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도가니’란 말은 내게 친근하다. 쉽게 감격하고 흥분하는 다혈질에다 B형의 단점만 고스란히 묻어나는 성격의 나는 ‘도가니’란 말이 참 좋다.

하지만 책 <도가니>와 마주했을 때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인 ‘흥분이나 감격 따위로 들끓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실감했다. 더 격렬하고 슬픈 ‘도가니’의 뜻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감동의 도가니를 선물해주리라 믿으며 펼쳤던 책<도가니> 속에서 나는 많은 것들과 조우했다. 지독한 안개 때문에 무진시(霧津市)라고 불리게 된 도시에서 일어나는 거짓된 상처들.




책 <도가니>는 서울에서 농아학교의 기간제교사가 되어 시골로 내려온 선생님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처음 낯선 도시에서 그가 마주친 것은 짙은 안개다. 눈앞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이 익숙한 도시 무진, 그 곳에는 농아들이 사는 자애학원, 그의 새로운 일터가 자리하고 있다.

‘자애학원’이란 이름에서 나는 ‘메아리 학교’를 떠올렸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보게 되는 노란빛의 메아리 학교 버스가.

농아. 나는 그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단지, 그들과는 다른 언어로 말하는 일반인들에게는 그들이 귀머거리와 벙어리로 불린다는 것 밖에. 그들은 내 말을 들을 수 없고 나 또한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 밖에는.




책 <도가니>속에는 입이 아닌 손짓으로 그들만의 언어를 가지고 세상에 진실을 말하기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그들이 있다. 평화롭고 고요한, 뿌연 안개에 가려져 신비감마저 맴도는 그 곳에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인권을 짓밟는 악행이 일어나고 있다.

책은 이름 있고 권위 있는 사회의 기득권자들에게 소리 없이 대항하는 장애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안개 속에 감춰진 진실과 거짓의 실체 그리고 눈물과 아픔이 책 속에서 고스란히 묻어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아직 미성년자인 청각장애인 연두, 유리가 있다. 그 아이들의 눈은 진실을 보고, 손짓은 진실을 이야기한다. 그 아이들의 손짓이 말하는 진실은 놀랍게도 지역사회에서 덕망 있는 학교 교장과 행정실장, 그리고 지도 교사에 의해 자행된 수차례의 성폭행.

악행의 흔적보다도 더 놀라운 사실은 지금껏 누구도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리 없는 외침이 책을 읽는 내내 전해올 만큼 아프고 고통스러웠지만 아이들의 편에서 손짓의 언어가 아닌 입으로 그들의 잘못을 말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선생님의 눈이 그들의 눈을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책 속 이야기를 보면서 문득 제노비스 사건을 떠올렸다. 1964년 뉴욕에서 퇴근길에 일어난 제노비스라는 여인의 살인 사건 현장에는 목격자가 38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를 향해 도움의 손짓을 건네지 않았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그녀를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한 ‘방관’이라는 생각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농아 아이들의 숨 죽여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무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절규가 맴돌았다. 어쩌면 아이들의 아픔은 사람들의 차가운 외면과 방관의 눈빛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통해 마주한 장애아들의 인권 윤린은 내게 얼마나 용기 내어 살고 있는지, 타인의 이야기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그들의 눈을 마주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얼마나 귀 기울였는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소리 내어 ‘아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내게 있었던가.

진실의 편에 맞서 당당하게 싸울 의리가 내게는 있었던가.

나 또한 짙은 안개를 핑계 삼아 진실을 외면한 적은 없었던가.




책은 오늘을 사는 비겁한 방관자들에게 진실의 힘을 다시금 알려준다.

이 책 속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사실을 축소해 소설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된 것은 어떤 신문기사 한 줄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것은 마지막 선고공판이 있던 날의 법정 풍경을 그린 젊은 인턴기자의 스케치기사였다고. 그 마지막 구절은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였던 것 같다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쉽게 묻혀버릴 한 줄의 기사는 소설이 되었다. 그리고 무지한 내게도 그들의 아픔과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져오게 됐다.

비록 소설 속 악행을 자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끝을 맺지 못했지만, 스스로에게 남이 아닌 자신의 편에서 묵묵한 방관자의 태도로 일관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의도하지 않게 남에게 상처를 주고 살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보게 한다.




<도가니>를 읽는 내내 나는, ‘안타까운 진실’과 ‘불편한 거짓’ 사이를 오르내렸다. 책을 통해 참을 수 없는 분노에 흥분하기도, 진실의 편에 서 있는 많은 희망 때문에 감격하기도 했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이며 그것들의 실체는 어떤 것인지는 끝나지 않은 이야기처럼 알 수 없다.

안개가 가득한 소리 없이 고요한 무진시는 내가 오늘을 살고 있는 사회고, 안개 속에서 또 어떤 이들이 안타까운 일을 당하고 있을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유난히 짙었던 도가니 속 안개 끝에는 반드시 진실이 또 다른 희망으로 번져있을 것이리라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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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 2009.가을 - Vol.14
문학동네 편집부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청소년을 위한 문학문화잡지 <풋>은 싱그럽다. 온 세상이 색을 입어 화려함을 자아내는 요즘, <풋>속의 글들은 저마다의 색이 존재하는 것만 같다.
<풋>은 청소년들을 위한,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잡지다.

나는 이 잡지를 통해 청소년들의 생각에 잠깐씩 동화가 되기도 하고 색다른 발상에 충격을 먹기도 했다. 때론 그들의 글 솜씨에 감탄하기도 하면서.
‘클립’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써내려 간 여러 글들은 통통 튀는 십대만의 매력을 글 속에 고스란히 담았다. 미래 작가들의 글과 마주하면서 내가 만들어 놓은 틀이 무색해졌다.
‘아,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글 속에서 고민한 흔적들을 발견할 때마다 묘한 매력에 사로잡힌 기분이었다.

내가 <풋>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글은 성일여고 2학년 김나윤 학생이 쓴 ‘우렁이 클립’이었다. 이 글은 일기장에 자신의 속내를 꼼꼼하게 적은 뒤 자물쇠를 채워 보관하는 딸과 그 일기장을 소리 없이 살펴보는 엄마의 이야기다.
글을 읽다 말고 학창시절 일기쓰기를 즐겨하던 내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공부하는 중간에 간식을 만들어주고 다정스런 목소리로 내 고민을 이해하고 궁금해 하는 엄마의 모습을 이상적으로 그렸던 시절. 나의 엄마는 바쁘고 고된 삶을 살았다. 그 시절 꿈꾸던 엄마의 모습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다. 물론 엄마가 놓인 현실과 삶의 굴레가 버거웠고 힘들었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딸의 일기장 속 글들과 마주하기 위해 클립으로 자물쇠를 여는 엄마, 그리고 오늘도 자신의 일기장을 살펴 볼 엄마에게 ‘내 엄마로 살아주어서 너무 고마워요’라고 적는 딸.
우렁이 각시처럼 소원을 들어주는 ‘우렁이 클립’을 통해 엄마는 딸의 고민을 이해하고, 딸은 그런 엄마의 마음에 한 줄의 글로 대신한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보면서 항상 자식에게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진 우리네 엄마의 삶을, 모습을 생각해보았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자식에게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내어주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이.

글을 통해 나는 또 한 번 엄마의 마음을 느껴본다.
그리고 아주 작은 ‘클립’이란 물체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풋>을 통해 다시금 눈을 떠본다. 익숙한 것에서 매력을 찾아내 본다.

책을 덮은 뒤에 뜻과 이치가 눈앞에 살아서 나타나 보이는 것이
살아있는 독서이다.
책을 펼쳤을 때는 알았는데 덮은 뒤에 아마득해진다면 그건 죽은 독서이다.
김창흡(1653~1722) 삼연집

나는 살아있는 독서를 하고 있는 것인가? 문득 궁금해졌다. 대답을 하고 싶은데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책을 읽는다는 것을 단순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책을 읽고 난 후 생각이나 행동에서 약간의 변화가 생겼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독서는 책을 덮으면서 비로소 시작됩니다. 독서의 참맛은 읽는 책의 많고 적음이나 읽는 속도의 빠르고 느림이 아니라, 활자 위에서 눈길을 거두어 고개 들어 한 번 생각하고, 책을 덮고 그 이치를 되씹으며 의심하는데 있습니다.

독서의 의미와 중요성을 되새겨보게 된 문장들이다.

글을 읽으면서 글을 쓰는 사람들에 대해 궁금해질 때가 많다.
하루에 얼마만큼의 글을 쓰고 어디서 발상을 얻으며 얼마의 열정과 시간을 들여야 할까?
<풋>을 통해 알게 된 김언 시인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돈다.
시를 쓰는 빈도(?)에 대한 질문에 시인은 대답한다.
‘시간이 많은 편이었으니까 무조건 1년에 4, 50편씩은 썼던 것 같다’고.
“잡문을 아무리 많이 쓴다고 해도 출퇴근하는 시간에는 비할 게 아니더라고요. 해보니까 느끼겠어. 안 될 때도 쓰고 있고, 잘 될 때도 쓰고 있고, 안될 때 써놨던 것도 낭비가 아닌 것 같아요. 2군이 튼튼해야 할 것 같아, 2군이.
올해는 출퇴근하면서 대여섯 편 밖에 못 썼어요. 그동안 재고로 버티고 있는데, 재고 떨어지고 나면 어떻게 될 지 알 수가 없죠. “
끊임없이 쓰는 것을 반복한다는 시인의 이야기 속에서 독서의 의미를 헤아려 본다.
곁에 책을 두고 항상 마주 하는 것이야 말로, 독서의 참맛을 이해하고 살아있는 독서를 하기 위한 지름길 인 것만 같다.

청소년 잡지 <풋>.
표지 속, 누군가 청소해 놓은 것만 같은 청량한 하늘 아래 말라가는 빨래처럼 <풋>을 통해 묵은 떼가 빠지고 상쾌해진 기분이다.
앞으로도 <풋>속에 담긴 글들이 계속 ‘맑음’ 상태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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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비상을 위한 천 번의 점프 - 최고에 도전하는 김연아를 위한 오서 코치의 아름다운 동행
브라이언 오서 지음, 권도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몸치라 운동을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지만 보는 것은 좋아한다. 물론 보는 것이라 함은 TV를 통해 마주하는 것이 전부이기는 하지만 승리가 가져다주는 ‘희열’은 짜릿하다.




내가 김연아 선수를 알게 된 것은 지금 보다 앳된 2006년 시니어 데뷔 그랑프리 대회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김연아’라는 선수가 앞으로 어떤 빛을 발휘하게 될지 알 수 없었지만 몇 년 사이 그녀는 최고의 자리에서 반짝이는 별이 되었다.




<한 번의 비상을 위한 천 번의 점프>는 김연아 선수를 엿보고 싶은 마음에 읽게 된 책이다. 최고의 자리에서 ‘은반 위의 요정’이 된 김연아 선수는 어떤 열정으로 어떻게 꿈을 이룰 수 있었을까? 나는 이 책 속에서 꿈을 이루는 방법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는 김연아 선수의 코치 브라이언 오서다.

그는 1980년대의 전설적인 스케이트 선수였고 코치의 길에 들어선지 일주일 만에 동양에서 온 작은 소녀 김연아를 만났다고 한다.

문득 그들의 만남 속에서 ‘멘토’의 의미를 생각 해냈다. 내가 알고 있는 ‘멘토’의 사전적 의미는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담 상대, 지도자, 스승, 선생의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삶을 살면서 인생의 ‘멘토’를 만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인지 그들의 만남은 내게 더 와 닿았다.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오서코치는 누구보다도 김연아 선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 같았다. 그는 김연아 선수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을 겪어왔기에 그녀의 고민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내가 살고 있는 외로운 길에 대한 고민을 진심으로 이야기 할 수 있고 조언을 받을 수 있는 그녀가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책을 통해 이렇듯 부러워지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삶의 순간을 함께 나눌 세상살이의 선생님(?)을 만났을 때의 감흥은 어떨지.

예전에 신경숙 작가의 <외딴방>이란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감정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있다. 그녀가 작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 준 사람은 영등포 여고 재학시절 국어담당 최홍이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우연히 써내려간 반성문을 보고 소설가가 되어보지 않겠냐던 선생님의 권유가 그녀를 최고의 작가가 되도록 만들어준 것이다.

책을 통해 삶을 살아가면서 귀인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또 한 번 느꼈던.

 

책<한 번의 비상을 위한 천 번의 점프>에서는 이미 최고의 길을 걸어온 오서코치와 최고가 되기 위해 모자람이 없었던 김연아 선수 사이의 ‘공통점’이 이어진다. 책을 읽는 내내 때론 오서의 이야기가 김연아의 이야기가 되고 김연아의 이야기가 오서의 이야기가 되기도 했다.

책은 그들이 처음 스케이트를 탔던 순간과 최고가 되기 위해 어떻게 현실과 마주했는지 등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비슷한 환경에서 스케이터로써 꿈을 이루기 위해 품었던 열정과 노력들은 책 속에서 빛을 발한다. 이미 최고의 순간을 경험해 온 오서 코치는 ‘삶의 열정’에 대해 조언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모든 힘과 열정을 그 하나의 목표에 쏟아야 한다. 그래서 목표를 향해 도전하는 과정에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하나씩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누리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리고 포기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렇게 노력하는 만큼 꿈에 점점 가까워질 것이다.

라고. 




책을 통해 나는 오서 코치의 삶과 김연아 선수의 삶 속에 크게 자리하고 있는 ‘열정’에 대해 또 다시 배운다.

김연아 선수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끊임없는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좌절감을 극복하고 시합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스스로의 비상을 꿈꾸며 부상을 치유하기 위한 혼자만의 싸움에서 그녀는 자신감을 회복하고 자신의 힘을 믿었다. 그녀의 천재성만을 바라보던 내게 오서 코치는 이야기 한다.




천재성을 하늘에서 내려준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녀의 연습 과정을 더도 말고 딱 사흘만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녀는 매일같이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모든 훈련에 최선을 다한다. 잘 안 될 때는 주저앉아 울기도 하고, 때로는 같은 점프를 몇 십 회식 연습하면서 아레나의 공기 속으로 뛰어오른다. 그 모습을 보면 천재성 속에는 노력이 포함되어 있음을 저절로 깨닫게 될 것이다.




자신의 재능에 헌신하고, 최고를 소망하고, 노력하는 기간 동안의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는 인내심과 강인한 정신, 링크장 위에 홀로 서 있을 때도 자신을 잊지 않을 수 있는 담력, 실패에도 흔들림 없는 용기 그리고 그 모든 것에서 깨달음을 얻어내는 통찰력과 스스로를 앞으로 이끄는 추진력이 있어야 비로소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최고라는 이름을 좇기보다 가슴 속에 품은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들이 책을 읽는 내내 눈앞에 아른 거렸다. 화려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 뒤에 그녀가 흘렸던 수많은 땀과 눈물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본다. 앞으로도 더 높이 비상하기 위해 끝없이 반복되고 고된 연습으로 스스로를 빛낼 그녀의 삶을 응원하고 싶다. 더불어 그녀의 ‘멘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오서 코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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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처럼 사랑도 늙을까요?
김남우 지음 / 스토리나무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사람처럼 사랑도 늙을까요?  


여행기를 좋아하는 나는,

가을이 짙어가는 10월에 또다른 여행기 한 권을 집어들게 된다.

유난히 이색적인 풍경의 사진들이 많은 이 책 속에는

여행을 떠난 자의 자유로움과 외로움이 교차된다.

 

 

   끝도 없어라. 외로움은.

겨우 캔맥주 하나 정도가 막아주더라, 내 외로움을.

외롭다는 사람에게

개폼 잡지 말라고 말하진 마.

그건 네가 사람이라면

네가 개가 아니라면

어쩔 수 없이 닥쳐버리는

그런 종류의 슬픔이니깐.

막아도, 막아도 끝이 없더라.

그 외로움은, 참 아프게도.

-루브르 박물관 앞 길가, 그 위의 맥주.

 


누군가 이별을 하면 누구나 다 시인이 되는 것 같다고 한 말이 기억난다.

슬픈 노랫말이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리고, 낯선 감정과 아픔에 외로움이

묻어나면서 진심을 담은 이야기들은 시가 된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을 마주하면서 여행자의 일기를 엿보는 느낌이 들었다.

시인인 듯 여행지에서의 느낌을 적어내려간 그의 일기장은 꽤 매력적이다.

때로는 흥미롭고,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부럽기도  한  

문구들은 책 속 사진들과

조화롭다.

사진 속 짧은 글귀들은 광고 카피를 연상시킨다.

'사랑받는 누군가는 사랑하는 누군가의 상징'

'꿈은 꿈의 입맛에 맞는 결말로 널 꿈꾸게 할 거야'

 

나는 여행이야기를 담은 책들을 볼 때마다 설렌다.

'여행'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이국적인 풍경이 연상되어 설레고,

낯선 곳에서 외로워지는 감정들이 내 마음에 동화를 이루기도 하고,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길에 오르기만 하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만 같은 막연한

기대감이 발동 하기도 한다.

 



 

사진 속의 에펠탑은 아주 작다.

무릎과 손가락 하나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에펠탑의 모습을

다시 한번 내 눈에 담고 싶어만 진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글귀가 이채롭다.

누군가가 써놓은 "재미있는 세상, 더욱 재미있게"라는 낙서에

작가는 답글을 단다.

"아름다운 세상, 더욱 아름답게"라고.

삶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눈에 담을 수 있는 많은 새로운 풍경들이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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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추억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편견’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악의 추억>과 처음 조우했을 때는 나도 모르는 편견에 사로잡힌 기분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이정명 작가의 소설과는 다른 낯선 느낌.

조금의 어색한 기운마저 감도는 <악의 추억>은 편견을 넘어 나를 압도했다.

책 속 이야기에 매료될수록 나는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범죄에 의해 희생당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괴로웠고 허탈했고 아팠다.




안개는 위험하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위험할 뿐이다.




책의 시작은 주위를 사위는 안개 때문에 등대의 불빛조차 보이지 않는 적막한 바다와 같다. 




케이블카라는 공개된 장소에서 금발의 여인이 죽은 채로 발견된다.  

“죽은 여자가 웃고 있어요.”

웃으면서 죽었나 싶을 정도로 차갑게 식어버린 입가에 스민 행복한 웃음을 익숙한 솜씨로 카메라에 담아내는 범인을 좇는 사람들.

얼굴에 미소를 지은 채로 죽음을 맞이한 여자와 연쇄살인처럼 이어지는 살인의 도미노들.

흔적 없는 죽음의 순간들은 책을 읽는 내게 ‘범죄’에 대한 실체를 찾고자 재촉한다. 누가, 왜 그녀를 죽인 것인지.




범죄의 중심에는 거대한 도시 뉴아일랜드가 있다. 화려한 도시의 내면을 뒤로하고 삶과 죽음의 양면성을 확실히 띄고 있는 중심에 크리스 매코이가 자리한다.

그는 살인마 데니스 코헨에 의해 아내와 딸을 잃고 심각한 정신적 외상을 입게 된다. 깊은 잠에 빠져들 수도, 자신의 가족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살인마의 죽음 또한 인정하지 못한 채 작은 고양이 한 마리와 외로운 삶을 살아간다.




문득 그의 삶을 바라보면서 범죄의 상흔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선의 편에서 악을 좇던 그에게 가족을 잃은 고통은 어떤 것에 비유될 수 있었을까?

실체 없는 안개 속에서 함께 사라져버린 가족의 흔적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는지.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함께 있을 때 해주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 앞에서 더욱 가슴 아파해야 했던 고통의 순간들이. 남아 있는 것이 죄스러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순간들이.




차례로 피살된 금발의 여자들은 매코이의 가족을 살해했던 범죄자의 또 다른 피해자였다. 그들은 범죄의 흔적을 지울 수 없었고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희생자들의 삶은 곧 죽음과 같았다.

매코이는 그들의 삶을 위로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웃음 가스를 주사해 죽는 순간 그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게 했고 살아있는 것이 고통스럽던 그들에게 죽음으로 삶을 동정했을지도.

살인자의 총에 의해 선과 악, 두 이름의 삶을 살았던 매코이의 생이 안타까웠다. 피해자였던 사람이 결국은 잔인한 상흔을 남기는 살인자의 모습을 간직한 채로 책은 끝을 맺는다.

실체 없는 안개 가득한 도시에서 범죄를 찾아 끝없이 선의 편에 서고자 했던 그는 결국 범죄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매코이의 삶은 항상 갈래의 길에서 고민하며 살아가는 내 삶의 모습과도 어느 부분 닮아있는 것 같다. 옳고 그른 것이 정해지지 않은 삶의 순간들을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끝까지 선의 편에 서고자 스스로 죽음을 택했던 매코이의 삶이 내게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삶이 주는 진정성, 삶을 살아가야 할 자세…….




책을 읽는 내내 낯설고 두렵고 혼란스러웠다.

범죄에 의해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이 또 다른 이름의 범죄로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읽는 내내 범죄 앞에서 사라져간 희생자들보다도  그들의 삶을 짓밟아버린 범죄자의 흔적을 자꾸만 따라가던 내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두려웠다. 순간순간 내가 방관자가 되어 버린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었다. 책을 덮으며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관심하게 대처해 온 내 삶이 안일하게 느껴지기도.

<악의 추억>을 통해 생각해보지 못했던 삶의 다양한 이면들과 조우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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