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준
고종석 지음 / 새움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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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의 독고준을 주인공으로 삼은 두 연작 장편 <회색인>과 <서유기>를 읽어 본 적이 없으니 이 소설이 <광장>의 작가 최인훈이 미처 끝내지 못한 ‘독고준 3부작’의 완결판이라는 이야기가 대체 무슨 뜻인지 모를 수 밖에. 이 참에 광장과 함께 두 소설을 읽어 보기로 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회색인이란 실천이성 보다 관념에 몰두하는 경계인이랄 수 있다. 까뮈의 소설속의 이방인의 주인공이 대표적 인물이다. 그의 작품속 주인공인 독고준은 월남민 출신의 국문과 대학생으로 소극적이고 회의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로 전형적인 회색인에 속한다. 그리고 그 회색인의 관념 여행을 최인호는‘서유기’라 불렀다. 4ㆍ19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두 소설이 발표된지 한 참이 지난 이 시점에서 고종석은 왜 굳이 독고준을 부활시켰을까. 두 장편 발표 후 3부작을 완성하지 못하고 병상에 누운 최인훈을 대신해 완성시킨 이야기가 노작가를 향한 오마주라 하기엔 왜지 뚱금없단 생각이 든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죽던 날, 회색인이라 불렸던 소설가 독고준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대체 그의 죽음이 노전대통령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에 호기심에서 시작한 책 읽기가 관련된 서너 권을 더 읽게 만들었다.

이 책은 <독고준> 3부작의 마지막 이야기란 독특한 설정에서 시작하지만 독고준의 자살 후 일 년 뒤, 그의 딸 독고원이 1960년 4ㆍ19혁명에서 시작해 2007년 대통령 선거일까지 47년간 계속된 아버지의 일기를 읽으며 자신의 일상과 겹쳐 과거와 현대를 오가며 두 가지의 이야기기를 덧붙인 형식의 글이다. 일기에는 우리나라 뿐아니라 세계사의 흐름과 굴직한 사건들, 한국사회에 대한 독고준의 관념들과, 문화, 예술, 전반에 걸친 독고준의 해박한 지식과 그가 읽었던 책들에 대한 논평을 싣고 있어 그의 독서일기가 안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는 첫째 딸 원, 이미 두아이를 둔 이혼한 남자의 후처가 된 여동생 선과 그녀의 가족, 가족 중 유일한 기독교인인 어머니의 종교적인 삶과 아버지와의 결혼생활, 교교 동창으로 자신의 동거인이자 드라마 작가인 연희 등 이야기 속인물들은 제각기 아픈 사연 한 두가지는 가슴에 품고 살고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솔직하고 담백하게 아버지의 일기와 교묘히 어울려 이어지고 있다. 독고원은 자살한 아버지의 일기장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본다. 한장 한장 넘기며 역사적 흐름속에 숨겨진 아버지 개인의 느낌을 적은 독백과도 같은 단순한 문장에서 단순한 비망록이 아닌 그 속에 담겨진 마음을 읽는 것이리라.

광주가 무너진 모양이다. 박정희의 죽음이 내게 준 안도감은 너무 일찍 온 것이었다. 좋은 세상은 언제 올 것인가. (1980. 5. 27)


 

 독고준이 고민했던 사회와 그가 추구하던 문학을 들여다 보며 딸은 부녀의 입장에서 때론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료이자 대선배인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집단과 개인, 사회와 시대적 상황에 문학이 처한 현실에 대해 부단히 고민하던 아버지, 그가 주류에 편승하지 못하고 회색인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아버지가 느끼는 삶의 슬픔은 근원적이었으며, 가족들과의 사랑도 그것을 치유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너무 일찍 세상에 나오셨거나 너무 늦게 나오셨다고 그저 담담하게 딸은 말한다. 그 마음에 괜히 코끝이 찡해온다.


고종석 특유의 색체가 물씬 풍기는 이 글은 역사나 사회 문제에 대한 그의 견해와 우리사회에 만연한 개인주의와 신자유주의, 소외된 소수계층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 속에 담담히 풀어 놓는다. 일기속에 언급된 책들도 기회가 된다면 함께 읽어 보면 좋으리라 여겨진다. 


1987년 6월의 거리엔 나도 있었지만, 나는 근본적으로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에 거리를 두고 있었다. 아버지는 1987년 이후의 한국을 좋은 세상이라고 판단했을까? 2007년 12월 19일 이후의 한국은 아버지에게 어떻게 비쳤을까? 아버지의 자살은, 그러니까 아버지의 절망은 정치적인 것이었을까, 아니면 순수하게 실존적인 것이었을까? 알 길이 없다. 아버지는 2007년 12월 19일 이후 일기를 쓰지 않았다.
(p. 113~118) 
자꾸만 곱씹어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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