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안 윈터
대프니 캘로테이 지음, 이진 옮김 / 시작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초등학교 학예회 때 분홍색 타이즈에 나비 날개같은 드레스를 입고 깃털 장식의 관을 쓴 금방이리도 날아갈듯 한 춤사위의 발레반 학생들의 공연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후로 정식 발레단의 공연을 여러차례 보았지만 그 때의 황홀함, 소름돋는 짜릿한 충격과 감동은 경험하지 못했다. 나의 무감각과 발레에 대한 어설픈 상식으로 인해 춤추는 발레리나를 보면 아름다움에 앞서 갸나픈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혹독한 다이어트를 할까, 동작 하나 하나를 몸에 익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 반복적인 연습을 해야만 하는지. 그네들의 체중을 발끝에 싣고 날아갈듯 사뿐히 걷기위해 망가진 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천상의 몸짓을 닮은 가장 아름다운 동작은 아마도 발레리나의 몫임은 틀림 없을 것이다.

 

냉전시대 볼쇼이 발레단의 전설적 프리마 발레리나.화려함 뒤의 그녀의 비그적 삶과 사랑.

이 책은 1950년대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였지만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망명한 전설적인 여인 니나의 이야기이다. 그녀의 화려한 성공과 명성 뒤에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눈물과 회한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음을 고백하는 글이기도하고 자신을 낳아준 생모를 찾고자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스탈린 시대 러시아와 현대의 보스턴을 오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책을 읽으며 발레에 관한 지식과 전문 용어들, 우아한 동작들에 대한 묘사는 처음 발레를 접했을 때의 순수함과 낯섬을 떠올리게 한다.  


 

노년의 나이에 접어든 발레리나 니나 레브스카야가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유명한 보석들을 자선 경매에 내놓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토록 아끼던 보석들을 처분하면서까지 자신과 관련한 기억을 떨쳐버리고 싶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가 보석들을 경매에 내놓았다는 소식에 보스턴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인 그리고리 솔로딘은 평생 동안 간직해온 값비싼 호박 목걸이가 그녀의 보석 세트의 일부라며 기증한다. 양부모를 따라 러시아 국경을 넘은 그는 자신의 부모와 어릴 적 기억에 관한 진실을 알고자 한다. 어떤 연유로 니나의 보석과 한 세트인 희귀한 호박 목걸이를 그가 갖게 되었을까. 궁금증은 커져만 가고...  

 
한편, 경매가 진행되면서 니나는 그녀의 삶의 전부였던 발레와 자유분방하고 매력적인 시인 빅토르와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아름다웠더 한 때를 떠올리며 가슴 아파한다. 누구보다 화려한 과거를 지녔지만 결코 행복하지 못했던 그녀, 불신과 혼란의 스탈린 통치 하에서 그들의 열정과 예술적 감성은 억압과 구속에 시들어 가고, 

사랑은 끊임없이 시험당하며 배우자조차 믿지 못하고 한순간의 오해로 사랑과 신뢰, 가장 소중했던 친구와의 우정마져도 잃게 만들었다. 발레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절망과 회한의 세월을 살아온 그녀, 그토록 잊고자 했던 과거였거늘 이제 그녀는 과거와 만나고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그래서 사랑이 위험한 거야. 인간은 사랑을 위해서 일어서고 사랑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지. 하긴, 자네야말로 누구보다도 잘 알겠군. 러시아는 조국에 대한 사랑 외에는 모든 사랑을 억압했으니까."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의 본래 모습을 되찾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은 인간을 강하게 만들죠. 사랑을 위해서 인간은 때로 미친 짓을 하니까요."
( p.433~434)

치밀한 구성과 섬세한 묘사, 아름다운 언어가 빚어낸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가 급박한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여운을 남긴다. 사랑의 깊이와 신뢰에 대해 생각해 보며, 배신에 절망하고 시련 때문에 가슴 아파할지라도 그 것 또한 사랑였음 깨닫게 된다. 소복이 쌓인 눈이 온 세상을 깨끗하고 환하게 만들고 니나의 조용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들릴듯 하다. 
"모스크바는 눈으로 뒤덮였을 때가 가장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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