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내 우리에게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주었던 아름드리 나무의 무성하던 푸른 잎이 어느덧 누렇게 변하고 찬바람에 맥없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세월의 흐름을 실가하며 나이듦에 뚠금없이 눈물이 핑돈다. 어찌 나이드는 것을 슬퍼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이 나 혼자 뿐이겠는가. 잘 살다 후회없이 떠날 수만 있다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누구에게나 한 번뿐인 인생을 후회하지 않도록 살기란 그리쉽지만은 않은 일 일게다.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에 이은 저자의 두 번째 이야기 ‘감동을 남기고 떠난 열두 사람'은 이 세상에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열두 명의 마지막 모습을 담담히 그리고 있다. 그들의 사연은 어찌보면 그리 특별하지도 눈물겹지도 않다. 그저 매일의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서 떠나보내는 우리의 모습이다. 하지만 평범한 그들에게 무엇이 있기에 편안한 영혼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었을까.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도 단 한 번도 고통을 호소하지 않고 오히려 고통의 반대편에 서 있는 듯, 마치 이 세상 모든 번뇌를 초월한 듯 아주 편안해 보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상태가 안좋은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표정으로 아무 일 없다는 듯“오늘도 괜찮습니다.”라고 답하는 불굴의 인내력과 정신력을 보이던 환자, 마지막 순간까지 삶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자신만의 색깔을 간직하고 어느 귀부인보다 더 우아하고 아름다운 빛을 발하던 사람, 고통의 순간에도 행복하다 말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입술을 간직한 사람, 젊은 날 교만했으나 낮은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던 사람.
마지막 순간까지 묵묵히 남을 돌보며 기뻐하던 사람이나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도 공인으로의 모습을 잃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던 사람, 자살미수로 두번째 삶을 살게되 생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 행복하던 남자. 평생 아픈 사람을 돌보다 정작 자신의 몸은 돌보지 못하고 육신은 허물만 남았음에도 여전히 간호사로 쌓은 지혜를 전하고자 한 아름다운 노간호사의 모습에서 끝내 꾹꾹 참았던 눈물이 흐른다. 한 번 나온 눈물이 자꾸만 멈추질 않는다.
“이거 보세요. 여기 또 혈관이 보이네요.”
A는 변함없이 미소를 짓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 내가 찌른 그 곳이 적소가 아님을 알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를 믿었던 것일까. 아니면 선배로서 가르침을 주고 싶었던 것일까. 분명 후자일 것이다.
“정말 죄송합니다.”
“선생님, 미안해하지 마세요. 의사 선생님은 환자한테 너무 미안해해도 안 돼요. 아, 여기 괜찮을 것 같은데!”
(p. 158)
인생의 힘든 여정을 모두 감내하고 꿋꿋이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해 살며 잊을 수 없는 소소한 추억을 남기고 떠난 사람들. 그들이 남긴 웃음과 커다라 감동을 가슴에 소중히 담으며 그들의 죽음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그들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행복해 보였다. 남은 시간 동안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했고, 행복하고자 했으며 죽음과 맞닥뜨린 생의 끝에서 더 용감했던 그들은 마지막 순간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보내고 있음에 감사했고 생에 기뻐할 줄 알았다. 나 또한 이렇게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사람인 이상 누구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세상에 태어날 때는 순서대로 왔지만 떠날 때는 순서가 따로이 없다는 말처럼 어느 순간 우리에게 죽음이 닥치게 될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승의 삶에 미련이 많은 사람들은 죽음이 두렵다고 회피하고 남의 일인양 등한시하며 죽음과 되도록 멀찍이 떨어져 살고자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기에 이 책의 마지막 열두 번째 감동은 바로 당신의 이야기라며 우리 자신을 위한 공간으로 남겨 놓았다. 생의 남은 시간 동안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선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죽음을 넘어 세상에 감동을 남기는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의 몫이며 그것이 열두 번째 주인공이 되기위한 길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누군가의 기억속에 사랑과 존경의 이름으로 기억되길 바라며 세상 떠나는 날, 최선을 다해 살았노라고,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후회없는 삶을 살았노라고 주저없이 말하고 싶다. 그헣게 살고자 노력하련다.
‘뭔가를 누군가에게 전하자. 뭔가를 세상에 남기자.’
사람은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에게 새기기 위해 살아간다.
이런 생각의 조각들이 모여 미래의 결실을 맺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 간절히 필요한 마음가짐은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남기는 일이 아닐까?
(pp. 23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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