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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평점 :
모순은 인간 내면의 복잡한 진동을 정직하게 기록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선악의 구분이나 도덕적 결론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삶의 균열, 감정의 불균형, 이해와 상처의 교차점을 세밀하게 포착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안진진 한 개인의 성장소설이 아니라, 감정의 구조를 해부한 문학적 보고서로 읽힌다.
- 착함의 이면, 피로의 문학
안진진은 본질적으로 ‘착한 사람’이다. 그러나 양귀자는 그 착함을 미덕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진진의 선의는 언제나 상처와 함께 도착한다. 남을 이해하려다 자기 자신을 잃고, 용서하려다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그녀의 착함은 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피로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냉정한 질문을 던진다. 착하게 사는 일은 정말 선한가, 아니면 자기파괴의 또 다른 방식인가.
이 소설의 통찰은 바로 그 역설에 있는 것 아닐까
선의는 구원을 낳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의 내면을 분열시키는 에너지로 작용한다.
- 모순의 질서, 감정의 해부학
‘모순’이라는 단어는 흔히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이 소설 안에서 그것은 인간의 본성 처럼 제시된다. 사랑은 동시에 증오로 흐르고, 이해는 거리를 낳으며, 진심은 종종 파괴를 동반한다.
이 모든 역설을 양귀자는 감정의 질서 속에서 재배열한다. 그녀는 인간을 바꾸어야 한다고 설득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이 모순된 채로 살아남는 방식을 탐구한다. 성숙이란 완전함의 도달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견디는 능력임을 이 작품은 보여준다. 그래서 모순의 인물들은 끝내 구원받지 않지만, 그 대신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 모순은 병이 아니라 증거다
이 소설은 인생을 정리하려는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정리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을 위한 문학이다. 이 소설은 삶을 예쁘게 포장하지 않는다. 도리어 인간이란 애초에 일관될 수 없음을, 감정이란 언제나 이율배반적임을 담담히 인정한다.
결국 이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깊다.
모순은 결함이 아니라 존재의 증거라는 것.
그 깨달음이야말로 모순의 가장 잔잔하면서도 강력한 힘이다.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인간의 복잡함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그 복잡함이야말로 우리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징표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