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I, 천사인가 악마인가 - 인간의 마지막 질문
김대식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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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 교수의 『AGI, 천사인가 악마인가』는 인공지능의 기술적 진보를 논하는 책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를 다시 묻는 철학적 에세이다. 저자는 지금을 ‘모자이크 모멘트’라 부른다. 과거 인터넷이 문명의 지도를 바꾼 것처럼, 생성형 AI의 등장은 인간의 사고 구조 자체를 바꾸는 문명사적 전환점이라는 것이다.

책은 인공지능을 천사나 악마 중 어느 한쪽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대신 기술이 인간을 넘어설 때, 인간다움은 어디에 남는가를 되묻는다. AGI는 선도 악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깊이에 따라 천사로도, 악마로도 변모할 수 있는 ‘거울’이다. 결국 위협은 기계가 아니라 인간의 무지와 자기기만에서 비롯된다.

김대식 교수는 지금이 ‘골든 아워’, 즉 되돌릴 수 없는 지점으로 넘어가기 전의 마지막 시간이라고 말한다. 이 시기 인류가 해야 할 일은 기술의 속도를 따라잡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성찰의 속도를 높이는 일이다. AI의 윤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윤리이며, 그것이 바로 지능을 다스릴 지혜의 시작이다.

『AGI, 천사인가 악마인가』는 과학 교양서의 외피를 쓴 인문 선언문이다. 저자는 기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사유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순간, 진짜 악마가 태어난다고 경고한다. 인공지능의 미래를 논하면서도, 끝내 인간의 진화를 믿는 이 책은 기술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AI가 인간을 닮아갈수록, 인간은 더욱 인간다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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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느티나무 - 강신재 소설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31
강신재 지음, 김미현 책임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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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느티나무』는 사랑의 이야기이지만, 사실은 성장의 부작용에 관한 기록이다. 사람이 사랑을 배우는 순간, 동시에 상처의 언어도 함께 배운다는 사실을 이 소설은 알고 있다.

미림은 사랑을 통해 세상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 앎은 따뜻하지 않다. 감정의 진심이 세상의 논리와 부딪힐 때, 사랑은 언제나 패배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는다. 마음이 부서지면서도 계속 느끼고, 계속 믿는다. 이 소설의 진짜 온기는 바로 그 포기의 유예, 그 감정의 잔존에서 피어난다.

강신재의 문장은 감정의 파동을 억제한 채, 그 아래 흐르는 미세한 균열을 보여준다. 그 절제 속에서 우리는 이상하게 따뜻해진다. 이야기 속 사람들은 서로를 구원하지 못하지만, 서로의 불완전함을 바라본다. 그 바라봄이 이 소설의 전부다.

『젊은 느티나무』는 말한다. 사랑은 성장의 증거가 아니라, 성장의 흔적이라고. 누군가를 사랑한 사람은 다시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그래서 이 소설은 젊음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젊음의 종언이다.

읽고 나면 남는 것은 서늘함이 아니라, 오래된 햇빛 같은 감정이다. 견디는 법을 모른 채 버티던 마음들이, 그래도 결국은 살아 있었음을 조용히 증명하는 — 그 시절의 느티나무 한 그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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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브 연락 없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0
에두아르도 멘도사 지음, 정창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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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외계인 이야기지만, 이상하게도 읽다 보면 내 얘기 같다. 구르브가 지구에 내려와 잠시 머무르다, 아무 말 없이 사라진다. 남겨진 동료는 그를 찾아 도시를 헤맨다. 그러나 그 여정은 곧 ‘친구를 찾는 일’에서 ‘사람을 이해하는 일’로 바뀐다.

이 외계인은 인간의 세상을 어색하게 배워간다. 커피 향을 맡고 놀라며, 길을 잃고도 웃고, 낯선 사람의 친절에 감동한다. 그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지만, 그 안에서 기이한 온기를 느낀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풍자보다 따뜻함에 가깝다. 우주에서 온 시선으로 본 인간의 하루는, 어설프지만 사랑스럽다.

책을 덮으면, ‘연락 없다’는 말이 더 이상 슬프게 들리지 않는다. 그건 어쩌면 서로가 잠시 다른 궤도를 도는 시간일 뿐이다.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혹은 그냥 잘 지내기를 바라는 조용한 마음.

『구르브 연락 없다』는 그런 마음을 다정하게 품은 이야기다.
익살스러운 장면 속에도 늘 온기가 남는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멀어진 사람조차 문득 그리워지고 — 지구가 조금 더 따뜻한 별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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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심리학
다크 사이드 프로젝트 지음 / 어센딩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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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심리학은 인간을 탐구한다기보다, 인간을 조작 가능한 구조로 축소한다. 이 책이 다루는 어둠은 진짜 내면이 아니라, 피로한 세태가 만들어낸 그림자다. 깊이를 두려워하는 시대의 산물, 그것이 이 책의 본질이다.

우리는 하루하루가 피곤하고 피로하다.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먼저 상대를 분석하고 예측하고 조종하려 든다.
다크 심리학은 그런 불안을 정당화한다. “세상은 잔인하니, 먼저 이용당하지 말라.”
이런 책이 유행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생각하는 것보다 ‘해석된 답’을 소비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복잡한 인간을 이해하는 대신, 몇 개의 심리 유형으로 정리된 세계를 믿는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불안한 사람들은 복잡한 인간 대신 단순한 공식을 원한다.
그래서 “상대를 파악하라, 먼저 이용하라”는 문장이 지성처럼 소비된다. 그러나 그런 언어는 통찰이 아니라 피로의 다른 이름이다.

진짜 사유는 단순화를 거부한다.
《군주론》은 권력의 냉혹함 속에서 인간의 본성을 성찰했고,
《손자병법》은 싸움의 논리로 인간의 균형을 가르쳤다. 그들은 인간을 조종하지 않았고, 이해하려 했다.

다크 심리학은 시대의 불안을 자극하지만, 그 불안 위에 서 있을 뿐이다. 깊이를 잃은 심리학은 결국 인간을 잃는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서가 아니라 사유의 원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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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0-15 0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입니다. 그 사유가 돋보입니다.

러브식사랑 2025-10-27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 읽은 게 더 큰 깨달음을 줍니다. 최고예요
 
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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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은 인간 내면의 복잡한 진동을 정직하게 기록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선악의 구분이나 도덕적 결론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삶의 균열, 감정의 불균형, 이해와 상처의 교차점을 세밀하게 포착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안진진 한 개인의 성장소설이 아니라, 감정의 구조를 해부한 문학적 보고서로 읽힌다.

- 착함의 이면, 피로의 문학
안진진은 본질적으로 ‘착한 사람’이다. 그러나 양귀자는 그 착함을 미덕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진진의 선의는 언제나 상처와 함께 도착한다. 남을 이해하려다 자기 자신을 잃고, 용서하려다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그녀의 착함은 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피로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냉정한 질문을 던진다. 착하게 사는 일은 정말 선한가, 아니면 자기파괴의 또 다른 방식인가.
이 소설의 통찰은 바로 그 역설에 있는 것 아닐까
선의는 구원을 낳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의 내면을 분열시키는 에너지로 작용한다.

- 모순의 질서, 감정의 해부학

‘모순’이라는 단어는 흔히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이 소설 안에서 그것은 인간의 본성 처럼 제시된다. 사랑은 동시에 증오로 흐르고, 이해는 거리를 낳으며, 진심은 종종 파괴를 동반한다.
이 모든 역설을 양귀자는 감정의 질서 속에서 재배열한다. 그녀는 인간을 바꾸어야 한다고 설득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이 모순된 채로 살아남는 방식을 탐구한다. 성숙이란 완전함의 도달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견디는 능력임을 이 작품은 보여준다. 그래서 모순의 인물들은 끝내 구원받지 않지만, 그 대신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 모순은 병이 아니라 증거다

이 소설은 인생을 정리하려는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정리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을 위한 문학이다. 이 소설은 삶을 예쁘게 포장하지 않는다. 도리어 인간이란 애초에 일관될 수 없음을, 감정이란 언제나 이율배반적임을 담담히 인정한다.

결국 이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깊다.
모순은 결함이 아니라 존재의 증거라는 것.
그 깨달음이야말로 모순의 가장 잔잔하면서도 강력한 힘이다.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인간의 복잡함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그 복잡함이야말로 우리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징표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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