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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페미니즘 사상 - 지식, 의식, 그리고 힘기르기의 정치 ㅣ 여이연이론 18
패트리샤 힐 콜린스 지음, 주해연, 박미선 옮김 /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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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사회학의 명저 흑인 페미니즘 사상에서 콜린스는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비판사회이론”으로 정립한다. 콜린스에게 “비판사회이론이란 집단으로서 미국 흑인여성이 대면하고 있는 핵심문제를 적극적으로 파악하는 지식체와 제도적 실천을 포괄한다. 이러한 사상의 필요성은 하나의 집단으로서 미국 흑인여성이 부정의를 그 특징으로 하는 미국상황에서 여전히 억압받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물론 그렇다고 미국의 모든 흑인여성이 동일한 방식으로 억압받는다는 뜻은 아니다”(35).
흑인여성이 “비판사회이론으로서 흑인 페미니즘 사상”(34)을 구축할 수 있었던 요소로 콜린스는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여러 억압에 대응하기 위해 흑인여성이 대항지식을 생산해 왔다는 것. 둘째는 노동자로서 흑인여성이 차지한 “내부의 외부인 위치”(outsider-within location).
사회이론을 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조직과 특히 사회조직의 변화중인 측면을 분석한다는 것이다. 콜린스에게 비판사회이론이란 경제적 사회적 정의에 전념하는 사회이론이다. 즉, 정의를 옹호하면서 불평등을 분석하고 사회적인 것을 이론화한다. 우선 흑인여성이 사회 부정의에 대응하는 지식을 생산하며 저항활동을 해 왔음에도 그녀들의 지식은 역사적으로 억압되거나 부인된다. 이런 점에서 그것은 종속적 지식(subjugated knowledge)으로 존재한다. 억압받는 집단의 지식이 억눌리는 이유는 지배의 결을 거슬러 스스로의 입장을 정의하고 이에 기반한 저항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흑인 페미니즘은 이러한 억압된 지식의 존재를 재발견하여 서로 연결하여 묶어냄으로써 흑인여성 특유의 사상사 전통을 만들어간다.
흑인여성이 생산해 온 종속된 지식은 “내부의 외부인” 위치와도 밀접하다. 이 위치는 “불평등한 여러 권력집단 사이의 경계를 표시하는 사회적 위치”를 지칭한다(479). 예컨대 백인가정에서 유급가사노동을 하는 흑인여성이나 학계에서 주변적 위치에 처한 흑인여성 지식인은 백인가정/학계의 내밀한 지식을 가질 수 있지만 그 가정/학계 온전히 소속되지 않는 경계적 존재(“내부의 외부인”)이다. 이들은 발을 들여놓은 집단에 대한 지식은 지니지만 그 집단에 속한 성원들이 누리는 권력을 전적으로 소유하진 못한다.
“내부의 외부인”으로서 흑인여성 지식인의 경우 자신의 지식을 진리라고 권위있게 주장하기 어려운 위치에 처한다. 흑인여성은 흑인이고 여성이(고 대부분 노동계급 출신이)기에 “보편적” 주체위치를 거부당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존재와 지식능력을 일상적으로 부인당하는 상황과 씨름하기에 “정황적 앎의 주체”(situated knower 51)로서 지식을 생산한다. 흑인여성의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억압되고 의도적으로 누락되거나 학계에서 구색맞추기식 포함을 통해 다시 주변화되고 배제된다. 그래서 “흑인여성에게 인종, 계급, 젠더가 서로 맞물려 작동하는 억압에서 터득한 지식은 종속된 지식으로 발전되곤 하며 이러한 지식을 흑인여성의 비판사회이론으로 전수하도록 하는 추동력이 된다”(34).
비판사회이론으로서 흑인 페미니즘 사상의 발전에 가장 크게 공헌한 이들로 콜린스는 노동계급 흑인여성, 주류 학계가 지식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다양한 활동에 종사한 가수, 예술가, 활동가 등을 포함시킨다. 이것은 흑인여성이 지식생산의 권위를 인정받는 영역 외부에 주변화된 역사를 반영한다. 이는 또한 대항지식을 생산하는 지적 창의성이란 학계의 선택된 소수 엘리트가 아니라 일상적 억압을 겪으며 그에 다양하게 대응한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점도 시사한다.
“내부의 외부인” 위치는 흑인여성들 사이의 차이와 복수적 정체성을 긍정하면서도 흑인여성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내는 공통의 경험을 포착하는 위치를 지칭한다. 이렇게 공통으로 직면한 억압과 그 경험의 다양성을 동시에 포용하는 이 위치를 콜린스는 흑인여성이 대항지식을 생산하는 위치라고 규정한다.
콜린스는 “내부의 외부인” 위치로부터 흑인여성의 집단지식이 형성된다고 보는 입장이론(standpoint theory)을 제시한다. “입장이란 집단지식을 지칭”하며, 흑인여성들이 다양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겪어 온 “반복된 패턴의 집단적 차별은 흑인여성의 집단적 지식/입장을 특징짓는”다(60). 콜린스가 말한 입장이란 공통의 경험에 기반한 집단지식이다. 집단지식으로서 흑인 페미니즘 사상은 “흑인여성의 경험에 바탕을 둔 특정 주제,” 즉 “노동, 가족, 성정치, 모성, 정치행위를 주요 주제로 탐구해” 왔다(415). 흑인 페미니즘 사상이 이 주제들을 탐구한다는 점은 “인종, 젠더, 계급, 섹슈얼리티 등이 서로 복잡하게 맞물리며 작동하는 여러 억압에 수반된 폭력에 저항해 온 흑인여성의 투쟁의 다층적 유산과” 역사를 반영한다(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