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하는 물고기의 상상 - 오늘을 행복하게 하는 36가지 상상
케스투티스 카스파라비키우스 지음, 원지명 옮김 / 예담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미망인(未亡人) 모씨(某氏)는 두어 자 글로써 침자(針子)에게 고(告)하노니,” 이렇게 시작하는 이 글은 바로 조침문‘(弔針文)’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이글은 바늘을 의인화하여 제문(祭文)으로 쓴 글로, 과부가 되었고 또 자식도 없는 한 여인이 선물로 받은 바늘이 부러지자 그 섭섭한 마음이 들어 이 글을 썼다고 전해진다. 누구하나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상대가 없었던 그녀의 생활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것은 바로 바늘이었는데, 이것이 부러져서 더 이상 그녀와 함께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녀는 이 친구와 같이 여겼던 바늘이 부러진 것은 마치 사람이 죽은 것처럼 생각하고 제문을 썼던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인줄로 알던 시기도 있었다. 또 지구의 주인이 인간인줄로 알던 시기도 있었으며, 우리는 아직도 우리가 지구의 주인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지구는 인간이 없어도 전혀 문제가 없다. 문제는 우리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를 망가뜨리는 데에 있다. 아니 주인이면 오히려 더 아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인간의 습성 상 임자가 없는 것이라면 마구 쓰는 경향이 있다.


나만 아는 존재인 우리들, 하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에 영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기에 그들과 대화도 가능하다고 생각했기에 각종 신화와 이야기 거리가  생겨나고, 많은 교훈도 그 안에 녹아있었다. 죽음과 삶이 하나였고, 사물이나 동물들에게 인격을 부여해 그들을 소중히 다루었던 것이 인간의 중요한 삶의 하나였다.


물아일체(物我一體)라고 표현도 있다. ‘나와 나를 둘러싼 것들이 모두 하나이다.’라는 의미로 이런 생각이 발전해서 물질을 의인화해서 인격을 부여 하였고, 그들과 즐거움과 애환을 즐겼다.


하지만 인간은 이러한 성격을 버리고는 나와 우리라는 편가르기는 타인과 사물에 대해 소중한 가치를 박탈해버렸다. 이것이 현대사회를 메마르게 한 이유는 아닌지 모르겠다. 즉 우리만 외치다 보니 우리는 우리 주변의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을 쓸 틈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나와 우리만 앞으로 달려가기도 바쁘니 옆을 둘러볼 여유조차 우리에게는 사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앞으로만 나가도 보니, 무언가 허전한 기분이 들어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우리는 한 번 생각해볼 여유를 가졌는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은 여유가 필요한 시기이다. 이렇게 Fast Life에 매몰된 우리 삶에 인격을 가진 사물들의 이야기는 Slow Life도 우리에게 줄 수 있으며, 잠시나마 여유와 웃음을 우리에게 허용해준다.


이 책 <낚시하는 물고기의 상상>(예담.2007년)은 그런 책이다. 가스레인지에서부터 가죽 구두까지 우리 주변에 흔히 있어 그 존재가치를 잊어버리고 있는 36개의 사물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36개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던 삶의 가치와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저자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리투아니아 사람으로 이름은 ‘캐스투티스 카스파라비키우스’로  어렵다. 그는 서문에서 이 책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괜스레 구박받고 무시당했던 작은 것들에 대한 개인적인 정중한 사과입니다. 나의 엄한 비난을 묵묵히 감내해주는 주위 물건들에 대한 감사의 편지입니다.”그런 미안함에서 그는 36개의 사물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독자들에 감동을 준다.


이 책에는 책의 제목처럼 낚시하는 물고기도 나오고, 감기 걸린 수도꼭지도 나온다. 제일 처음에 나오는 주방이야기를 한 번 살펴보자. 주방장인 커다란 냄비는 지금 수프를 끓이는 중이고, 부주방장인 작은 냄비는 채소를 데치고 있다. 신참인 프라이펜 소녀는 팬케이크를 굽느라 바쁘다. 그녀의 주특기는 펜케이크를 공중 삼회전 시키는 기술이다. 하지만 그녀는 실수를 해서 공중으로 던진 펜케이크가 수프 속으로 떨어진다. 이 상황을 보고 그 옆에 있던 부주방장이 정신없이 웃다가 자신이 삶고 있던 야채가 몽땅 타버렸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을 저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상대의 허물을 비웃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허물로 비웃음을 당하게 됩니다.”


“잘난 사람을 칭찬하기는 쉽지만 못난 사람을 격려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야말로 격려가 절실히 필요합니다.”라는 이야기는 27번째에 수록된  찻잔 이야기에서 나오는 교훈이다.


“멀리 떠나보면 곁에 있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지만 너무 멀어지면 돌아오는 길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는 31번째에 수록된  테디 베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이다.


영문 제목은 <Silly Stories>로 ‘어리석은 이야기’이다. 내가 보기에는 등장하는 사물들이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어리석다는 이야기인 것으로 느껴진다. 작고 가벼운 책이지만 내용은 크고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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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07-05-25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대의 허물을 비웃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허물로 비웃음을 당하게 됩니다.”
너무 와닿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