동성애 패닉이라 할 수 있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회는 게이/레즈비언 밀실을 생산, 재생산하며, 다른 한편 부정할 수 없이 동성애를 목격하는 경우 혹은 동성애라고 '의심'하게 되는 장면에 연루된 거의 모든 이들에게 동성애 패닉을 양산한다.  
동성애 패닉(homosexual panic)이란 게이들을 게이라고 열라 두들겨 패 준 "멀쩡하면서" 못된 새끼들이 저지를 폭력을 무죄이게 하거나 최소한 처벌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 흔히 사용되는 방어 전략이다. 세지윅은 19세기 후반, 20세기 내내 동성애 패닉은 "이성애 남성들에게 권위와 권한을 부여하는 정상적 조건이 되었다"고 분석한다. 즉, 동성애 패닉은 게이들을 보고 열라 놀라고 혐오하고 공포시려워 (하는 척)함으로써 남성 동성애를 사회적으로 애시당초부텀 폐제하는 사회-심리 기제로 작동한다는 것. 

지금도 많이 다르지는 않겠지만, 이 소설에서도 주된 분위기는 <동사서독>에 나오는 유명한 술, 취생몽사주를 마시는 똑 그 분위기이다.  자기를 잊고자 하면서도, 버틀러 표현대로 하자면, "슬퍼할 수 없는 슬픔"을 달래느라. 읽으면서 술마시고 술마시면서 읽게 되는 책. 

제목은 성경을 전략적으로 이용한 것. 소돔과 고모라는 왼갖 "타락"이 횡행한 도시였고, 그 "타락"의 핵심은 동성애질이라고 시사된다.  결국 신은 이 "타락한" 도시들에 불의 처벌을 내리기로 작정하는데, 그 도시에 신이 선택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고 있었던 것. 아브라함을 생각하여 롯은 구원해 주기로 한 신은 천사를 보내 롯에게 어여 도시를 빠져나가 니 삼촌있는 곳으로 가라고 하는데.... 신이 선택한 아브라함의 조카라는 이유로 '구원'을 받은 롯. 반면 그 마누라는  그 도시가 그리워, 구원의 조건인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엄명을 어기고 그 "불타는" 그 도시들을 뒤돌아 보다가 벌을 받아 소금기둥이 되었다는....

열라 남성중심적인 이야기를 비틀어 쓴 것. (구원은 남성이 하고 구원을 받는 것도 남성이며, 여성은 구원을 받을뻔했는데, 결국 최초의 여성으로 기술되는 이브마냥,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엄명"을 먼저 어기는 자가 됨으로써,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이렇게 되리라"는 징표로서 소금기둥 역을 맡아야 한다는 열라 "교훈적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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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man Within (Paperback) - An Autobiography
Glasgow, Ellen / Univ of Virginia Pr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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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부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냉혈[같은 잔인한 날카로움]과 아이러니'이다. 남부는 감상적(sentimental) 전통을 살아왔다. 나는 이런 감상성에 저항했다. 그것이야말로 잔인한 것이었기에. 회피적 관념주의는 사람들을 둔감하게 했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실제로 벌어진 일들을 보지 않도록 눈멀게 했다. . . . 나는 오로지 나 자신이 되기를, 전적으로 나 자신이 되기를 바랬다. . . .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접근은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여성으로서] 내부로부터이다. . . . 기만적인 즐거움, 아이러닉한 분위기, 웃음지는 자세가 판치는 속에서도 써야 한다."
 

글래스고우는 남부 사회를 비판하지만, 그 비판의 대상 역시 자신의 일부라는 점을 잊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남부에서 태어났다. 나는 남부의 일부였다. . . . 나는 내가 써야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글을 썼다." 

여성 자서전의 고전적 딜레마를 잘 보여주는 이 자서전은 "보편적" 공명이 있는 자서전이라는 장르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남성적인/남성의 장르였다는 점을 드러낸다. 남성적 장르인 "전통적" 자서전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사라져버리거나 최소한 심각하게 문제적이다. 

그리하여 자서전을 쓰는 여성 자아는 하나의 "전투장"이 된다. 자기를 재현하는 자서전의 언어가 일관되고 합리적이며 (19세기 남성 자서전들은 종종 기억과 상상마저도 천연덕스럽게 '사실'로 '가공'해낸다) 일직선적 발전(자아성취라는)를 향해가는 것이 아니라 잡음(heteroglosia)으로 가득하다는 점, 자아의 성취를 (어떤 점에서는) "과시"하는 자서전적 자아 역시 젠더화되어 있다. 
"전통적인" 남성적 자서전 쓰기가 우기는 보편적 주체성을 다시 젠더화하는 근본적 비판으로서 <내 안의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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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eltered Life (Paperback, Reprint)
Glasgow, Ellen / Univ of Virginia Pr / 199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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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피적 관념주의(evasive idealism)에 대한 통렬한 비판. 엘렌 글래스고우(Ellen Glasgow)가 소설 <보호받은 삶>(Sheltered Life 1932)와 자서전 <내 안의 여성>(Woman Within 1955) 등에서 미국 남부의 위선적이고, 변화를 거부하는 안일한 생활을 두고 비판한 표현.  글래스고우는 미국 남부의 온갖 위선과 변화에의 저항을 비판하면서 "회피적 관념주의는 사람들을 둔감하고 잔인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을 회피함시롱 보지 않으려 하게 하고 그리하야 눈멀게 했다"라고 쓰고 있다 (<내안의 여성>). 회피적 관념주의자는 현실과 대편하기를 피하면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에서 도피하려 한다. <보호받은 삶>의 마지막 부분에서 간접적으로 사람을 죽여놓고선 "나는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았어요"하는 여주인공 제니 블래어 마지막 대사는 회피적 관념주의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보호받은 삶>에서 19세기 말 미국 남부는 "믿는 척 하는 시대"(Age of Make-Believe)로 기술된다. 여성에게는 외모가 가장 중요한 것인 사회에서 여주인공 제니 블래어 역시 이쁜 것을 최고의 가치로 배우며, 여성은 이쁜 척해야 대우받는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반복적으로 주입당한다. 제니가 사는 사회의 대부분의 여성들(과 남성들)이 그러하듯, 제니도 "보호받은 삶을 살았다. . . . 그녀는 환상이라는 환한 영역 속으로 퇴행해 들어갔다." 제니가 보여주듯, 이런 사회에서 정체성은 외모, 겉모습에 의해 좌우된다.

미국 남부를 상징하는 인물이자, 미국 재건기를 거치면서 쭈욱 완강하게 변화에 저항해온 회피적 관념주의자의 대표격 인물인 제니의 할아버지, 아치볼드 장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에의 저항이 환상일뿐이라는 점을 뒤늦게 나마 "현명한" 노인답게 간파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자기의 80 평생을 회고하면서 이 장군님 왈: "중요한 것은 끈을 붙잡고 연결을 유지하는 일"일 테지만, 변화 앞에선 그 끈도 달라져야 하는 법. "전통을 지닌 사람들은 바로 그 전통에 의해서 억압당하지"라고 토로하는 게 전부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현실주의적인, 즉 세상이 변하고 있고 변화에 저항보다는 적응, 창조해야 하는 것이 낫다고 인식한 유일한 인물인 존 웰치는 30년쯤 연상인 버드송과 연애질을 하는 어린 제니에게 이렇게 말한다. "딱 한 번을 위해서 너의 모든 행복을 결코 감수하지는 말엇. 무언가를, 그것이 빵부스러기일지라도, 무언가를 항상 뒤에 남겨놓으란 말이야."

늘상 바람질인 남편에게 상처를 받으면서도 남부 사회에서 나름의 우아고상을 유지하는 것을 보이려는 여성체면으로 삶을 탕진한 에바 버드송은 미국 남부 사회가 칭송하는 (있지도 않은 이상적) 여성성을 체현한 여자였다. 그렇지만, 뒤늦게 중년이 훌쩍 넘어서야 회피적 관념주의와 우아고상 체면사회의 이중성이 자신의 삶을 망쳐놓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인척 하는 것에, 다른 이들이 지닌 이상형인 척 하는 것에 나는 지쳤어. 이제라도 내 주위를 돌아보고, 너무 늦기 전에 잠시만이라도 내 자신이 되고 싶어."

버지니아 주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변화에 저항한다. 남북전쟁 후 재건기를 거쳐 자본주의가 확장일로를 걷고, 흑인이 더 이상 노예가 아닌 시대에, 남의 노동으로 밥먹고 사치를 부리는 게 익숙한 즉 흑인노예시절의 삶에 익숙한 남부인들에게 노예해방 이후에 자본주의 확장과 더불어 오는 변화에 대한 저항은 예정된 것이다. 그렇지만, 변화에의 저항은 또한 변화중인 현실을 대면하기를 거부하는 남부 사회의 완강한 오만을 비추어주기도 한다. 

변화의 시대에 놓인 남부, 그라고 여전히 강력하게 존재하는 미국 남부의 이데올로기적 이상, 이상적 여성성. 

그 이상적 여성성을 체현했던 에바 버드송은 20년 넘게 자신에게 상처만 준 남편이 20년보다 훨씬 더 어린 제니에게 추근대면서 바람질하는 장면을 (안 보려고 10년을 회피하다가 결국은) 직접 목격하고 남편을 쏴버린다. "나는 아무 것도 하려고 하지 않았어요"라는 제니의 마지막 대사는 변화에 저항하는 남부 사회의 회피적 관념주의를 제니도 물려받았다는 점, 그리하야 그녀가 배운 "교훈"들을 선택함으로써, 지적 도덕적 성장의 기회를 보류당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여성의 아름다움만을 숭배하는 사회, 회피적 관념주의 전통 속에서 자란 어린 소녀. 육체적 아름다움의 중요성과 여성에게 외모만이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제니는 사기치는 게 도덕적이고 문명화된 행동이라고 배운다. 다른 이들을 기분좋게 하기 위해서 거짓말하는 것이 좋다고 말이다. 

이런 남부 "전통"을 비판하는 글래스고우는 남부는 다름 아닌 억압적인 하나의 제도로 기능한다는 점, 제도로서 남부에는 표면이야말로 모든 것이라는 점을 통렬하게 묘사한다. 

이상적 여성성의 체현이었던 에바는 낭만화된 여성 정체성과 대면하여 결국은 그것이 파괴적인 환상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제도로서 남부의 희생자인 그녀가 남부의 유산을 집어던지는데 성공하지는 못하더라도, 젊은 제니가 아니라 중년을 넘긴 에바가 뒤늦게 서야, 그라고 유일하게, 이런 깨달음에 도달한다. 

글래스고우, 잔인할 정도로 날카로운 삶의 관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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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선물
앤 머로 린드버그 지음, 이성훈 옮김, 이유경 사진 / 바움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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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모로우 린드버그(Anne Morrow Lindbergh)의 <바다에서 온 선물>(Gift from the Sea 1955)은 자기만의 시간(solitude), 즉 린드버그의 말로 하자면, "강해지기 위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여성에게 주기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너무나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자서전이다. 이 자서전에서 린드버그는 일련의 조개들을 사용하여 여성으로서 자신이 겪어온 결혼 생활의 단계들을 표현한다.

아내-어머니로서 계속해서 에너지를 탈진당하는(distracting) 생활에서 지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아내-어머니가 아니라 한 인간이자 한 개인으로서 삶의 충일감과 내적인 힘을 스스로 부여하기 위해서 그리하여 "좀더 온전한 관계맺기"를 위해서라도, "외적인 생활을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상징물로서 해변의 조개들. 

짧막하지만 강렬하게 시적인 자서전. 다음은 몇 편의 인용문들.
"정신을 집중할 수 없으리만큼 주의산만한 생활(distraction)은 여성의 삶에 떡하니 들러붙어 있고, 항상 그래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 . 어찌하면 이 끊임없이 훼방질당하는 생활의 한가운데에서 온전하고 충일하게 남아 있을 수 있을까? . . . 나에게 [그 정답이라기 보다는] 오로지 실마리들만이, 힌트만이 있다. 바다의 조개들말이다. 이 조개의 보잘 것 없는 아름다움이 하나의 해답을 말해준다. 아마도 그 첫 번째 단계는 생활을 단순화하는 것, 주의산만하게 훼방하는 것들 중 일부를 잘라내는 것이라고."
본업에서 잠시 떨어져 나와 이 곳 "해변에서의 생활은 [훼방질하는 것들과 위선, 이중기준, 여성에게 억압적으로 부과되는 온갖 의무들을] 떨쳐버리는 기예"를 가르쳐준다. (30)
"나는 지금 조개의 겉모양을, 그 외부, 즉 내 삶의 외부를 바라보고 있다. 온전한 대답은 . . .  항상 내부에 있을 터이다. . . . 조개 . . . 너는 내 마음의 항해를 시작하게 했다."
"우리는 반드시 홀로 있는 법을 다시 배워햐 한다." 서로 연결된 속에서 "정신적으로 홀로 있는 것"을 다시 배울 필요가 있다.
"문제는 자기 영혼을 어떻게 먹이고 온전하게 하는 것일터"
"고독/홀로 있으라, 조개가 말한다. . . . 여성은 강해지기 위해서 스스로의 안을 들여다 보는 일에 개척자이다."
"오직 스스로를 다시 발견한 사람만이 개인적 관계를 다시 발견하고 보다 해방적으로 세련되게 할 수 있다" (69). 그것은 "따로 또 함께"(together-alone)의 경험을 통해서 풍성해진다.
"굴조개는 중년의 결혼 생활을 잘 표현해 주는 것이리라. 굴은 삶의 투쟁 자체를 시사한다. . . . 자기 자아의 무시된 측면을 자유롭게 충족시키라는 것"을.
"여성은 . . . 홀로 서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 . . 홀로, 자기 힘으로 성인이 되어야 한다. 그녀는 자신의 진정한 중심을 홀로 찾아내야 한다. 그녀는 온전하고 충일해져야 한다"
"섬에서의 생활은 내 자신의 삶을 검토해보는 하나의 렌즈였다. 내 다시 돌아갈 때 이 렌즈들을 들고 가리라. 조개들이 내게 기억해야 할 것들을 상기시켜주리라. 이 조개들은 나에게 섬출신의 또 다른 눈들이다."
이 자서전은 "외적으로 단순한 생활을, 내적인 충일성을, 보다 온전한 관계를 위한 하나의 탐색"이다. "단순한 생활, 고독, 간헐적으로라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 자기만의 시간과 성찰. . . . 발견해야 할 조개들은 더 많이 있으리라. 이것은 오직 하나의 시작일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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