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화를 그리는 화가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 / 시공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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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 절벽 위의 망루에서 주인공 두사람이 각자의 지나온 일들을 3일동안 나누는 대화 형식의 독특한 이 이야기는 다소 지루할거란 예상과는 달리 낭만적이고 우아한 박물관이나 고대도시를 배경으로 감상에 젖기도하고 한 순간의 진실을 카메라에 담고자 포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와 시체들이 널부런진 핏빛 도시들을 넘나들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중해 작은 마을의 해안가 절벽 망루에서 전직종군기자이자 사진작가인 파울케스가 카메라 대신 붓을 들고 망루 내벽에 거대한 전쟁화를 그리며 살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때론 근처를 산책하는 반복된 일상을 보내던 중 낯선 남자가 그를 찾아온다. 남자의 시선과 맞딱뜨린 파울케스는 두 남자의 만남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예감하게 되고, 수많은 전쟁 중 한순간을 찍었던 그의 사진속의 주인공이였던 남자, 남자가 10여 년간 그를 추적한 끝에 마주하게 된 것이다. 대체 이 두남자에게 무슨일이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와있는 걸까?. 그토록 자신을 찾아다닌 이유를 묻는 그에게 “당신을 죽이려고요.”남자는 간단히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파울케스를 죽이기에 앞서 그가 자신의 사진에 대해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사실들이 있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 장의 사진이 한 남자와 그의 가족이 맞게 된 참담한 비극의 출발점이였으며 파울케스를 찾아 복수를 하기위해 갖은 고생도 마다않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노라는 남자의 말에 그가 30년 동안 목격해온, 그리고 그의 사진에 담기게 된 다른 사건들에 비해 별반 다르지 않던 한 장의 사진이 남자에게 비극을 몰고올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리라 말할 뿐, 파울케스는 남자를 경찰에 신고하거나 그와 싸울 생각도 도망갈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를 죽이겠다는 남자와 마주 앉아 서로의 생각과 관점, 지나온 이야기들을 마치 오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담담하게 한다. 파울케스는 그가 사진을 찍으며  카메라렌즈 너머의 피사체들을 아무 느낌없이 바라본다고 그래야만 오롯이 찍는 이의 감정이 배제된 그대로의 모습을 담을 수 있노라 답한다. 죽는 순간까지 사랑한 유일한 여인 올비도가 그를 사랑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남자가 꺼내 놓은 파울케스의 낡은 사진첩의 사진들을 통해 소말리아 내전, 레바논, 걸프 만, 구 유고슬라비아에서의 인종청소 이르기까지 죽음을 목전에 둔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과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진으로 찰라의 순간을 찍으며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담기위해 평생을 전쟁터를 누비던 파울케스, 그러나 그는 지금 어째서 카메라대신 붓을 잡고 전쟁터대신 전쟁화를 선택하게 된 것인가? 사랑했던 여인 올비도가 죽는 순간에도 셔터를 눌렀던 그는사진속에서 무엇을 발견했으며 그 사진만을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남자는 파울케스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왜? 왜? 왜? 그리고  질문들에 담담히 대답하는 파울케스, 나 또한 묻고 싶은게 많다. 그가 하필이면 무너져가는 망루의 벽에 전쟁화를 그리고 있는지, 그토록 복수를 다짐하며 찾아 헤메던 사람을 앞에두고 남자는 왜 그를 죽이는것을  단념했는지.

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벽화 앞에 다시 선 파울케스와 남자. 약을 복용하는 그의 생은 얼마남지 않았지만 그는 할일을 모두 마쳤고 후회도 없다. 그렇다면 그림은 파울케스가  과거의 잘못에 대한 후회나 보상으로 그린 것인가, 아니며 그가 직접 목격한 사진에 미쳐 담지 못한 전쟁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을까. 전쟁화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하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인간의 모습을 나름대로  정리한 그의 마지막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저마다 자신이 그려야 할 게 따로 있으니까.

자신이 봤던 것, 자신이 현재 보고 있는 것들 말이오.”  -246쪽

 
평범한 일상,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아도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두 사람의 대화 중 무심코 한 말 한 마디, 한 장의 사진, 벽화를 그리기위해 보아왔던 유명한 화가들의 많은 전쟁 그림들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무엇이 진실인지 생각하게 한다. 작가는 죽음과 인간의 모습을 벽화속에 담고 그것을 두 남자의 대화를 통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며 우리가 스스로 깨닫길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방식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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