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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부족의 연대기 ㅣ 실천문학 세계문학선
야샤르 케말 지음, 오은경 옮김 / 실천문학사 / 2010년 2월
평점 :
바람부족의 연대기는 케말의 소설로 근대와 현대가 교차하는 20세기 터키를 배경으로 정착할 수도, 그렇다고 정착하지 않을 수도 없었던 투르크멘 유목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터키는 동서양이 만나는 교차로였으며, 아름다운 문화와 전통을 자랑하던 유서 깊은 오래된 나라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그 곳 엮시 문명화를 피해 갈 수는 없었나 보다. 이 작품은 백전노장 야샤르 케말의 대표작으로 가장 터키적인 이야기며 곳곳에 거장의 숨결이 느껴진다. 그의 작품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이유를 충분히 알 것 같다.
유목이 지닌 역사적 의미와 상상력은 넓은 초목과 더불어 인간의 자유와 감성을 대변한다. 이 작품 속에서 '유목' 은 실재했으나 사라져야만 했던 처절한 생존의 한 방시기며 잃어버린 인류의 꿈이 아닌가 생각된다. 유목민들은 봄이 되면 산속 방목지로 올라가고, 겨울이 되면 다시 평지로 내려와 정착하는 생활을한다. 그러나 통치하기도 용이할 뿐더러 세금이나 군 복무 를 쉽게 하기위해 정부가 칙령을 발표하여 유목민을 정착시키려 한다. 이에 유목민과 정부간의 갈등이 급기야는 유혈사태로까지 치닿게 된다. 그들의 삶속에 녹아있는 신화와 전설을 토대로 마지막까지 정착을 거부하고 전통방식을 고수하던 카라출루 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겨울을 보낼 땅 한조각 없이 생존마져 위협받게된 카라출루 부족, 별똥별을 보는 순간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흐드렐레즈밤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들의 전통대로 그날 밤 모두의 간절한 소망이던 겨울을 날 땅을 얻게 해달라고 빌기로했건만 정작 그들은 제각기 개인적인 소원을 빈다. 송골매를, 영원한 생명을 ,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며 그렇게 흐드렐레즈 밤을 보낸다.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고 마을의 원로인 대장장이 하이다르 우스타와 수장 할릴의 죽음, 정부의 무력으로 인해 칼라출루족은 헤체 되었다. 그들이 이름 붙인 평원, 강물, 호수, 산 등 곳곳에 그들의 발자취가 남아있건만 그들의 텐트는 찢기고 사람들은 죽거나 뿔뿔이 흩어져 과거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제 더이상 유목민의 화려한 텐트를 초원위에서 볼수 없게 되었고, 하늘과 별과 바람, 새들과 더불어 자연과 우주를 아우르며 교감하던 부족은 사라졌다. 잠시 땅을 빌려 쓰고 무덤 조차도 만들길 거부하며 자연으로 돌아가던 순수한 영원의 소유자들이 지구상 어디에서 발붙일 곳이 없다는 사실이 가슴아프다. 정착민들과 유목민들, 정부와의 갈등이 비단 카라출루족만의 비극이 아니기에 가슴이 아려 온다. 이 땅 어디 주인이 있단 말이냐는 부족장 말이 몰락한 인디안 시에틀추장의 연설과 같으니, 문명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하에 자행된 가슴아픈 일들이 더 이상은 없길 바라며 인권을 비롯하여 세상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알길 바란다.
"우리가 어떻게 공기를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판단 말인가? … 부드러운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우리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또한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햇살 속에 반짝이는 소나무들, 모래사장, 검은 숲에 걸려있는 안개, 눈길 닿는 모든 곳, 잉잉대는 꿀벌 한 마리까지도 우리의 기억과 가슴 속에서는 모두가 신성한 것들이다. …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이다." -시애틀추장의 연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