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윽고 물건을 빼내는 긴장감이 나를 더욱 매혹시켰다. 타인의 물건에 내 손가락이 닿는 순간의 긴장과 그 위에 찾아오는 따끈하고도 확실한 온도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 영역으로 뻗쳐진 내 손가락, 위화감 따위는 죄다 지워버리는 내 손가락 끝의 살갗에 내달리는 쾌락을!”
   -본문 중-

이 책의 주인공 니시무라의 직업은 '쓰리'란 제목과도 같은 소매치기다. 도쿄를 무대로 주로 부유한 사람들의 지갑을 훔치는 그는 천재적인 솜씨를 지녔다. 그는 타겟으로 찍은 사람들의 주머니로 손가락을 뻗쳐 그 끝으로 느껴지는 무게감, 쾌락, 긴박감과 스릴을 즐긴다. 소매치기의 순간과 심리를 이토록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눈앞에서 순식간에 벌어지는 소매치기 모습을 보는 것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만드는 작가의 묘사는 읽는 내게도 소름이 돋게 만든다.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지하철 안이나 부유한 계층들이 많이 모이는 클래식 공연장에서, 혼잡한 장소에서 그는 타인의 주머니에서 지갑을 훔친다. 그에겐 죄의식도 거리낌도 순간의 감정도 없다. 그저 버릇처럼 손가락 사이에 누군가의 지갑이 끼워지는 순간의 짜릿함이 온뭄으로 느껴지는 전율의 순간을 즐길 뿐이다. 

 

몇 년 전, 의문의 사내로부터 임무를 부탁받고 일을 끝낸 후 같이 일했던 친구는 소식이 두절되었고 그 역시 도쿄를 떠났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도쿄. 

어느날, 니시무라는 어떤 남자의 지갑을 낚아챈 순간 선글라스를 낀 무표정한 얼굴, 목에 난 상흔이 같이 일하던 친구들과 함께 벗어날 수 없는 올가미처럼 임무맡겼던 '기자키'가 바로 그라는 것을 알았다. 기자키는 니시무라의 운명을 쥐고 절대적인 운명의 지배자가 된다. 그는 니시무라에게 세 가지 임무를 제안한다. 자신과 그가 알던 소매치기 모자의 목숨까지 담보로 한 거절할 수 없는 제안. 니시무라는 어쩔 수 없이 한가지씩 임무를 수행해 나간다.


“타인의 인생을 책상 위에서 규정해 나간다. 타인 위에 그렇게 군림한다는 건 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만일 신이 있다면 이 세계를 가장 유쾌하게 음미하고 있는 건 신이다. 나는 수많은 타인들의 인생을 조종하면서 이따금 그 인간과 동화되는 듯한 기분이 들어. 그들이 생각하고 느낀 것이 내 속에 고스란히 들어오는 일이 있어. 여러 인간의 감정이 동시에 침입해 들어오는 상태. 너는 그런 건 맛본 일이 없으니 잘 모르겠지. 다양한 쾌락 중에서도 그게 최상의 쾌락이야. 자, 똑똑히 들어.”
 

운명이란 무엇일까? 누군가에 의해 타인의 인생이 좌지우지될 수 있을까? 타인의 운명을 지배하는 것이 가장 큰 쾌락이라는 기자키. 과연 니시무라의 운명은 그의 뜻에 따라 결정지어질 것인지.

 

니시무라가 어렸을적 보았던 어렴픗한 탑의 영상을 통해 작가는 인간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원하게 되는 어떤 것, 인간의 운명이나 세상에 관여하는 초월적 존재를 암시하고 있다. 소매치기 기술로 돈 걱정도 없이 세상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사는 니시무라는 어릴적 가난으로부터 먹을 것을 훔치던 그때부터 희미한 탑의 존재를 떠올린다. 잡을 수 없지만 늘 같은 거리만큼에 서있는 탑. 그는 자유롭고자 했지만 늘 운명에 얽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자신이 절대 악의 화신인 듯 계획적이고 완벽한 범죄를 자랑하는 범죄를 예술적차원으로 생각하는 한 남자에 의해 운명을 지배자 당하게 된다.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상황에서 운명에 저항하는 소매치기 니시무라. 운명의 지배자 기자키.


평범하게 살기를 바랐지만 사회는 그를 일회용 소모품 처럼 이용하고 버리고 만다. 니시무라의 모습에서 어렵지않게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의 모습을 떠올린다. 밑바닥 인생, 그들의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현대인들의 고독을 발견하게 되는건 왜일까? 이글을 다 읽었어도 니시무라이 운명은 아직도 끝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가 새로운 인생을 살기를 바란다. 그의 의지대로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 보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