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내내 인간답다 것의 기준은 무엇이며 흔히들 말하는 개같은 인간이란 무슨 근거로 한 이야긴지, 세상에는 개만도 못한 인간들도 많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평소에도 개라는 말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고상한 척 하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다만 인간같지 않은 사람들을 싸잡아 이야기할때 흔히들 사용하는 욕이기에 가급적 입에 담지 않을 뿐이다. 이 책을 읽고 카프카의 ;변신'이 떠오르는건 어절수 없는 일이다. 자다 일어나 보니 벌레로 변한 한 남자의 이야기나 개가 어느 순간 인간으로 변한 이야기'나는 개입니까'는 모두 변신한 주인공을 통해 인간성을 고발하고 인간세계를 인간이 아닌제 삼자자의 눈을 통해 바라보고 실랄한 비판도 서슴치 않는다. 이 작품의 인공은 개다. 아니 사람으로 변한 개를 인간이라 해야하나 여전히 개의 본성을 지녔으니 개라고 보아야 하나? 여전히 헷갈린다. 아무튼 지하배수로에 사는 개들(한 가족)중 막내인 나는 할아버지의 유언과도 같은 '창구'를 보고 싶다던 말로 인해 창구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되고 창구의 존재가 인간세상으로 통하는 문, 즉 맨홀뚜껑임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아들을 인간세상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폭력까지 동원하며 막아 보지만 아직은 철없고 어린 아들은 아버지의 충고나 폭력보다는 호기심이 더 강한 것을 어쩔 수 없는가 보다. 그는 우연히 만난 연분홍 지렁이의 도움으로 인간세상에으로 가게되고 창구 밖으로 나간 순간 그는 인간 소년의 모습으로 변한다. 인간세상의 새로움과 신기함은 잠시뿐 배고픔과 냉혹한 현실과 맞딱뜨리게 된다. 그는 인간으로 변했지만 개의 본성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돼지갈비를 좋아하고 달리기를 잘한다. 개들이 그러하듯 신뢰를 주는 사람들에겐 친절하고 다정하지만 그렇지 못한 인간들에겐 적대감을 드러내고 때론 엉덩이를 물어뜯기도 한다. 점차 인간세상에 익숙해진 그는 세명의 다른 고아들과 그들을 돌보는 엄마와 함께 살게 되고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에도 가게 된다. 잘못한 일도 없는데 사과해야하고 불의를 뻔히 알면서도 눈감아야하고 성적만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선생님들을 보며 그는 이해할 수없다 그는 여전히 개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에 당연한 일일게다. 개의 눈에 비친 인간들은 그가 기대했던것과는 달리 아름답지도 신기하거나 따뜩하지도 않다. 오히려 그런 모습을 보며 집에 두고온 가족들 생각만이 절실할 뿐이다. 그가 가족을 버리고 그토록 인간세상에 오고자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개에게 일년과도 같은 인간세상의 힌달과 맞바꿔 인간들 조차 관심에서 멀어진 순수함을 같이사는 고아소녀의 눈속에서 보게 된다. 그것은 인간의 잃어버린 감정 '순수한 동경' 바로 그것이였다. "그 눈빛에는 나 자신이 인간 세계로 온 것을 영원히 후회하지 않게 만드는 무엇이 있었다"라는 말이 순수함을 지닌 인간보다 더 순수한 개가 인긴이길 바랬던 이유이기도 하다. 연분홍 지렁이는 자신의 삶까지 그에게 주고 떠난다. 과연 연분홍 지렁이의 삶까지 그는 살아낼 수 있을까. 모진 세상에 괴로워하다 죽은 누나나 사람들의 손에 가죽이 벗겨진 아버지의 고통까지 짊어진 소년이 감당하기엔 너무도 무거운 짊을 지고 외로이 홀로 떠나는 그의 뒷모습이 내 안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당당히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난 발걸음에 힘을 싣어 가족들의 몫과 친구의 몫까지 부디 행복하길 바란다. 이제 그는 정말 인간이 되어가는가보다.어두운면도 밝음도 모두 받아들이며 그래도 인간이 되어서 행복했노라 한 마디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