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기 - 아기 탄생 후 두 살까지의 놀라운 이야기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장경렬 옮김 / 팩컴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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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신간 <우리 아기, Baby>(팩컴북스.2009년)의 표지는 호기심이 가득 찬 눈으로 무엇인가를 응시하는 아기의 얼굴 사진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아기 탄생 후 두 살까지의 놀라운 이야기’라는 부제를 붙여놓았다. 이런 표지의 모습과 부제는 아기를 기르고 있거나, 아니면 임신한 여자들은 상당한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부제에서 말하고 있듯이 2년 동안에 아이가 보여주는 놀라운 이야기로 들어가 그 호기심을 충족시켜 보도록 하자. 먼저 감각의 세계이다.

감각 가운데 아이들의 ‘청각’의 세계는 놀랍다. 아기의 청각은 아주 예민하여 자궁에 있을 때부터 바깥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임신한 상태에서 음악을 들려주거나, 엄마가 아이에게 말을 해주면 아이가 모두 들을 수 있다는 말이다. 요컨대 태교로 아기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일은 효과가 있는 셈이다. 그리고 ‘후각’에 관련한 이야기도 상당히 흥미롭다. 태어나면 아기가 엄마 젖을 찾을 때 냄새로 찾는다고 한다. 아기는 태어나서 45시간 내에 채취만으로도 엄마를 알아낸다고 하니, 아마도 이런 능력은 아이의 생존에 도움이 되었기에 자연선택의 압력을 많이 받았을 터이다. 새로 태어난 아이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지만 감각은 제대로 살아있다는 말이다.

아기의 뼈가 어른의 뼈보다 더 많다는 사실을 아는가? 잘 믿겨지지 않지만 이는 사실이라고 한다. 아기는 태어날 때 대략 270개의 뼈를 갖고 있다. 그런데 나뉘어 있던 뼈들이 합쳐지면서 뼈의 수가 줄어든다는 얘기다. 예컨대 중추 골격은 태어날 때에는 172개이지만, 성인이 되면 80개로 줄어든다고 한다. 동시에 사지 골격에는 오히려 뼈의 숫자가 증가한다. 발목과 팔목의 뼈는 태어날 때는 98개지만, 어른이 되면 126개로 늘어난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206개의 뼈가 있다고 하니, 태어날 때보다 64개의 뼈가 줄어든다고 하니 아주 흥미로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아기가 우는 데에는 일곱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고통, 불편함, 배고픔, 외로움, 지나친 자극, 자극의 부족함, 좌절이 우는 이유다. 일곱 가지 울음은 소리에 있어서 모두 다르다고 하는데, 예민한 엄마는 이 서로 다른 울음소리를 구분할 수 있다고 하니, 여성의 청각은 대단하다. 사실 아기는 말을 할 수 없기에 우는 이유는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엄마는 아기의 의사표현을 잘 읽어내고 있다는 얘기다. 아기가 눈물을 흘리는 시기는 태어나서 6주가 지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6주 이내에는 울기만하지 눈물은 흘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6주가 지나야 누관(淚管)이 발달해 눈물을 흘려보낼 수 있다고 한다.

이번에는 아기 웃음에 대해 알아보자. 저자는 “인간의 아기들은 부모에게 웃음을 보이는 유일한 영장류 동물이다.”(108쪽) 라고 말한다. 이는 무력한 아이가 엄마를 자신의 곁에 있게 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한다. 이렇게 웃고 있는 아기의 얼굴을 본 엄마는 본능적으로 기분이 좋아지는데, 아이의 웃음과 엄마의 반응은 모두 선천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기는 태어나고 4주 정도가 지나야 진정한 의미의 웃음을 지을 수 있다고 한다.

위에서 몇 가지 소개한 아이의 특성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분량의 아주 조금에 불과하다. 아이의 임신에서부터 만 두 살까지의 커나가는 여정에서 아이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정말 대단하다. 이러한 변화를 저자는 확실한 최신 연구결과를 가지고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아기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특징은 “100만 여년의 인간 진화과정”(6쪽)에서 획득한 형질이라고 저자는 이 책의 시작 부분에서 말하고 있다.

이 책은 단순한 육아서가 아니다. 저자가 세계적인 동물행동학자인 데즈먼드 모리스(Desmond Morris)이기 때문이다. <털 없는 원숭이 The Naked Ape>에서 시작된 그의 인간 탐구는 <벌거벗은 여자 Naked Woman>에서는 여자의 몸으로 이어졌고, 이어 이 책에서처럼 아기에게 까지 연결된다. 동물행동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아이의 특징은 우리의 궁금함을 많이 해소개 주고 있다. 이 책에는 아기들의 사진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독자들은 아기의 사진만 보더라도 얼굴에 절로 흐뭇함 미소를 짓게 되리라. 이 또한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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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논병아리의 선물 -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는 다큐멘터리 동화
신동만 지음 / 동아시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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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기를 안거나 업는 동물은 영장류에만 한한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포유류도 아닌 조류가 새끼를 업어서 기른다니 신기한 일이다.

이 책 <뿔논병아리의 선물>(동아시아.2009년)은 새끼를 업어서 기르고 있는 특이한 새인 뿔논병아리의 생태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동화처럼 구성한 책이다. ‘다큐 동화’라고 부르고 싶다고 저자는 서문에서 말하고 있는 이 책의 저자는 KBS 다큐멘터리 PD인 신동만이다.

저자가 뿔논병아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태안반도 앞바다에 유조선 기름 유출 사건 때문이었다. 이 사고로 말미암아 온몸에 기름을 뒤집어 쓴 새 사진이 신문에 보도되었다. 이 새가 바로 뿔논병아리였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다음, 지인의 사무실에 놀러간 저자는 그곳에 있는 뿔논병아리의 사진을 마주하게 된다. 이 사진은 뿔논병아리가 구애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저자는 뿔논병아리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그리고 1년간 뿔논병아리의 생태에 관한 다규멘터리를 제작을 하게 된다.

뿔논병아리는 논병아리목 논병아리과의 조류다. 머리에 뿔처럼 깃털이 나있어서 이런 이름을 얻게 되었다. 주로 호수에 서식하면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산다. 겨울에 호수가 얼면 바다로 가서 살긴 하지만 이동거리는 길지 않다. 그러다 보니 나는 재주보다는 헤엄을 치는 능력이 훨씬 더 뛰어난 새라는 점이 어쩌면 펭귄과 닮아 있다.

뿔논병아리의 생태는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면 신기한 부분이 많다. 암수가 구애를 하는 장면이 특히 그렇다. 암수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모습이 하트 모양을 닮았다. 부리와 목, 가슴으로 만들어진 공간의 모습이 바로 하트 모양이다. 이런 구애 장면에서 독자들은 동화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조류의 구애 행동은 춤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뿔논병아리 수컷도 짝을 찾기 위해 마음에 드는 암컷 앞에서 열심히 춤을 춘다. 암컷은 수컷이 마음에 들면 둘은 함께 춤을 춘다. 부부가 되는 첫 단계는 바로 하트 춤이었다.

이어서 둘은 물위에 자신들이 살아갈 집을 짓는다. 이 둥지에서 이들은 새끼를 낳고 기른다. 뿔논병아리는 둥지에 들어갈 때 잠수를 한다. 이는 천적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몸짓이다.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이들의 유전자 안에 확실히 프로그램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내용에 보면 뿔논병아리가 인간처럼 대화를 한다. 그래서 다큐동화라고 했다. 그런데 그들의 생태는 인간이 보기에는 더욱 동화적이다. 암수가 구애 춤을 추는 모습도 그러려니와 새로 태어난 새끼의 이마부분이 붉은 색의 하트 모양이 있다. 사랑의 새라고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 책에서 실제 동화 같은 느낌이 드는 부분은, 바로 잃어버린 새끼와 어미의 재회다. 물뱀이 뿔논병아리의 둥지를 습격한다. 어미는 어쩔 수 없이 둥지를 버린다. 그러나 둥지에는 알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물뱀이 알을 삼키려는 순간 부근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있었다. 그러자 물뱀은 알을 놔두고 도망을 친다.

용케도 알은 포식자의 먹이가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뿔논병아리 부모는 자신의 둥지를 이미 포기했던 터였다. 부화하기 직전이었던 상태의 이 알을 저자가 가져다가 인공부화를 시킨다. 저자는 새끼를 호수에 가져다 놓으면서 어미가 새끼를 알아보기를 바란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지만, 어미는 새끼를 알아봤다. 어미는 새끼가 알 속에 있을 때부터 새끼의 소리를 들어왔기에 새끼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자신의 새끼인지 알아차렸다. 이 부분에서 독자들은 깊은 감정이입을 통해 행복함을 느낀다.

이렇게 애지중지 키운 새끼이건만 100일이 지나면 부모의 곁을 떠난다. 성장함에 따라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행동은 동물 세계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뿔논병아리의 어미나 아비는 자신의 가슴이 있는 털을 뽑아 자신이 먹기도 하고, 새끼에게 먹이기도 한다. 이 특이한 현상은 소화되고 남은 음식물 찌꺼기를 내뱉기 위해서이다. 이런 음식물 찌꺼기를 펠릿(pellet)이라고 하는데, 맹금류에서나 관찰되는 행동으로 뿔논병아리의 이런 행동은 쉽게 관찰되는 현상이 아니라고 한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런 새로운 사실들이 알려지기도 한다. 이 책의 내용은 2009년1월에 KBS에서 환경스페셜로 방송되었다.

저자는 이 책의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자연보다 더 훌륭한 스승은 없다. 자연은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알려주고, 그 어떤 경우에도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9쪽) 저자는 자연에 대한 이해를 통해 우리 인간이 겸손해질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 이 책에는 새끼를 업어 기르고 있는 뿔논병아리의 지극한 자식 사랑이 펼쳐져있다. 이 동화 같은 책에서 독자들은 가족의 소중함과 헌신적인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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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 사계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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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인 지금 우리들에게는 고민이 많다. 전 세계에 몰아닥친 경제위기의 여파는 우리의 가정에까지 이르고 있다. 또 자본주의의 역기능인 부의 불평등과 지구 온난화 등 우리의 삶을 걱정스럽게 만드는 요인은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고민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낙천적이어서 그런가? 아니다. 사람들은 ‘먹고 살기에도 바쁜데’라고 말하며 고민할 시간적 여유도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고민은 ‘배부른 자의 사치’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걱정하고 고민한다. Fast syndrome에 빠져있는 나머지 우리는 한시라도 가만히 있으면 남에게 뒤쳐질까 걱정한다. 마치 움직이지 않으면 쓰러지는 자전거를 탄 듯, 쉼 없이 시지프스처럼 살아야만 하는 데에 걱정한다. 혹시 사람들은 빨리 움직임으로써 고민거리를 잊으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잊으려고 했건만 우리 머릿속에 있는 그 고민거리는 쉼 없이 자신의 실체를 우리에게 순간순간 확인해 줄뿐이다.

그러나 생각을 달리해보자. 우리의 행동이나 생각에는 그 나름대로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우리는 선천적으로 높은 곳을 싫어하며, 어두운 곳을 두려워하고 쓴 음식을 싫어한다. 싫어하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의 생존에 위험하기 때문에 우리의 유전자에는 이런 위험을 피하게끔 프로그램 되어 있다. 고민이나 걱정도 마찬가지다. 이것도 우리의 생존에 유리했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고민은 현실에서 자신이 처한 어려움이나 미래에 닥칠 일의 두려움을 걱정하게 만든다. 따라서 고민은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풀 수 있게 해주지는 않을까?

신간 <고민하는 힘>(사계절,2009년)의 저자인 강상중은 재일교포 2세로 현재 동경대학의 정교수로 재직 중이다. <디아스포라 기행>의 저자인 서경석처럼 재일교포로서 자신의 정체성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고민은 많이 닮아있다. 일본인들로부터는 ‘조선인’으로 차별을 받았고, 한국인들에게는 ‘반쪽바라’ 취급을 받았다. 그들은 자신의 설자리가 어디인지에 대해 제일 먼저 걱정했음에 틀림이 없다. 저자는 자신이 처해있는 고민거리에 정면으로 부딪치며, 호모 페이션스(Homo patience, 고민하는 인간)가 된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저자에게 도움을 준 사람이 두 명 있었다.

일본의 문학가인 나쓰메 소세키와 독일의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를 통해 저자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의 어려운 점을 해소할 수 있었다.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게 했던  힘이 바로 고민이었고,  이 책 <고민하는 힘>은 그 과정을 에세이로 엮은 결과물이다 .

현대는 과거 어느 때 보다도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도 변해야하건만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에서도 인간은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으려 한다. 우리는 ‘사랑’이나 ‘종교’에서 영원한 가치를 찾고 있다는 말이다. 요컨대 우리는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변화하지 않는 것”(19쪽)을 찾고 있는 이율배반적 상황에 처해있으니 더욱 어렵지 않을까? 저자는 이 책에서 9개의 고민거리를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삶, 앎, 돈, 청춘, 믿음, 일, 사랑, 죽음, 늙음 이렇게 9가지 중에서 두 가지만 살펴보자.

먼저 ‘돈’에 대한 저자의 고민을 들어보도록 하자.

‘돈’의 많고 적음이 행복의 척도가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돈에다가 최상의 가치를 부여한다. 예컨대 돈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치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돈만 밝히는 세태를 천박하게 보고 있다. 그러니까 돈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철저히 이중적이라고 볼 수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에서 “돈 얘기지요. 돈이라면 어떤 군자도 바로 악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지요.”(47쪽)라는 표현에 저자는 주목하고 있다. 나쓰메 소세키는 다른 작품에서도 부자는 모두 속물이고 거의 부정적으로 묘사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나쓰메 소세키가 활동하던 100년 전의 세계는 자본주의가 크게 발전하는 시기였다. 강력한 자본주의의 물결 속에 돈은 권력과 동의어였다. 저자는 “돈은 오래된 권위나 가치관을 통째로 뒤집을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49쪽)라고 표현하고 있다.

막스 베버는 나쓰메 소세키와는 달리 신흥 부르주아인 부유한 부친을 두고 있었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베버는 부지런하고 청빈한 삶이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자세였고, 이 때문에 자본주의가 발전했다고 말한다. 아담 스미스의 말처럼 사람들 속에 도덕과 윤리가 존재하고 있기에 신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불평등과 불균형은 나타나지 않으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불공정한 경쟁체제가 보편적으로 나타났으며, 부의 편중이라는 자본주의에 내재되어 있는 문제가 발생했다. 또 20세기 초 새로운 제품 판매시장이 필요해진 선진국은 제국주의란 이름으로 다른 나라를 정치 경제적으로 지배하게 되었다. 이러한 제국주의 시스템은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세계의 경제 시스템으로 자리하고 있다.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를 공부하면서 고민에 빠진 저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모든 가치가 변화하는데 돈만은 불변의 가치를 지닌 일종의 기호로서 계속 존재해 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래서 돈은 경시하기 힘듭니다.”(62쪽) 고민 끝에 나온 결론치고는 단순하다. 돈은 결코 우리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다만 돈이 있으면 편리할 뿐이다. 그렇기에 돈을 경시하기는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아홉 번째 주제는 ‘늙어서 최강이 되라’이다.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의 시기에 노인에 대한 이미지와 현재의 이미지가 전혀 다르다며 이렇게 말한다. “노인은 분별력이 있고 완숙하며 꾸밈이 없고 담백한 존재하는 과거의 이미지는 현대에 와서 거의 무너졌다.”(159쪽) 이렇게 노인은 대접을 못 받고 있지만, 저자는 나이 먹는 데 대한 두려움을 없애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어 한다. 새로운 일이라는 게 재미있다. 먼저 배우가 되고 싶으며, 그 배역은 자신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또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그 영화는 님 웨일즈가 혁명가인 김산의 인생을 엮은 <아리랑의 노래>다. 남북통일이 이루어지는 그날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공동으로 제작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표까지 세워놓고 있다. 그리고 오토바이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일본종단을 하고, 그 다음에는 한반도로 건너가 남북! 막 종단 여행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올해 60세인 저자는 정말 뻔뻔한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저자는 책을 시작하면서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철저하게 ‘고민하고’ 그래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기를 기원합니다.”(9쪽) 그리고 책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젊은 사람들은 더 크게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고민을 계속해서 결국 뚫고 나가 뻔뻔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새로운 파괴력이 없으면 지금의 일본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미래도 밝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170쪽)

이 책은 작년 일본에서 출간이후 100만 부나 팔렸다고 한다. 책의 분량은 200쪽도 안되지만, 저자가 독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어떤 굵은 책보다도 더욱 무게를 가지고 있다. 고민을 통해 새로운 힘을 얻는다는 저자 강상중의 태도에서는  삶에 대한 진지함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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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이중주 - 인문학자와 과학자의 13가지 키워드 논전논박
교수신문.사이언스타임즈 기획, 고인석 외 지음 / 해나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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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가 그의 시 <라미아>에서 아이작 뉴턴이 분광학을 통해 무지개를 풀어헤쳤기 때문에 낭만적 시성(詩性)이 사라져 버렸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도킨스는 자신의 책 <무기개를 풀며>에서 키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뉴턴의 분광학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자연의 비밀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우리는 실제적인 우주의 아름다움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고 확신하며 이렇게 말한다. “과학은 위대한 시적 영감의 원천이다.”

과학과 문학의 다툼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과학의 발전을 고운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 시선은 항상 있어왔다. 과학과 종교 간의 반목도 마찬가지고, 또 과학과 인문학 간에도 경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이분법적 나누기는 학문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요컨대 하나의 학문만으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다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학제간 연구(學際間硏究,Interdisciplinarity)의 필요성이 대두된 이유는 세상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함이었다.

에드워드 윌슨이 말하는 통섭이나. C.P 스노의 두 문화, 그리고 하이브리드, 크로스오버는 모두 학제간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학문적인 융합은 쉽지 않다.

신간 <지식의 이중주>(해나무.2009년)는 이분법적 논란의 대상이 되는 13개의 키워드에 대해서 양쪽의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논거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 논거를 정리하는 식으로 구성된 책이다. 책의 제목으로 ‘이중주’를 사용한 이유는 아마도 두 개의 서로 다른 의견이 마치 듀엣을 부르는 모습같이 아름다운 화음으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입장일 터이다. 그러나 각 키워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은 오히려 깊은 골을 보여 지기도 한다. 이중주는 불협화음의 모습이기도 하고, 더 이상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만 같다.

이 책을 기획한 교수신문 발행인 이영수씨는 책의 기획 의도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늘날 지식의 최전선에 있는 주요 이슈들은 결코 특정 분과 학문만의 것일 수 없다는 인식, 그리고 통합적이고 탈 경제적 접근과 개방적인 태도만이 미래 문명의 초석을 다질 수 있다는 믿음이 기획 의도였습니다.”(5쪽) 기획의 의도처럼 책이 이루어져 있는지 책 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키워드를 한 번 보도록 하자. 기후변화, 대체에너지, GMO, 뇌와 의식, 근본 실재, 창의성, 지능, 디지털 치매, 인공지능, 사회 생물학, 시간, 우연, 죽음 이렇게 13개다.

먼저 ‘기후 변화’에 대한 양측의 견해를 보자.

산업혁명 이후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이 늘어나면서 지구는 점차 뜨거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로 말미암아 생태계가 급격이 변하면서 많은 동식물들이 멸종 위험에 처하리라고 예측하고 있다. 게다가 남북극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져 해안가에 있는 곳은 모두 바다 속으로 잠길 위험이 있다고 경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우려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으며 언론에서 만들어낸 허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을 보통 회의적 환경주의자라고 말한다.

보통 회의적 환경주의자는 여러 통계자료를 활용해서 현재 진행 중인 지구 온난화는 자연스러운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요컨대 지구의 기후는 항상 변해왔으며, 지금의 변화도 그와 같은 과정이라고 말한다. 대표적 회의적 환경주의자인 비외른 롬보르는 지구온난화에 들어가는 예산을 차라리 후진국의 기아나 질병예방에 사용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회의적 환경주의자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견해를 보면 지구 온난화에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고 본다. 다만 지구환경의 중요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설령 과학적 불확실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전 예방의 우선 원칙에 입각해서 충분히 (준비가)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계속 이어지는 말을 들어보자. “지구온난화가 가져올 미래의 기후변화와 그것의 영향을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가장 합리적으로 평가하고자하는 노력이 보다 충실히 이루어진다면 사회적 비용과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살고 있는 과학자들이 맡아야 할 책무입니다.”(21쪽) 즉 과학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기에 그 해결책도 과학에서 찾고 있다.

환경주의자의 입장을 보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은 이산화탄소이고 이 상황이 지속되면 21세기 내에 해수면 상승을 비롯해 재앙상태로 되리라고 확신하고 있다. 해결책도 위의 의견과는 사뭇 다르다. “기후변화는 대기의 물리화학적 조성 변화의 문제이지만, 그러한 변화가 사회경제적인 나아가 문화적인 문제에서 출발했기에 기후변화 해법은 바로 사회경제적, 문화적인 구조의 차원엣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29쪽)

문제의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보니 그 해결책 또한 다르다. 과연 어느 진영의 말이 맞는가. 회의적 환경주의자들의 의견이 맞길 바랄 뿐이지만. 만약 환경주의자들의 말이 맞는다면 우리의 후손들은 지구에서 더 이상 살아가기가 불가능하리하고 생각된다. 두 의견은 저마다 각자의 소리를 고집하고 있는 듯 보인다. 둘의 이중주는 불협화음이다.

요즘 또다른 논란을 낳고 있는 GMO(유전자 변형 식품)에 대해서 양쪽의견을 들어보자.

먼저 GMO를 찬성하는 측의 의견을 들어보자. 일단 생명공학 기술은 중금속 오염지역의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식물도 만들어 낼 수 있고, 생물 연료용 작물도 만들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식량 부족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예측하고 있다. 생명공학 식품에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 그리고 환경위해성을 줄이는 데에도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하면 가능하리라고 낙관적으로 향후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GMO에 대해서 반대하는 측의 논거의 핵심은 GMO의 안전성이다. 수퍼 잡초의 탄생이 실제화 되었고, 동물실험 결과 GMO 옥수수를 먹인 닭의 간이 작아지고, 또 수명이 단축되었다는 실험결과도 있다. 또 아직 GMO 식품을 먹었을 경우 장기적인 영향력에 대한 연구도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GMO식품이 지구 식량부족을 해소할 수 있다는 말 또한 거짓임은 다 밝혀졌다.

역시 마찬가지로 양측은 상대방의 악기 소리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는다. 당연히 둘이 내는 소리는 불협화음일 수밖에 없다. 나머지 키워드에 있어서도 의견의 대립 수준은 비슷하다. 우리의 현실은 ‘지식의 이중주’가 불협화음만 낼 수밖에 없는가. 과연 아름다운 화음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까? 현실은 차라리 우리에게 귀를 막고 있으라고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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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에 대한 복종
스탠리 밀그램 지음, 정태연 옮김 / 에코리브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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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남들이 자신을 해치려 한다면 도망을 가거나 아니면 그에게 맞서 싸운다. 그러나 남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는 한 그에게 어떤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쉽게 이야기해서 우리는 필요 없는 일에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그런데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 해가 되는 행위를 할 수 있을까?

1963년 미국 예일대학교 심리학실험실에서는 아주 유명한 실험이 있었다. 유명하다고 표현한 의미는 실험의 결과가 아주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예일대학교 심리학교수인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사람의 행동에 있어서 권위가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이 실험을 했다. 이 실험에 대한 내용이 신간 <권위에 대한 복종>(에코리브르.2009년)에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이 실험을 계획한 스탠리 밀그램이다.

먼저 이 실험의 개요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예일대학에서는 ‘기억과 학습’이라는 연구에 참가자(피험자)를 모집한다. 실험자는 피험자에게 ‘처벌이 학습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라고 설명한다. 실험실에는 실험자, 피험자 그리고 학습자가 있다. 학습자는 실험실 방 안의 의자에 앉히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양 팔을 의자에 묶는다. 그리고 전극봉을 그의 손목에 부착한다. 실험자는 학습자에게 단어를 공부할 거라고 말하고, 질문에 잘못된 대답을 하면, 전기충격이 점차 강해지리라고 말한다. 실험이 시작되면 피험자는 학습자에게 단어 문제를 낸다. 대답이 틀릴 때마다 15볼트에서 마지막 450볼트까지 15볼트씩 강도를 증가시킨다. 이 실험에서 학습자는 연기자이다. 그러나 피험자는 학습자가 자신과 같은 피험자인줄로 알고 있다.

학습자는 75볼트에서 툴툴거리고, 충격이 120볼트에 이르자 말로 불평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50볼트에 이르자 실험을 그만두라고 요구한다. 285볼트에서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른다. 학습자가 고통을 호소함으로써 피험자는 아주 불편함을 느낀다. 학습자도 자신과 같이 이 실험에 참가한 외부인이 아니던가. 학습자는 피험자 자신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은 사람이다. 따라서 피험자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 당연히 고민에 빠진다. 피험자는 실험을 지속하기가 점차 힘들어지지만, 실험자는 학습자의 대답이 틀리면 계속 볼트를 높이라고 요구한다. 피험자는 과연 어느 순간에 가서야 자신의 행위를 멈출까. 즉 실험자의 명령을 언제 거부할 수 있는지가 이 실험의 관건이다.

당신이라면 어느 순간에 실험을 그만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피험자라면 학습자가 고통을 이야기할 때 실험을 멈추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실험에 참가한 피험자들의 경우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그 결과는 아주 놀라웠다. 그래서 이 실험이 유명해졌다.

피험자들은 자신을 힘들게 하고 자신의 가치관에도 반하는 실험자의 지시에 기꺼이 따르고 있었다. 물론 실험자에게 항의도 했지만, 상당수의 피험자들은 전기충격기의 가장 높은 단계까지 실험을 계속했다. 상당수는 거의 3분의 2에 해당되는 사람이었다. 놀랍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실험에 참가한 피험자들이 일반적인 사람이 아닌, 특별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어서 그랬을까? 그들은 3만 명으로 이루어진 뉴헤이번 지역에 거주하는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놀라운 행동을 보인 그 이유를 스탠리 필그램은 이렇게 설명한다. “희생자에게 전기충격을 가한 평범한 사람들은 의무감 때문이었지, 특별히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31쪽)

같은 조건으로 다른 대학에서 행한 실험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그렇다면 조건을 달리하면 결과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예컨대 여성을 피험자로 하면 기존 실험과 다른 점이 발생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여자는 남자보다 고분고분하다. 따라서 여성이 남자보다 더 복종적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반대로 여성은 남성보다 덜 공격적이고 더 공감적이라는 특성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실험결과는 어땠을까? 실험에 참가한 여성 피험자 40명 가운데 26명이 450볼트까지 충격을 주었다. 남자들의 결과와 같았다. 다만 여성이 경험한 갈등 수준만 남성 피험자들이 느낀 정도보다 전체적으로 더 높았을 뿐이었다. 이외에도 조건을 다양화해서 실험을 했지만, 권위가 사람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결과는 동일했다.

이 실험의 결과는 사회적인 삶 속에서 사람은 권위 있는 명령에 대해 자신의 가치관에 반하더라도 과반수의 사람들(65퍼센트)이 복종을 한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는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또 많은 사람들이 권위자의 명령에 복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실험에 참가했던 한 피험자의 말은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이 실험은 권위를 배반하더라도 동료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을 강화시켰다.”(273쪽) 요컨대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인간의 속성을 파악하고 잘 이해하고 있다면 나쁜 점은 피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실험의 비윤리성 때문에 스탠리 필그램은 수많은 비판을 받았다. 지금 이러한 실험은 불가능하리라고 생각된다. 이유는 피험자에게 큰 고통을 준다는 점 때문이다. 40년 전에 이루어진 이 ‘악명’ 높은 실험은 인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크게 높여주었다. 그래서 이 실험은 유명해졌다. 이 실험은 인간의 두 측면을 보여주었고, 마찬가지로 그 결과도 유명과 악명을 함께 가지고 있다

책의 표지 이미지도 섬뜩하다. 검은 바탕에 보는 이에게 강력히 지시하는 손가락 모습이다. 마치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면 큰 벌을 주겠다고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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