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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의 지붕
마보드 세라지 지음, 민승남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어릴적 옥상이 있는 단독 주택에서 살았었다. 무더운 여름, 한낮의 태양이 뜨겁게 달군 열기가 식을 무렵이면 바람 솔솔부는 옥상위 평상에 앉아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듣거나 친구들이랑 단물 뚝뚝 떨어지는 시원한 수박이나 옥수수를 먹으며 밤이 으슥하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이란 역시 뜨거운 열기를 피해 지붕이 최적의 장소였으니, 담장을 사이에두고 나란히 들어선 지붕에서 자는 일이 여름이면 테헤란에선 흔한 일이란다.
1970년대, 친미 독재 정권 팔레비왕조가 비밀경찰 샤바크를 통해 반정부활동을 탄압하고 반인륜적인 잔혹행위가 자행되던 이란. 주인공 파샤는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을 앞둔 사춘기 소년이다. 아들이 졸업후 미국 유학을 다녀와 나라를 건설하는 ‘엔지니어’가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그는 책벌레로 문학과 영화를 전공하고 싶어 한다. 늘 자신의 편이 되어주는 쾌활한 단짝 친구 아메드와 함께 낮 동안 뜨거워진 건조한 열기가 식은 시원한 공기를 즐기며 옥상에 앉아 인생과 미래,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에 관해 이야기하곤 했다. 아메드는 파히메를, 파샤는 자리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짝사랑하지만 자리에게는 테헤란 대학 정치학과 학생으로'닥터'라는 별명이 붙을만큼 똑똑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약혼자가 있다. 그는 파샤의 친구이자 멘토인 것을. 파샤는 친구의 여인을 흠모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마음을 접으려 하지만 그녀를 향한 마음은 깊어만 가고...
어느날, 닥터가 독재정권에 저향하던 중 바샤크를 피해 농촌 봉사활동을 떠나 되고 자리, 아메드, 파히메와 파샤는 사춘기시절의 마지막 축제와도 같은 평화로운 여름날을 함께 보내게 된다.
그해 여름끝자락, 닥터는 비밀경찰에게 쫒기게되고 지붕위에서 우연히 이 장면을 지켜보던 파샤를 보게된 그들에 의해 잡혀가 처형당하고, 퍄샤는 자신의 잘못으로 잡혀가게 되었다며 괴로워하며 자책한다. 그일은 여러사람들의 인생을 바꿔 놓았고 독재정권하의 삶의 현실을 실감하게 된다. 닥터가 피흘리며 끌려가던 그 장소에 파샤는 장미를 심는다. 정열과 혁명, 사랑 그리고 피의 붉은색 장미를. 닥터를 기억하며 묵묵히 장미나무를 가꾸는동네 사람들. 자리는 닥터의 희생과 독재에 저항하며 국왕생일날 분신을 기도하고. 너무나 많은 불행이 한꺼번에 이들을 덮치고 더이상 그들은 예전의 그들이 될수 없으리라. 갑자기 가슴이 먹먹하고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파샤는 닥터와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것'을 지녔다는 말을 듣게되고, 자신이야말로
그것을 가진 사람들에 둘러싸인 행복한 사람임을 깨닫게 된다.
“명예, 우정, 사랑, 자신이 가진 전부를 주는 것, 일신의 평안을 위해 눈 감고 귀 막지 않고 깨어 있는 정신으로 사는 것…… 그 모든 걸 합쳐놓은 게 ‘그것’이죠?” - 394쪽 -
잔혹한 시대 상황에서도 첫사랑은 여전히 사랑답다. 소년에서 어른으로 호되게 성장통을 치룬 젊은이들의 사랑과 우정, 정의를 담은 이 이야기는 "페르시아 양탄자 한 올 한 올엔 끈기 있게 바늘과 실을 움직인 손의 이야기기가 깃들여 있다" 는 파샤아버지의 말처럼 마치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씨실과 날실로 엮은 페르시아 전설 한 자락을 듣는듯 한하다. 책장을 덮기가 너무도 아쉬운 긴여운이 남는다. 여름날 시원한 평상에 누워 할머니께 듣던 옛날 이야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