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 2009.가을 - Vol.14
문학동네 편집부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청소년을 위한 문학문화잡지 <풋>은 싱그럽다. 온 세상이 색을 입어 화려함을 자아내는 요즘, <풋>속의 글들은 저마다의 색이 존재하는 것만 같다.
<풋>은 청소년들을 위한,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잡지다.

나는 이 잡지를 통해 청소년들의 생각에 잠깐씩 동화가 되기도 하고 색다른 발상에 충격을 먹기도 했다. 때론 그들의 글 솜씨에 감탄하기도 하면서.
‘클립’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써내려 간 여러 글들은 통통 튀는 십대만의 매력을 글 속에 고스란히 담았다. 미래 작가들의 글과 마주하면서 내가 만들어 놓은 틀이 무색해졌다.
‘아,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글 속에서 고민한 흔적들을 발견할 때마다 묘한 매력에 사로잡힌 기분이었다.

내가 <풋>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글은 성일여고 2학년 김나윤 학생이 쓴 ‘우렁이 클립’이었다. 이 글은 일기장에 자신의 속내를 꼼꼼하게 적은 뒤 자물쇠를 채워 보관하는 딸과 그 일기장을 소리 없이 살펴보는 엄마의 이야기다.
글을 읽다 말고 학창시절 일기쓰기를 즐겨하던 내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공부하는 중간에 간식을 만들어주고 다정스런 목소리로 내 고민을 이해하고 궁금해 하는 엄마의 모습을 이상적으로 그렸던 시절. 나의 엄마는 바쁘고 고된 삶을 살았다. 그 시절 꿈꾸던 엄마의 모습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다. 물론 엄마가 놓인 현실과 삶의 굴레가 버거웠고 힘들었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딸의 일기장 속 글들과 마주하기 위해 클립으로 자물쇠를 여는 엄마, 그리고 오늘도 자신의 일기장을 살펴 볼 엄마에게 ‘내 엄마로 살아주어서 너무 고마워요’라고 적는 딸.
우렁이 각시처럼 소원을 들어주는 ‘우렁이 클립’을 통해 엄마는 딸의 고민을 이해하고, 딸은 그런 엄마의 마음에 한 줄의 글로 대신한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보면서 항상 자식에게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진 우리네 엄마의 삶을, 모습을 생각해보았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자식에게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내어주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이.

글을 통해 나는 또 한 번 엄마의 마음을 느껴본다.
그리고 아주 작은 ‘클립’이란 물체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풋>을 통해 다시금 눈을 떠본다. 익숙한 것에서 매력을 찾아내 본다.

책을 덮은 뒤에 뜻과 이치가 눈앞에 살아서 나타나 보이는 것이
살아있는 독서이다.
책을 펼쳤을 때는 알았는데 덮은 뒤에 아마득해진다면 그건 죽은 독서이다.
김창흡(1653~1722) 삼연집

나는 살아있는 독서를 하고 있는 것인가? 문득 궁금해졌다. 대답을 하고 싶은데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책을 읽는다는 것을 단순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책을 읽고 난 후 생각이나 행동에서 약간의 변화가 생겼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독서는 책을 덮으면서 비로소 시작됩니다. 독서의 참맛은 읽는 책의 많고 적음이나 읽는 속도의 빠르고 느림이 아니라, 활자 위에서 눈길을 거두어 고개 들어 한 번 생각하고, 책을 덮고 그 이치를 되씹으며 의심하는데 있습니다.

독서의 의미와 중요성을 되새겨보게 된 문장들이다.

글을 읽으면서 글을 쓰는 사람들에 대해 궁금해질 때가 많다.
하루에 얼마만큼의 글을 쓰고 어디서 발상을 얻으며 얼마의 열정과 시간을 들여야 할까?
<풋>을 통해 알게 된 김언 시인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돈다.
시를 쓰는 빈도(?)에 대한 질문에 시인은 대답한다.
‘시간이 많은 편이었으니까 무조건 1년에 4, 50편씩은 썼던 것 같다’고.
“잡문을 아무리 많이 쓴다고 해도 출퇴근하는 시간에는 비할 게 아니더라고요. 해보니까 느끼겠어. 안 될 때도 쓰고 있고, 잘 될 때도 쓰고 있고, 안될 때 써놨던 것도 낭비가 아닌 것 같아요. 2군이 튼튼해야 할 것 같아, 2군이.
올해는 출퇴근하면서 대여섯 편 밖에 못 썼어요. 그동안 재고로 버티고 있는데, 재고 떨어지고 나면 어떻게 될 지 알 수가 없죠. “
끊임없이 쓰는 것을 반복한다는 시인의 이야기 속에서 독서의 의미를 헤아려 본다.
곁에 책을 두고 항상 마주 하는 것이야 말로, 독서의 참맛을 이해하고 살아있는 독서를 하기 위한 지름길 인 것만 같다.

청소년 잡지 <풋>.
표지 속, 누군가 청소해 놓은 것만 같은 청량한 하늘 아래 말라가는 빨래처럼 <풋>을 통해 묵은 떼가 빠지고 상쾌해진 기분이다.
앞으로도 <풋>속에 담긴 글들이 계속 ‘맑음’ 상태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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