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의 눈물 샘깊은 오늘고전 12
나만갑 지음, 양대원 그림, 유타루 글 / 알마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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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때 봄소풍으로 남한산성에 간적이 있었지요. 맛난 도시락 까먹으며 깔깔거리며 웃던 단발머리 여중생들은 남한산성에 얽힌 치욕의 역사에 관한 국사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는 모두들 금새 침울한 분위기가 되었더랬다. 우리가 서있는 이 자리에서 병자년, 조선의 임금이던 인조께서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하시며 세 번 무릎 꿇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수모를 겪으셨으니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했는지, 도대체 신하된 사람들은 모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참담한 심정이었다.
 
병자년의 가슴아픈 역사를 기록하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나만갑은 남한산성으로 임금과 함께 들어가 직접 전쟁의 한 가운데서 보고 듣고 격은 생생한 기록을인 '병자록'을 남겼으니 병자년인 1636년 12월을 시작으로 기록이 시작 된다. 압록강을 건넌 청나라 군대는 단번에 서울로 향해 달려와 중국 본토에서 명나라와 싸우기에 앞서 ‘명나라를 도와 청나라와 싸우겠다’고 공공연히 선언한 조선부터 제압하려 했다.
압록강을 넘은 청나라 군대는 인조임금과 대신들이 미처 강화도로 피난하기 전에 길을 차단하는 바람에 강화도로 들어가지 못하고 겨우 남한산성으로  피신할수 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1만 4천 명에 불과한 군사와 45일쯤을 버틸 수 있는 식량에 의지해 싸울 수 밖에는 없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성안의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기록 곳곳에 참담한 산성의 실정과 과 추운 날씨와 굶주림 속 백성들의 모습에 실제의 기록이기에 가슴이 아려온다.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다.

그와중에도 벼슬아치들은 주화파니 척화파니 편을 갈라 서로 싸우기 바빴으니, 백성과 병사들은 전투에 나서기도 전에 얼어 죽거나 굶어 죽고, 혼란에 빠진 장교와 병사들 마저 반란을 일으킬 기세였다. 강화도 함락 소식에 결국 항복을 결정하고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나라 황제에게 항복 의식을 치르고 만다. 이는 우리 민족에게 씻을수 없는 치욕을 안겨 주었다. 수십만 명의 조선 백성들이 청나라 군대에 사로잡히고 수천 리 이동하는 도중 추위와 굶주림에 죽어 갔다. '병자록'의 기록은 단순히 전쟁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병자호란이 발생하게된 배경과 국제 정세와 외교 관계, 급박한 전투 상황과 강화 협상, 척화파와 주화파간의 대립구조와 갈등, 고통 받는 백성들의 모습까지도 세세히 기록한 귀중한 역사적 자료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봄소풍이 내가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된 계기가 되었으며 그 당시 사춘기 소녀가 품은 역사에 관한 뼈아픈 교훈은 가슴 한켠에 지금까지도 자리하고 있으니 우리가 물려받은 역사를 바로 보는 시각이 얼아나 중요한지 깊이 깨닫게 된다. 영광의 순간도 치욕의 순간도 모두 역사의 한 부분임에 틀림 없다. 아픈 기억이라해서 지울 수도 없고, 더더욱 잊어서는 안된다. 이순간도 과거의 한페이지로 기록되어 다음세대에 물려줄 역사로 자리하게 될 것이기에 우리가 바르고 올곧은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글 끄트머리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세월이 흘러 병자년, 그때 일을 잊을까 걱정스러워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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