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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와 책 -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
정혜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침대 그리고 관능적인 독서기' 라! 이런 제목의 글을 보고 여자들은 모르지만 그냥 지나칠 남자가 있을가? 인터넷 서점에 이러한 제목의 글이 연재를 시작할 때 나는 마우스에 올려진 내 오른손의 검지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난 그렇게 그녀의 침대와 책을 엿보고 싶었다. 난 제목에 낚였던 것이다.
내가 그녀의 침실에서 본 것은 "울고, 우울하고, 떠나고 싶고, 사랑에 아파하고, 아름다워지고 싶고, 자유와 평화를 원하고, 늙음에 대한 걱정, 외로움'을 절절히 느끼고 있는 모습이었다.
<침대와 책>(웅진지식하우스.2007년)에서 자신의 침대에서 우리들에게 책을 읽어준 사람은 현 방송사 PD인 정혜윤이다. 주로 시사 프로그램을 방송한다는 저자의 이 책은 전혀 시사적이지 않다. 아주 개인적이고 소소한 일상의 떨림을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에 있는 가사 '사랑이 외로운 건 전부를 걸기 때문이지'와 'Q'의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사랑이 끝이 났다'로 '사랑이 끝나버린 걸 아는 순간'이란 제목의 글은 시작이 된다.
사랑을 잃는다는 것은 "'아름다운 너에게'라고 서명이 되어 있는 책을 받아볼 일이 없어지는 것이고........'세일하는 와인을 몇 병 샀어. 치즈 사 와. 같이 먹게'란 말을 들을 일 역시 없어지는 것이다. 또 이런 문장을 잃는 것이다."라는 저자의 표현이 멋지다. 아니 슬프다.
또 저자는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에서 약혼자를 죽음으로 잃어버린 남자의 절규를 들려주며,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에서 사랑의 놀라운 아름다움에 눈을 뜨는 열여섯 살 소년의 모습과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우리에게 읽어준다. 정혜윤은 사랑을 잃어버린 느낌을 잘 살려주고 있다. 아마 그녀도 쓰라린 이별의 경험이 있음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기죽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 -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침대에 차례차례 눕혀야 할 네 남자' 는 제목 한 번 거창하다.
자! 제목에서는 관능미가 뚝뚝 떨어져 내린다. 그런데 그녀는 자유를 원하고 있다. 자유와 사랑은 결코 공존할 수 없는 대립적인 단어라고 생각한다. 사랑에는 자유보다는 '구속'이 훨씬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그렇다면 그녀는 사랑을 포기하는 것인가? 사랑이 끝난 후의 슬픔을 감당하기가 어렵다고 느끼는 건가?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그녀가 눕히려고 하는 네 남자를 만나보자.
몽테뉴가 첫 번째다.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면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버린 몽테뉴는 '글쓰기'를 통해 배변 습관, 발기 불능, 성적 컴플렉스 까지도 말해버렸다고 한다. 감출것이 없다고 하면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생각에 공감이 간다. 아마 이 책 <침대와 책>도 내가 보기에는 정혜윤의 자유로움에 대한 몽테뉴식의 몸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둘째는 움베르트 에코이다.
저자는 에코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중 '어덯게 지내십니까'라는 글을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노아의 대답을 한 번 볼까? '재해보험 좋은 게 하나 있는데, 알고 계세요?' 나의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갈릴레이의 대답은? '잘 돌아갑니다' 나는 흐흐흐하고 웃고 있다. 멜서스는 '인구에 회자되지 않도록 조심하시오'라는 부분에서 난 크게 웃었다. 그렇다 저자에게 필요한 것은 시원한 웃음이었나 보다.
그녀가 세번째 눕힌 남자는 마크 트웨인이다. 마크 트웨인은 '60만 단어 이상으로 규모가 큰 자서전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런 마크 트웨인을 침대로 데려간 정혜윤은 '파격'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렇다 '파격' 즉 정형화된 것을 떨쳐 버릴 수 있다면 이 또한 자유로워질 것이다.
마지막 남자는 셜록 홈스이다. 홈스를 통해서 정혜윤은 남의 시선으로부터 담대해지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고 있나보다. 뭐 그건 나도 마찬가지 이니까.
제목에 이끌려 인터넷 서점에서 힐끗거리던 그녀의 침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났다. 난 이 책을 통해 그녀의 침실로 성큼 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정혜윤의 침실은 결코 관능적이지만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아픈 가슴을 애써 달래고 있는 연약한 소녀였던 것이다. 혹시 내가 그녀를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정말 관능적인 것 없어요?"
이제 나는 그녀의 침실에서 나와 내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 내 손에는 그녀의 침실에서 가져온 책이 몇 권이 들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