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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에 대한 복종
스탠리 밀그램 지음, 정태연 옮김 / 에코리브르 / 2009년 2월
평점 :
사람들은 남들이 자신을 해치려 한다면 도망을 가거나 아니면 그에게 맞서 싸운다. 그러나 남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는 한 그에게 어떤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쉽게 이야기해서 우리는 필요 없는 일에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그런데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 해가 되는 행위를 할 수 있을까?
1963년 미국 예일대학교 심리학실험실에서는 아주 유명한 실험이 있었다. 유명하다고 표현한 의미는 실험의 결과가 아주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예일대학교 심리학교수인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사람의 행동에 있어서 권위가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이 실험을 했다. 이 실험에 대한 내용이 신간 <권위에 대한 복종>(에코리브르.2009년)에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이 실험을 계획한 스탠리 밀그램이다.
먼저 이 실험의 개요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예일대학에서는 ‘기억과 학습’이라는 연구에 참가자(피험자)를 모집한다. 실험자는 피험자에게 ‘처벌이 학습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라고 설명한다. 실험실에는 실험자, 피험자 그리고 학습자가 있다. 학습자는 실험실 방 안의 의자에 앉히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양 팔을 의자에 묶는다. 그리고 전극봉을 그의 손목에 부착한다. 실험자는 학습자에게 단어를 공부할 거라고 말하고, 질문에 잘못된 대답을 하면, 전기충격이 점차 강해지리라고 말한다. 실험이 시작되면 피험자는 학습자에게 단어 문제를 낸다. 대답이 틀릴 때마다 15볼트에서 마지막 450볼트까지 15볼트씩 강도를 증가시킨다. 이 실험에서 학습자는 연기자이다. 그러나 피험자는 학습자가 자신과 같은 피험자인줄로 알고 있다.
학습자는 75볼트에서 툴툴거리고, 충격이 120볼트에 이르자 말로 불평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50볼트에 이르자 실험을 그만두라고 요구한다. 285볼트에서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른다. 학습자가 고통을 호소함으로써 피험자는 아주 불편함을 느낀다. 학습자도 자신과 같이 이 실험에 참가한 외부인이 아니던가. 학습자는 피험자 자신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은 사람이다. 따라서 피험자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 당연히 고민에 빠진다. 피험자는 실험을 지속하기가 점차 힘들어지지만, 실험자는 학습자의 대답이 틀리면 계속 볼트를 높이라고 요구한다. 피험자는 과연 어느 순간에 가서야 자신의 행위를 멈출까. 즉 실험자의 명령을 언제 거부할 수 있는지가 이 실험의 관건이다.
당신이라면 어느 순간에 실험을 그만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피험자라면 학습자가 고통을 이야기할 때 실험을 멈추라고 요구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실험에 참가한 피험자들의 경우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그 결과는 아주 놀라웠다. 그래서 이 실험이 유명해졌다.
피험자들은 자신을 힘들게 하고 자신의 가치관에도 반하는 실험자의 지시에 기꺼이 따르고 있었다. 물론 실험자에게 항의도 했지만, 상당수의 피험자들은 전기충격기의 가장 높은 단계까지 실험을 계속했다. 상당수는 거의 3분의 2에 해당되는 사람이었다. 놀랍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실험에 참가한 피험자들이 일반적인 사람이 아닌, 특별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어서 그랬을까? 그들은 3만 명으로 이루어진 뉴헤이번 지역에 거주하는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놀라운 행동을 보인 그 이유를 스탠리 필그램은 이렇게 설명한다. “희생자에게 전기충격을 가한 평범한 사람들은 의무감 때문이었지, 특별히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31쪽)
같은 조건으로 다른 대학에서 행한 실험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그렇다면 조건을 달리하면 결과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예컨대 여성을 피험자로 하면 기존 실험과 다른 점이 발생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여자는 남자보다 고분고분하다. 따라서 여성이 남자보다 더 복종적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반대로 여성은 남성보다 덜 공격적이고 더 공감적이라는 특성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실험결과는 어땠을까? 실험에 참가한 여성 피험자 40명 가운데 26명이 450볼트까지 충격을 주었다. 남자들의 결과와 같았다. 다만 여성이 경험한 갈등 수준만 남성 피험자들이 느낀 정도보다 전체적으로 더 높았을 뿐이었다. 이외에도 조건을 다양화해서 실험을 했지만, 권위가 사람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결과는 동일했다.
이 실험의 결과는 사회적인 삶 속에서 사람은 권위 있는 명령에 대해 자신의 가치관에 반하더라도 과반수의 사람들(65퍼센트)이 복종을 한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는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또 많은 사람들이 권위자의 명령에 복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실험에 참가했던 한 피험자의 말은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이 실험은 권위를 배반하더라도 동료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을 강화시켰다.”(273쪽) 요컨대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인간의 속성을 파악하고 잘 이해하고 있다면 나쁜 점은 피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실험의 비윤리성 때문에 스탠리 필그램은 수많은 비판을 받았다. 지금 이러한 실험은 불가능하리라고 생각된다. 이유는 피험자에게 큰 고통을 준다는 점 때문이다. 40년 전에 이루어진 이 ‘악명’ 높은 실험은 인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크게 높여주었다. 그래서 이 실험은 유명해졌다. 이 실험은 인간의 두 측면을 보여주었고, 마찬가지로 그 결과도 유명과 악명을 함께 가지고 있다
책의 표지 이미지도 섬뜩하다. 검은 바탕에 보는 이에게 강력히 지시하는 손가락 모습이다. 마치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면 큰 벌을 주겠다고 말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