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땅에 아버지로 산다는 것은

아버지의 눈물
김정현 지음 / 문이당 / 2010년 1월

 
                
 
이시대의 아버지의 모습을 이보다 더 생생하고 적나라하게 그릴수 있을까? 김정현, 그가 그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읽는 내내 가슴저미는 아픔을 느꼈다. 아버지의 권위가 우선시 되었던 우리의 아버지들과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온 이시대 가장들의 애환과, 가정과 사회에서 설자리를 잃어가는 그들의 위치를 돌아보게 한다. 가장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강박감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에 짓눌려 어깨를 펴지 못하는 그들에게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을 가족들도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가족과 소통의 부재로 인해 겉돌다 점차 멀어지고 남몰래 외로움을 느꼈을 남편의 모습이 겹쳐지며 짠한 마음에 코끝이 찡하다.
삶에 부대끼며 그래도 자신보단 가족들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담은 진한 감동의 글 한편을 만났다. 그리고 작가는 우리에게 희망과 가족애를 잊지 않고있다. 

한 가정의 가장이며 아들 둘을 둔 흥기는 벤처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어느 날 동창들 모임에 참석했다가 증권회사에 다니는 친구 병섭의 권유로 공금을 유용하여 주식에 투자하게 된다. 그러나 빚만 불어나게되고. 백 박사가 알기 전에 당장 돈을 메워야만 하는 다급한 상황이 된다.
 
지방대학에 다니다 입대한 큰아들 상인은 제대한 뒤 대학공부가 자신의 길이 아닌것 같아 복학을 포기하고 등록금과 원룸 보증금을 가지고 새로운 길을 찾아보겠다며 마음을 정리하기위해 여행을 떠닌다. 아내 영주는 기대에 못미친 큰아들 대신 둘째 상우에게만 온 정성과 신경을 쓰고, 흥기는 그런 아내에게 당면한 문제를 속시원히 털어놓지 못한 채 혼자만 고민한다. 자신에게 주식 투자를 권유한 친구 병섭이 모든 걸 잃고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병섭의 빈소를 찾았을 때 그는 아내와 가족을 떠올린다.
 
세월 지나면 시들해질 수 있다고 해도 인연은 더욱 소중해져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때 제 처가 희망이 안 보인다고 했다는데, 뒤늦게 문득 그 소리가 생각나는 순간 아무런 탓도, 미워도 할 수 없었단다. 그런데 우리가 병섭이와 다른 게 있다면 그건 하나, 우리에겐 아직 마누라와 자식을 지킬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다는 걸 거야. 우리 뒤틀려 버린 인생들의 마지막 희망, 그러나 그 어떤 희망보다도 더 소중한 희망…….
                                                       ―본문 중에서-
 
상인은 여행중 예기치 못한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백 박사의 귀국으로 다급해진 흥기는 선뜻 돈을 빌려 주겠다는 친구 상길의 호의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상길의 호의에 다른 뜻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된 흥기는 모든 것을 버리고 중국으로 떠나려고 하는데. 그에겐 어머니보다 더 엄마같던 누나, 결혼까지 늦추며 동생 뒷바라지하며 아무리 힘들어도 똑똑한 동생, 착하고 공부 잘하는 동생 때문에 든든하고 기뻤다는 누나, 그땅이 얼마나 넓은데, 그 넓은 땅 어디서 널찿냐는 누나의 울음소리가 비명처럼 통곡처럼 그의 발길을 돌리게 했다. 
 

산다는 것, 살아 간다는 것이 어느새 버거워진 나이가 되었다.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도 자식들 공부 잘해서 일류대 나와 미래가 보장된 삶을 살길 원하는 것이, 부모보다 잘 살길 바라는 그 마음이 되려 족쇄가 될줄이야. 인생을 살다보면 어찌 좋고 기쁜 일들만 있겠는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 길이 있는 것이 진리인 것을. 눈앞의 현실이 힘들다고  세상만 탓하고 체념하기엔 우리에겐 너무도 소중한 가족이 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시리다. 그 아버지 자리를 대신 지키고 가족의 울타리가 되어준 남편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이 함께 자리한다. 이땅에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이 얼만큼 힘든지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