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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ㅣ 김영주의 머무는 여행 5
김영주 지음 / 컬처그라퍼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머무는 여행'이라는 책 표지의 작마한 글귀의 의미를 김영주 그녀의 글을 통해 이해하게 되었다. 아니 이해를 넘어 갈망하게끔 되었다. 여행을 다녀와 느낀 감상을 글이나 사진으로 담아낸 여타의 여행서와는 확연한 차이를 드러남은 아마도 머무는 기간 만큼 가까워지기 때문일 게다. 그녀는 한번 맘을 준 곳은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작정하고 무작정 그곳에 머물며 하나 하나 두 발로 딛어보고 눈으로 확인해
왔으며 그런 느낌과 감동들은 고스란히 그녀의 글에 담겨있다. 그런 그녀도 역사와 민초들의 삶을 넉넉한 어머니의 품처럼 감싸 안은 아득하고도 신비로운 '지리산'을 50이 넘어서야 눈여겨 보게되었고 관심을갖게 되었다고 털어 놓는다.
'비행기나 배를 탈 필요도 없었다. 어설픈 외국어를 연습할 일도, 비상용 연락처를 수소문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었다. 자동차를 빌리거나 현지에서 사용할 전화번호를 미리 구해 놓을 이유도 없었다. 짐 가방의 무게가 초과될까 봐, 갑자기 환율이 오를까 봐 전전긍긍할 것도 없었다. 이 모든 수고를 덜어 줄 수 있는 간편한 여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50년 동안 내 나라 지리산에 갈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476번지. '곡전재'라는 한옥 고택에 짐을 풀고 잠시 지나는 여행객이 아닌 지리산의 식구, 구례 주민이 된 것이다.
시골장날 꽃무늬 원피스와 너넉한 인심처럼 풍성하고 편안한 고무줄 바지를 사는 그녀는 영락없는 '구례댁'이고 지리산을 에둘러 묵묵히 흐르는 섬진강을 따라 걷기도하고,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의 너른 들판과 고택들을 바라보며, 차근차근 지리산에 가까이 다가간다. 빡빡한 일정에 벼락치기 관광이 아니라 발길 닫는 곳부터, 고즈넉한 산사, 옛 선조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 둘레길을 걸으며 이곳이 '내 나라, 내 땅'임을 실감하며 비로소 지리산의 너른 품에 안김을. 구경꾼이 아닌 이 아름다운 산천의 주인임을 깨닫게 된다.
지리산은 사람에게 쉽사리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곁으로 바라본 지리산, 언저리를 맴도는 것에 만족할 그녀였다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으리. 끝도 보이지 않는 깊고 험한 지리산을 북한산 몇번 오른 경험이 전부인 왕초보 그녀가 겁도없이 오르려 한다. 일기조차 고르지 않은 빗속을 뚫고 발에 물집이 잡혔다 저절로 터지기를 반복하며 한 발짝씩 힘겹게 다가가는 그녀에게 지리산은 운무 사이로 숨겼던 천왕봉을 드려내 보인다. 청왕봉 꼭대기에 올랐을 때 가슴벅찬 그녀의 저릿한 감동이 고스란히 온몸므로 느껴진다. 나 또한 칠순을 바라보는 엄마와 봉우리를 올랐던 감동을 잊을 수 없는 건 세포 하나 하나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음이다. 당신의 마지막 등반임을 아시는 엄마도 눈시울 붉히시며 오래도록 지리산을 굽어 보시며 마음메 담으시던 모습에 잘 왔다. 참으로 자알 왔구나 생각 했더랬다. 이 세상은 이토록 넓고 아름다운 곳이며 하늘은 지금껏 그녀가 보아왔던 하늘이 아님을 지천명의 나이의 그녀가 알게 되었을 게다. 지리산은 바로 그런 곳이리라. 단순한 산봉우리가 아닌 모든 이가 우러르고 사랑하는 어머니 같은 땅.
성삼재ㆍ피아골ㆍ뱀사골ㆍ노고단ㆍ천왕봉ㆍ반야봉ㆍ촛대봉 등의 지리산의 이름난 명소들과 천 년 사찰들을 만났으며 꿈같던 지리산 종주. 불펴한 생할을 감수하며 묵무히 종가를 지키는 사람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국시모), 평생을 지리산 자락에서 살아온 산사나이들,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한 간디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자연이 곧 스승이며 벗이리라. 지리산만 찍는 사진가,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은 산장 부부, 앞만 보고 바쁘게 달려왔던 이들이 지리산의 품에 안겨서야 비로소 느리고 낮게 사는 법을 배우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이 땅을 지키기며 살고 있다. 편리함과 문명의 혜택을 포기하고 지린이 지리산이 좋아 산자락에 둥지를 틀고 삶의 터전을 이루며 사는 이들에게 지리산은 그저 바라만 봐도 힘이되는 존재, 삶의 일부일 것이다.
불혹을 지나 지천명, 이미 인생에서 알아야 할 것은 다 알아 버렸다고 생각했던 나이에 김영주, 그녀는 다 살아 보기 전까지 그 누구도 삶을 예측할 수 없는게 인생임을 깨닫게 된다. 그녀로하여 지리산의 또다른 모습을 알게 되었다. 그 속에선 지리산을 닮아가는 선한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천왕봉 저상이 아니더래도 엄마와 딸아이와 3대가 나란히 지리산 자락을 밟고 싶다. 두러누런 이야기 나눠가며 둘레길을 걸어도 좋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