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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딩씨 마을의 꿈'은 현실과 꿈을 오가며 한 마을을 중심으로 비 위생적인 헌혈 바늘 사용으로 에이즈에 집단 감염된 사실을 소재로 하고있다.
상부의 주도하에 정책적으로 인민들에게 매혈을 적극 권장하고 매혈이 곧 애국이자 잘 사는 지름길임을 널리 홍보하는 한편 실적이 좋은 마을을 모범마을로 지정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홍보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예전에 새마을 운동 시범마을로 지정하여 초가집들은 모두 헐어 버리고 번듯한 기와집을 짖고 마을 길도 넓혀 잘 사는 마을임을 대대적으로 광고하듯 그곳의 생활상은 우리네 60년대 모습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듯 하다. 잘 살기위한 방법이 우리의 새마을운동이 아닌 매형이라는 것이 서로 다를뿐. 매혈로 인해 부를 얻을 수 있고 피는 마르지 않는 샘과도 같다고 언제든 몸안에서 다시 생성되기에 피를 팔면 팔수록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말로 인민들을 현혹하며 관에서 발벗고 매혈을 장려하였다.
딩씨 마을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의 피와 양식을 바꾸기도하고 피를 팔아 번듯한 집 한칸을 마련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타인의 피를 팔아 부를 축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결가가 발생하였으니 열병, 즉 에이즈란 불치병이 온 마을을 순식간에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엇다.이미 열병임이판명된사람들은 마을의 유일한 학교에 모여 집단 생활을 하며 가족으로부 격리되어 하루하루 목숨을 이어가고, 피를 판 사람들은 언제 자신이 열병에 걸리게 될지 모를 상황에 전전긍긍 애태우고, 어떤 이는 피를 팔지 않았는데도 피를 판 이들과 같은 병에 걸려 사망하기도 한다. 멀쩡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아내가 남편이 아들, 딸이 부모가 열병에 걸렸기에 마을에서 열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는 단 한사람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야기의 배경인 딩씨마을은 같은 성의 사람들이 한 마을을 이루며 사는 집성촌의 성격을 띄고 있기에 더욱 심각할 수 밖에 없다.
매혈 운동을 적극 장려하던 상부는 그로 인해 병을 얻은 인민들을 돌보기는 커녕 외면하고 더 이상 사용가치가 없어진 물건처럼 폐기되듯 사람들도 한 명씩 죽어간다. 그 와중에도 타인의 피를 팔아 부를 축적한 매혈 우두머리는 더이상 꿈도 희망도 없이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그들을 철저히 이용한다. 이제 딩씨 마을에서 죽음이란 흔한 일상이 되었고 한 사람의 죽음이 아무런 충격도 주지 못하는 일이 되었다. 사람의 목숨 값이 과연 얼마나 할까, 한 사람의 일생을 천길 나락으로 끌어내린 댓가는 과연 무엇일까.
“왜 피를 팔았어요?”
“샴푸를 한 병 사고 싶었어요.” -본문중에서
아무 생각없이 삼푸로 감은 이웃 여인의 고운 머릿결이 탐나서 그저 삼푸 한 병 사고 싶었을 뿐이라던 에이즈에 걸린 평범한 여인의 말이다. 그녀는 삼푸 한 병에 인생을 저당 잡히고 다른이들은 한 끼 밥에, 몇푼 돈에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불치 병자가 되었다.
피를 팔아 돈을 버는 현실과 꿈 사이를 판타지란 형식을 빌어 이야기한다. 이야기의 화자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매혈 우두머리인 아버지로 인해 죽임을 당한 소년이 마을에 일어난 사건들을 그의 시선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준다. 섬뜩하리만치 상세하고 날카롭게 펼쳐지는 그의 이야기는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의 전설을 듣는 것과도 같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인간성이 말살되어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너무도 사실적이기에 가슴이 먹먹해 져 온다. 돈을 받고 피를 판 결과 에이즈에 한 마을 전체가 서서히 무너져가는 끔찍하고 처참한 이야기.
가늘고 긴 섬세한 명주 실 가닥처럼 섬세하고 위대한 생명과 연약함, 끝없은 인간의 탐욕과 그에 반한 양심의 목소리, 오늘이 있을뿐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인간들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과 그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한줄기 빛과도 같은 사랑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들려주고자 했을까. 중국 작가가 쓴 글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날카롭고 강한 사회비판이 담겨있고 사회 하층민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 애잔하다.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추악한 인간성에 직면하게 된 한 마을. 어리석고 우매하여 속고만 사는 불쌍한 농민들, 하지만 그들도 인간이기에 마지막 순간까지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아름답길 원하고 행복하길 바랐으며 죽어서도 한조각 명애를 갈구한다. 그것이 이상하리만치 처절한 핏빛 이야기를 끝까지 손에서 놓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며 편치 않은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단숨에 읽게한 이유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