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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 (양장)
레베카 크누스 지음, 강창래 옮김 / 알마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어릴적에 알록달록 예쁜 색상의 그림책을 어찌나 좋아했던지 겉표지는 진즉에 떨어져 나갔어도 너덜해질 때까지 보물처럼 여겼더랬다. 내겐 무엇보다 소중했던 그 책을 너무 낡아 버렸을때 얼마나 울었던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걸 보면 그 책이 단순한 종이를 넘어 내겐 다른세상과 이어주는 마법과도 같은 도구였음이다. 한글을 누구에게 배운것도 아닌데 어느순간 저절로 책의 내용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학교에 다니고 부터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아껴가며 야금야금 책속에 또다른 세상과 만나게 되었다. 세상에 책만큼 다양하고 재미난 것이 또 있을까. 여전히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책을 통해 사람들은 많은 가르침을 얻는다. 문화와 정보, 지식뿐만 아니라 신념과 정치적 이념들을 배우기도 한다. 책은 인간의 지성이 집적된 기록물이며 동시에 인간이 쌓아올린 문명의 전달자 역할도 한다. 책이 없다면 지식은 어느한 집단만의 전유물이 될 것이며 또한 문명의 빠른 발달이나 과학기술의 발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책은 인간의 의지와 의도를 표현한 글을 담는 도구이며 이성과 지성, 독창성을 발달시키는 교육의 목적을 지원하기도 한다. 이런 책과 도서관을 파괴하는 것은 그 집단의 문화와 정체성을 없애버리는 행위다. 고대이집트의 아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파괴나 진시황제의 분서갱유, 중국공산당에의한 티베트 문화 말살 정책, 나치의 유대인 몰살 정책에도 어김없이 책의 파괴가 자행되었다.
20세기 식민 지배국들은 그들이 지배하에 있는 국가들의 언어나 전통, 문화를 철저하게 말살시키고 정체성을 파괴하여 사람들 사이에 정보를 차단하여 그들의 지배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펜이 어떠한 무기보다 강한 힘을 갖기 때문이며 책이 학살의 대상이 될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이 우리에게 가했던 언어말살 정책과 창씨계명, 문화말살같은 식민 정치도 같은 선상에 놓고 생각할 수 있다. 책이란 단순히 종이 묶음을 넘어 그 것이 사람들에게 읽혀질 때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정치적인 무기가 될수 있음이다.
저자는 20세기에 일어난 책의 학살 구조와 실재 기능을 설명하고 나치와 세르비아, 이라크, 중국 등에서 전쟁이나 대규모 폭동, 정치적 이유나 인종말살에 의해 책의 학살이 이루어진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문화 파괴 또는 인종학살이란 하나의 사건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20세기에도 버젓이 행해지는 책의 학살과 인류가 이루어낸 문화유산의 파괴와 인류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막기위해서는 구제적으로 제도와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강력한 제제를 가할수 있는 힘을 모으는 일이 시급하다. 어떠한 이념도 주의나 사상도 인류의 공동유산을 파괴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그들만의 것도, 우리들만의 것도 아니며, 인류의 위대함을 미래에 증언하고 계승해야 할 의무가 모든 인간에게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