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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기
서영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가 서영은을 먼 그대'를 통해 처음 만나게 되었고 그후 그녀가 소설가 김동리와 30년이라는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결혼했던 김동리의 세번째 아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를 이상문학상 수상자하며 여성작가로 만난 것이다. 김동리의 그늘을 벗어나 문단에 이름을 알리게 된 그녀는 지금껏 쌓아온 것을 미련 없이 놓아버리기위해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녀 나이 66세, 남들은 맘편히 지내기를 희망하는 나이에 사회적 명사라로 각종 심사위원이란 명애로운 지위도 마다하고 불현듯 '작가로서의 길'에서 멀찌감치 벗어나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자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다.
각자 다른 이유로 산티아고 성지로 향하는 고행의 길을 걷고 있지만 그들이 가는 길에는 어김없이 앞서 간 순례자들이 그려놓은 노란 화살표가 사람들을 안내한다.
이 노란 화살표와 크리덴셜 카드는 순레자들의 상징이 되었고 이 카드에 자신들이 왔다가노라 확인 도장을 찍으며 이동하는 순례자. 그길에서 그들은 무엇을 확인하고 무엇을 얻었으며 무엇을 버렸을까.
서영은은 서울서부터 그의 안내자임을 자칭하는 손위 제자인 치타와 동행하게 된다. 그에게 길잡이가 되어주고, 때로 너무 사치스럽다고 순례자의 기본 자세조차 되어 있지 않다는 비난도 서슴치 않는 치타로 인해 속상해 하기도 하며 마음고생을 한다. 그러나 길 끄트머리에서 그는 치타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 길을 걷다 만난 사람들에게 그가‘머슴애’처럼 보이는 것조차 싫어 끝없이 그를 관찰하고 돌보며 잔소리,쓴소리 한것, 그건 사랑이였음을. 그녀가 자신을 진정 '자랑하고 싶은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모든 짐을 벗어 버리기위해 떠나온 길, 그 길에서 진정 홀로 임을 느꼈으나, 빗속에 길을 잃고 헤멜 때 불현듯 나타나는 방향을 알려주던 화살표, 때로 노란 화살표를 찾지 못해 길을 잃기도 하고, 며칠 동안 앓기도 하지만, 그는 결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힘겹게 내딛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마침내 그를 산티아고 성지로 이끌고 그 곳에서 뒤돌아 본 길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다. 지나온 길이 아름다웠음을 깨닫게 되고 감사하게 된다.
길을 걷다보면 한 걸음 이전과 한 걸음 이후가 ‘변화’ 그 자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걷는다는 것은 움직이는 세상을, 움직이며 느낀다는 것이다. 멀리 있어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풍경을, 앞으로 끌어당겨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사물로 바꾸는 것이다.
순례자는 자기 삶이 속해 있던 ‘내 것’의 축에서, 걷는다는 지극히 반문명적인 방법으로, ‘내 것’ 밖의 축을 향해 이동해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이동을 이끄는 것이 화살표이고, 그 화살표는 성지 산티아고에서 끝난다. -본문중-
걸으며 그를 옭아매고 아프게 했던 인연들을 떠올리고 그 기억들마저 미련 없이 길 끝에 놓아 버린다. 서른 살 연상의 남편, 우리 문단의 거목으로 불리던 김동리. 30살의 나이 차이 만큼이나 많은 장벽을 넘어 김동리의 세번째 아내가 되어 함께 산지 채 삼 년이 못 되어 투병생활 하다 사망한 김동리. 쉽사리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사람에게 곁을 주지 않는 것도 남편 김동리가 그에게 남긴 유산이라며 산티아고 길 위에서 그와의 사랑과 아내로서의 삶, 그와의 인연의 끈을 풀어 놓고 그는 서울로 돌아와,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김동리의 유품과 그가 남긴 문학자료들을 모두 기증했다.
그는 순례길 위에서 기적처럼 신의 사자와 맞닥뜨리는 경험을 하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서은영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를 변화시킨 초월적 존재와의 만남으로 인한 기쁨을 여러사람들과 같이 나누고 싶다며 그가 지나온 길마다 등불처럼 놓여 있던 노란 화살표의 궤적을 따라 이 책을 썼다. 그 길 위에서 노란 화살표가 여전히 순례자들의 이정표가 되어주리라. 인생이라는 길을 홀로 걷는 모든 이는 순례자다. 노란 화살표는 비단 산티아고 가는 길에만 있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일상 속에서 절망하거니 좌절할 때마다 내앞에 길을 안내하는 보이지 않는 화살표의 힘을 느낀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후에야 비로소 차오르는 기쁨을 맛볼 수 있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만이 빛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듯, 길을 잃어 본 자만의 느낌과 절망의 끝에서 길을 인도하는 삶의 이정표와도 같은 힘을 만나게 되는 잔잔한 감동을 서영은의 글을 통해 우리도 함께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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