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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깨알같은 글자가 떡하니 펼쳐진 방대한 양의 내용...
책편력이 심한 나는 베스트셀러로 손꼽히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앞에서 어찌해야 좋을지 난감한 상태였다. 막상 뭔가에 이끌리듯 집어 든 책 한권이 이렇게 나의 머리를 어질어놓게 될 줄은 감히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었다.
나는 이 책이 부자가 되는 법을 쭉 나열한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호기롭게 읽어보겠다고 마음 먹게 됐지만.
내가 아는 부자가 되는 방법은 '안쓰고 열심히 저축해야 한다'가 전부이기에 특별히 자본주의란 단어에 귀 기울여보지 못했던 것 같다.
아는 것이 없고 관심을 두지 못했지만 그리 넋놓고 방관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방법이 아님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고 이해하게 됐다.
책은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일들에 대해 '왜'라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미안하게도 나는 가난한 나라가 빈곤한 상태를 지속하는 것은 그 곳에서 터를 이루고 살아가는 가난한 이들의 몫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극빈곤층에 의해 평균 국민소득이 낮아진다는 산술적인 계산에 의해 나오는 오류였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은 빈곤층에 의해서가 아닌 그 나라의 부자들 때문이라고, 책은 전한다.
왜일까?
p.55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 나라의 동일 직종 종사자들과 붙여 놓아도 지지 않는다. 정작 자기 몫을 하지 못하는 것은 가난한 나라의 부자들이다. 상대적으로 낮은 그들의 생산성 때문에 나라가 가난하다는 말이다.
인도에 비해 임금 수준이 50배인 스웨덴 사람들의 경쟁력은 사회 최고층들의 지속적인 연구와 발전을 거듭하는 생산성 때문이라는 거다.
아, 그렇구나. 그럼 가난한 나라가 계속 가난한 것도 어쩌면 뭔가에 옥죄여서는 아닐까? 무지한 내가 이런 생각을 품게 된 것은 책 덕분이지만 여전히 자.본.주.의 라는 단어는 낯설기만 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를 꼽자면 0.1초의 망설임 없이 미국을 꼽는다. 하지만 미국 달러를 기준으로 할 때 노르웨이, 룩셈부르크, 스위스, 덴마크,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스웨덴 순으로 7개 나라가 미국보다 1인당 국민 소득이 더 높다고 한다. 그런데도 왜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 세계의 중심선 상에 있다고 여기게 되는 것일까?
또한 왜 같은 양의 돈인데 나라마다 살 수 있는 제품이 다르고 서비스에 질적이나 양적인 차이를 나게 하는 것일지 의문을 품게됐다.
책은 이런 차이에 대해 근본적으로 시장 환율이라는 것이 주로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 공급만을 반영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각 나라의 소득을 국제 달러로 환산해 보면 잘사는 나라의 소득은 시장 환율로 계산한 소득보다 더 낮아지는 반면에 가난한 나라의 소득은 더 높아진다고.
우리가 소비하는 것들 중 많은 부분이 서비스이고, 잘사는 나라에서는 서비스가 상대적으로 비싸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약간의 공부와 이해가 필요했지만 개인과 개인을 넘어선 나라와 나라간의 부와 빈곤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볼 수 있게 했다.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나쁜 시스템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목소리 속에서 변화의 꿈을 꾸고 흔하게만 들리던 평등이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질적 부를 중요시하 되 유일한 목표가 되지 않는 경제 시스템을 개발 해야 한다는 책의 마무리에서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된 것만 같았다.
책 속 여덟가지 원칙 속에서 새로운 시도에 대한 해답이 나올 수 있기를, 누구나 다 자신의 존엄한 권리를 행사하며 삶을 영위해나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