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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로드 기행
편일평 글.사진 / MBC C&I(MBC프로덕션)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코맥 맥카시의 소설 <로드>에서 ‘길’의 의미는 생존이었다. 비단길(실크로드)에서 ‘길’의 의미는 동서양 간의 교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종이의 길(페이퍼 로드)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필자는 5년 전 진순신의 <페이퍼 로드>를 읽은 적이 있다. ‘페이퍼 로드’라는 새로운 단어에 대한 신선함과 아울러 종이의 길이 인류의 역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큰 비중에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최근에 발간된 <페이퍼 로드 기행>(MBC프로덕션.2009년)은 진순신의 책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진순신의 책에서는 종이의 유럽 전래와 그 의미를 다루었으나, 이 책은 종이의 전래경로를 따라 지구를 한 바퀴 돈다. 중국 뤄양(洛陽)에서 시작된 페이퍼 로드는 시안과 둔황, 신장을 거쳐 중앙아시아와 터키, 유럽을 경유해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갔다가 다시 태평양을 통과해 일본을 들르고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돌아온다.
나침반, 화약, 인쇄술과 함께 고대 중국의 4대 발명품 가운데 하나인 종이는 후한서의 ‘채륜전’에 따르면 AD 105년 채륜이 발명했다고 나와 있다. 그 종이의 이름을 채후지(蔡候紙)라 불렀다. 그러나 고고학적 발견은 채륜이전에 이미 종이가 사용됐음을 말해준다. 현재는 중국에 종이가 처음 등장한 시기를 BC 2세기경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채륜의 지위는 하락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중국과학원 반지씽 교수는 “채륜의 활동은 객관적으로 말해 제지술의 발전에 기여하였으므로 그 공헌을 인정해야 한다.”(44쪽)고 말한다.
제지술의 중앙아시아 전래는 751년 탈라스 전투 시 이슬람에 포로가 된 당나라 군인 중 제지 기술자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탈라스 전투 이전에 이미 중앙아시아에서는 종이를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우즈벡 과학아카데미의 종이 역사가인 나짐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제지술을 비밀로 귀히 여기던 중국이 종이 기술자를 먼 지역의 군부대에 두었을 리가 없었으며, 중앙아시아와 중국은 교역이 왕성해 사마르칸트에서는 이웃 나라에 대한 정보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BC 1세기부터 이 지역의 제라프샨 강, 카슈카다리야 강 유역에 정착했던 소그드인들과 긴밀한 접촉이 이루어져 이미 종이가 유입되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탈라스 전투 이전에 파미르에서 대서양에 이르는 칼리프 영토 안 곳곳에서 종이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176쪽) 제지술의 전래 시기가 달리 결정된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부분은 바로 중국에서부터 왔다는 사실이다.
제지술은 중앙아시아를 통과해 유럽에서는 1150년에 에스파냐의 하티바에 제지소가 건설되었다. 채륜의 시기보다 거의 1천 년이나 지난 시기에 유럽에서 종이가 제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한반도로의 전래는 아주 빨았다. 196년 후한이 멸망하고 중국이 삼국시대의 혼란에 빠지자 197년경 전란을 피해 고구려에 밀려온 유민들에 의해 닥나무 종이가 전해졌으리라 추정된다. 유럽 보다는 거의 1천 년이나 빨랐음을 알 수 있다.
유럽에 전래된 제지술은 인쇄술과 결합함으로써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종교개혁에서 시작해 유럽 근대문명의 초석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어 제지술은 대서양을 건너 1690년 미국의 필라델피아로 전해진다.
이 책에 수록된 내용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조선시대에 한지로 만든 온실이야기다. 조선 세종 조에 전순의가 편찬한 <산가요록 山家要錄>에 따르면 온실을 만들어 겨울철에도 신선한 채소를 생산하는 동절양채(冬節養菜) 요령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한국 원예학자 전희 박사는 <산가요록>에 적혀있는 대로 온실을 만들었다. 그 결과 550년 전에 겨울에 채소를 재배했다는 기록이 사실임을 입증했고, 이를 국제 원예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함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는 “1619년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초보적 온실보다 170년이 빠르고 자연 보온 온실을 개발한 영국보다도 무려 240이나 빠른 1450년경에 만든 것으로 한지의 기능성을 높였다.”(282쪽)고 그 의미를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종이 온실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온실에 우리의 전통 온돌을 사용했다. 그리고 한지에 기름을 발라 채광을 통해 실내 온도를 높이고, 습도 조절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창호지는 살아있는 종이여서 통기를 원활하게 하고 습도를 조절하며 채광성이 뛰어난 점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고 말한다.
우리 고유의 “한지를 말할 때 ‘絹 五百, 紙 千年’이라는 표현을 쓴다.”(287쪽) 요컨대 한지는 질기고 통기성이 좋으며, 순 섬유질이기 때문에 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석가탑 보수 공사 시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8세기에 목판 인쇄로 만들어진 경전이다. 1000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종이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은 우리 종이의 우수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지금의 한지 현실은 어떤가.
저자의 페이퍼 로드 기행은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우리나라로 돌아와, 전통의 기술로 한지를 생산하는 마을을 탐방한다. 이곳을 돌아보고 저자는 “한국의 한지는 동양3국의 수록지와 비교해 볼때 강도나 수명, 항균성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국제시장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323쪽)고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그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한다.
저자는 “자연 식물에서 추출한 섬유를 손으로 뜨는 전통방식의 수록지는 동서양의 학문과 예술, 문화, 종교를 발전시켰고 가장 위대한 필사 도구로 인류의 역사를 기록했다.”(324쪽)며 종이의 의미를 되새기며 이 책을 맺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종이 전문가가 아닌 방송국 PD 출신인 편일평씨이다. 페이퍼 로드 기행은 그의 종이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이 책의 내용은 다큐멘터리로 방송된바 있다.
인류 문명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던 종이가 발명되고 세계로 전파된 길, 즉 페이퍼 로드를 따라 지구를 한 바퀴 돈 그의 여행에서 독자들은 자랑스러움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끼리라고 생각한다. 향후 한지를 세계에 알려 옛 명성을 되찾기를 바라는 바램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