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목재로 지은 집들이 야트막한 담을 맞대고 줄지어 늘어선 우리 동네엔 쥐들이 참 많았다. 오죽했으면 방학숙제로 쥐약이나 쥐덫을 이용해 잡은 쥐들의 꼬리를 셈해 가져오게 했을까. 쥐로 인해 자연스레 집집마다 고양이 한 두 마리씩은 키우게 되고 고양이를 볼 때마다 자꾸만 흉물스런 쥐의 주검이 겹쳐 고양이도 쥐도 싫어한다. 황인숙 시인의 유별난 고양이 사랑과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곁들인 책에서 자신이 기르는 고양이 뿐아니라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측은히 여기며 춥거나 비라도 오는 날이면 오매불망한 고양이들 걱정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모처럼 장시간 외출을 할라치면 고양이들 밥부터 챙기는 그녀다.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까맣게 잊고 지냈던 할머니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우리 할머닌 온 동네를 통털어 제일 마음씩 곱고 인물 또한 좋으셨다. 어렴픗한 기억속에 할머닌 늘 고운 한복차림에 웃는 모습뿐이다. 음식은 함부로 버리면 벌받는다고. 마루밑에 먹다 남은 밥을 찌꺼기를 가져다 놓으시며 쥐라도 먹으라고 하신 할머니. 과거 해방촌이라 불렸던 곳이 아마도 어릴적 동네모습과도 흡사하다. 가난하지만 이웃간에 정이 오가고 서로 웃으며 인사하는 사람냄새 나는곳. 그곳 이야기와 감명 깊게 읽던 책의 한 구절을 소개하고 있다.
요즘 애완동물을 키울라치면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미용에 먹이며 간식에 철따라 유행하는 옷도 구입하려면 상상을 초월한다. 그녀의 남다른 고양이 사랑을 보고 한 친구는 ‘세상에 불쌍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여력이 있으면 그런 사람들에게 눈을 돌려야 마땅하다’고 강변한다. 여지껏 내가 품고있던 생각을 친구의 입을 빌어 말한것 같아 속이 다 후련다. 허나 그 말에 시인은 ‘그런데 친구야, 이걸 말하고 싶어. 가령 잡지에서 매월 2만 원이면 지구촌 오지의 어린이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안내를 보고 후원신청서를 보낼 확률은,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높을 것이라는 것. 이 역시 고양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고양이한테도 돈을 쓰는데 사람한테 안 쓴다는 건 엄청난 가책을 받게 되는 일이거든.’ 이라고 말한다.
곰곰히 반추해 보니 동.식물사랑하는 사람치고 악한 사람 없으며 어려운 사람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말 그대로 그녀의 말이 백번 옳다.그녀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그녀느 왜 굳이 예쁘고 앙증맞은 만화속 케릭터 같은 외국산 고급 고양이가 아니라 그 흔한 거리고양이를 키우는지, 길가에 세워진 자동차 밑에서 밤잠을 자고, 먹을 것을 찾기위해 거리를 배회하고, 사나운 사람들의 폭력과 굳은 날씨에 불안해 떠는 지저분한 길고양이를 사랑하는지, 게다가 영양가 없어 보이는 그녀와 같은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 활동에 밤잠과 바꾸고 고양이 먹이를 싼값에 사기위해 먼거리를 마다 안고 갔다오는 지극정성,춘겨울 잘 지내고 씩씩하고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난 고양이를 보고 참으로 뿌듯해하는 그녀에게서 정말 고양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이 글을 읽다 보면, 아름다운 미사여구나 글 솜씨를 자랑하듯 감동적이거나 가슴 뭉클한 글귀 한 줄 없어도 단순하고 솔직함이 미덕이다. 정직하다 못해 그녀의 일상이 적나라하게 들여다 보인다. 때론 궁상맞은 살림이며 외로움도, 나이듦의 걱정도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 시인도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며 같은 고민을 하는구나란 사실에서 잠시나마 위안을 얻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직도 살만하며 외롭지 않은 까닭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지청구을 들으면서도 몰래 배곯을 길고양이들을 위해 먹이를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고, 돈이 없는 친구에게 오히려 그런 친구의 자존심을 지켜주며 아무렇지도 않게 은행돈 대신 내 돈쓰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고, 지하철 계단춤 낯선 노숙자를 걱정하는 사람이있기 때문일 게다. 비오는 소리를 좋아하던 그녀가 고양이가 걱정되 비오는 날의 고즈넉한 낭만을 서슴없이 포기하게 되었고 길가에 세워진 차랼마저 고양이의 피난처가 되기에 보행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되려 고맙게 생각하다. 살아있는 것에 관한 애정과 배려, 타인에 대한 관심, 작은 것의 소중함이 책을 읽는 내내 고스란히 전달되 마음이 따뜻해 진다. 삶을 사랑하고 매 순간에 감사하는 그녀의 마음이 전해져 온다.
책에 삽입된 귀여운 고양이 그림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단순하면서도 아기자기한 펜화같은 삽화들이 친환경 재생지로 제작된 책의 질감과 어울려 푸근한 느낌을 자아낸다. . 일러스트가 인쇄된 예쁜 재생상자 안에 들어 있는 책 '해방촌 고양이'. 종이로 그린 인형 옷을 소중히 넣어 두려고 고이 접어 만든 옷장과 같은 모양의 상자는 그녀에게 덤으로 받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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