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61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시간 앞에 무뎌지지 않는것이 있을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망각, 그것이 인간을 살아가게 만드는 시간의 위력이고 그렇기에 시간 앞에 어떠한 인간도 고개숙일수 밖에 없음이다. 권력을 자랑하듯 세우진 우뚝 솟은 건축물들도 오랜 세월 앞에 허물어지고 귀퉁이가 닳아 당당하던 위옹은 사라지고 두루뭉술 세월을 닮아 간다. 목숨과도 바꿀듯 열열한 사랑도 세월이 흐른 뒤 이름과 얼굴조차 기억에서 사라져 추억속으로 남는다. 아마도 사랑이 미완으로 남아 애틋함이 깊어 마음속에 미련으로 남아 영속성을 지니게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현실의 사랑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이 소설속 사랑이 그러하다. 이루어질수 없기에 더욱 잊혀지지 않는 그런 사랑.

 

시간도 느릿느릿 흘러가는 아름다운 바닷가 작은 도시, 고등학교 13학년, 19살 학생과 영어선생님의 조심스런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젊고 아름답고 사람들을 웃음짓게 만드는 매력적인 슈텔라 선생님, 그녀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소년, 아니, 1318문고라더니 흔히들 이야기하는  교사와 학생의 금지된 사랑 이야기인데 사춘기 아이들이 읽기에 무리가 없을까. 아무리 사람들의 사고 방식이 서구화되고 개방적이라지만 사제지간의 사랑은 금기시 되어왔고 너무 단단히 뿌리를 내린 그 편견을 깨기란 쉽지 않은데. 너무 통속적이지 않을까. 비교육적이진 않을까하는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 한구석을 떠나질 않았다.

 

금지된 사랑을 빌어 순수하고 애틋한 이룰수 없는 절절한 사랑을 그리기위해 작가가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면 그 사랑을 지켜 보는 수 박에. 한장 한장 넘기다 보니 사랑이야기 치곤 너무도 덤덤하고 차분하게 그려 나가고 있다. 순간처럼 찰라의 짧은 사랑, 뜻밖의 슈텔라 선생님의 죽음으로 인해 사랑은 꽃피워 보지도 못하고 소년은  선생님의 추모식을 통해 그녀와의 너무도 짧고 강렬한 사랑을 기억하며 소년의 가슴속에 사랑을 묻는다. 누군가에게 소리내 말하는 순간 행복했던 순간들이, 사랑의 떨림들이 단번에 사라질것 같기에 영원히 비밀을 간직한채 침묵을 지키기로 한다. 어찌생각하면 시작조차 제대로 못하고 끝나버린 어설프고 시시하기까지 한 사랑이지만 소년의 상실감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 같다. 지크프리트 렌츠 특유의 절제된 문체와 선택된 언어를 통해 백마디의 말보다 더 아프게 가슴에 와닿는다. 달리 그가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가슴 한켠에 고이 간직할뿐.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듯 그에게도 새로운 사랑이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순수했던 19살의 픗픗한 사랑과는 같지 않으리라.

 

"순간, 나는 깨달았다. 저기 떠가는 꽃들이 내 젊음의 영원한 비극으로 기억되는 동시에, 상실의 아픔을 보듬는 크나큰 위안이 되리라는 것을." (본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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